추리 미스터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갑고 끈끈한 어둠이 도시를 집어삼키는 시간, 류진호는 익숙한 비릿함에 코끝을 찡그렸다. 빗물에 쓸려 내려간 피 냄새는 여전히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뒷골목의 음습한 벽돌 위에는 붉은색 스프레이 낙서처럼 번져있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시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하지만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 형사님, 현장 통제는 제대로 된 거 맞습니까?”

진호의 목소리에는 날 선 짜증이 묻어 있었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벽을 스치듯 훑었다. 빗물이 다 씻어내지 못한, 미미하지만 기이한 점액질의 흔적.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반짝임이 손끝에 닿았다.

“류 형사, 그만 좀 해. 이미 다 훑어봤어. 뭐 나오는 게 있어야지.”

김 형사는 신경질적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도 지쳐있었다. 최근 한 달 새 세 번째 실종이자, 세 번째 괴이한 현장이었다. 공통점은 시체가 단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다는 것. 그리고 어딘가 비현실적인 잔혹한 흔적만 남는다는 것.

진호는 김 형사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빗물에 젖은 바닥, 낡은 배수구 틈새에 박힌 무언가에 고정되었다. 섬세한 손가락이 움직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마른 가지처럼 얇고 검푸른 물질. 아주 작은 조각이었지만, 어딘가 생명체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

진호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그는 이전에 이것과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꿈결처럼 아득한 기억 속에서. 아니,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스러운 현실.

그때였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잊어버려. 잊어버리지 않으면, 네가 위험해져.*

진호는 몸을 굳혔다. 시야가 흐려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달빛을 머금은 듯 창백한 피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 그리고 늘 불안하게 흔들리던 그녀의 입술.

세린.

그녀는 늘 경고했다. 어둠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오지 말라고. 너는 빛의 아이이니, 그림자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하지만 진호는 이해하고 싶었다. 그녀의 세계를, 그녀의 고통을, 그리고 그녀의 종족이 지닌 비밀을.

“류 형사, 뭘 그렇게 멍하니 서있어? 혹시 밤새웠나? 얼굴이 허옇네.”

김 형사의 목소리에 진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손에 쥐고 있던 검푸른 조각을 급히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아닙니다. 그냥, 너무 기묘해서요.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

그는 애써 평범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거센 파도처럼 일렁였다. 이 조각. 이 흔적은 명백히 ‘그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관여된 사건은, 결코 단순한 미스터리로 끝나지 않았다.

퇴근 후, 진호는 오직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장소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도심 속 작은 공원,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벤치. 그곳은 언제나 비어있었고, 어둠이 깊어지면 고요만이 감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한 달빛 아래 그림자 하나가 움직였다.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온 세린은 늘 그렇듯 어딘가 슬픈 표정이었다. 그녀는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타지 않는 듯했다. 아니, 애초에 그녀의 존재 자체가 겨울밤의 찬 공기와 다름없었다.

“왔구나.”

진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위태로웠다.

“네가 나를 불렀잖아. 무슨 일이야?”

세린의 목소리는 새벽녘의 안개처럼 부드럽고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긴장감이 숨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빛났다. 검푸른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진호는 주머니에서 검푸른 조각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세린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뜨였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 같았다.

“이건… 어디서 찾았어?”

그녀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위험을 경고하는 듯한 낮은 울림이었다.

“오늘 현장에서. 세 번째 실종 사건 현장이야. 너희 종족이 남긴 흔적이지? 이전에 네가 보여줬던 것과 똑같아.”

진호의 말에 세린은 조각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아귀에 조각은 이내 검은 재처럼 부스러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절대 발각되어선 안 될 흔적이야.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겼거나…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겠지.”

“위급한 상황이라니? 무슨 뜻이야? 너희 종족이 대체 뭘 하는 건데?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건가?”

진호의 질문에 세린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깊은 연못처럼 흔들렸다. 그 속에 담긴 고통과 체념이 진호를 압도했다.

“인간의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우리 ‘밤의 혈족’은 인간의 세계에 개입하지 않아. 하지만 최근 들어, 몇몇 개체가 규칙을 어기고 있어. 인간의 피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이거나.”

“그 반대?”

“인간 사냥꾼들이 나타나고 있어.”

세린의 말에 진호는 얼어붙었다. 인간 사냥꾼? 그들이 ‘밤의 혈족’을 사냥한다고? 그렇다면 실종된 사람들은… 피를 갈망하는 ‘밤의 혈족’의 희생자이거나, 아니면 인간 사냥꾼들이 ‘밤의 혈족’을 쫓는 과정에서 벌어진 부수적인 피해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끔찍한 진실이었다.

“우리 쪽에서 정보를 얻었어. 밤의 혈족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달의 그림자’ 부족이 이 사건에 연루된 것 같다고. 그들은… 특히 위험해.”

세린의 목소리에 진호는 소름이 돋았다. 달의 그림자 부족. 그녀가 언급하기조차 꺼렸던 존재들.

“세린, 네가 내게 말해줘야 해. 모든 것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 이상한 사건들이 너희 종족과 관련되어 있다면, 나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그리고 너는…”

진호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세린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차가운 공기가 그들 사이에 흘렀다.

“네가 알수록, 위험해져. 우리는… 함께할 수 없어. 너는 빛의 세계에 살고, 나는 그림자의 세계에 존재해야만 해. 우리의 사랑은… 금지된 그림자야. 그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너의 빛은 사그라들 거야.”

그녀의 눈빛은 아득한 슬픔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난 널 포기할 수 없어. 내가 너를 발견했고, 너를 사랑하게 되었어. 이건 단순한 사랑이 아니야. 내 모든 것을 거는 일이야.”

진호는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의 눈빛은 굳건했다.

“내가 네 그림자를 걷어낼 방법을 찾을 거야. 우리가 함께할 방법을.”

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체념의 미소가 번졌다.

“늦었어. 이미 그림자가 드리워졌어. 네가 이 사건을 파고들수록, 그림자는 더욱 깊어질 뿐이야. 그리고 그 끝에는…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너와 나,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진실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원 외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진호는 본능적으로 세린을 자기 뒤로 끌어당겼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밤의 정적을 갈랐다.

“젠장! 저격수인가?!”

그들 쪽으로 향하던 총성은 플라타너스 나무의 굵은 기둥에 박혔다. 나무껍질이 산산조각 났다.

“그들이 우리를 쫓고 있어. 인간 사냥꾼이 이 정도까지 접근했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야.”

세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극한의 긴장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어둠 속에 숨겨진 위협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진호는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차갑고 가느다란 손. 하지만 그 안에서 묘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누가 우릴 쫓는 거야? 대체 그들의 목적이 뭔데?”

“밤의 혈족을 뿌리 뽑으려는 자들. 그리고… 우리를 이용해서 더 큰 힘을 얻으려는 자들. 그들은 너의 존재도 알고 있을 거야. 나와의 관계가… 이미 드러났어.”

세린의 말은 진호의 심장을 꿰뚫었다. 자신들의 금지된 사랑이 누군가에게 발각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발각은 이제 생명을 위협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진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희미한 그림자들.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을 쫓는 것이 아니었다. 사냥이었다. 그들의 사냥감은 세린, 그리고 그녀와 엮인 자신이었다.

“가자! 여기서는 위험해.”

진호는 세린의 손을 잡고 어둠 속으로 뛰기 시작했다. 총성이 다시 한번 울렸다. 이번에는 더욱 가까이에서. 진호는 본능적으로 세린의 몸을 감쌌다. 그의 눈빛은 필사적이었다. 그는 그녀를 지켜야만 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세린의 품속에서, 진호는 그녀의 차가운 체온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나는, 달콤하고도 아련한 피 냄새를 맡았다.

이 감각은… 익숙했다. 마치 자신의 피가 섞여 있는 것처럼.

그때, 진호의 뇌리에 충격적인 기억의 파편이 스쳤다. 아주 어릴 적, 핏자국이 낭자했던 그의 집. 그리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자신과 꼭 닮은 아이.

아니, 자신이었다. 피를 흘리던… 어린 시절의 자신. 그리고 그 옆에서 울부짖던, 아주 젊은 세린의 얼굴.

*잊지 마. 잊지 마, 진호. 내가 널… 구했어.*

귓가에 울리는 환청.
진호는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려 했다. 세린의 경고가, 그녀의 감추려 했던 진실이, 그리고 그의 어렴풋한 과거의 기억이 거대한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그는 어쩌면… 처음부터 ‘빛’의 아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린은, 그저 그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생명이었다.

그때였다. 뒤편에서 달려오던 검은 그림자 중 하나가 순식간에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번쩍이는 칼날이 달빛을 찢었다.

“밤의 혈족, 그리고 그 협력자. 오늘 밤, 너희 모두 여기서 끝이다!”

복면을 쓴 사냥꾼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진호는 세린의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이젠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금지된 그림자 속에서 진실을 밝혀내고, 그녀를 지킬 것이다.
설령 그 진실이 자신마저 뒤흔들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피와 어둠, 그리고 금지된 사랑으로 엮인.
긴 밤은, 이제 겨우 시작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