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증기와 기계 기름 냄새가 뭉근하게 깔린 밤이었다. 낡았지만 웅장한 도시는 수많은 톱니바퀴와 증기 기관의 규칙적인 박동 아래 잠 못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시계탑이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울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도시의 심장이 더욱 격렬하게 요동치는 듯했다.
수수께끼는 도시의 가장 부유한 심장부, 빅토르 크롬웰 경의 저택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서재는 단순한 방이 아니었다. 순수한 황동과 강화 강철로 이루어진 육중한 문은 내부의 정교한 톱니바퀴와 맞물려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되는 요새나 다름없었다. 창문은 두터운 철제 격자로 보호되었고, 심지어 환기구마저도 복잡한 압력식 잠금장치로 봉인되어 있었다. 침입의 여지는 단 한 조각도 허락되지 않는, 완벽한 밀실.
하지만 그 완벽한 밀실 한가운데서, 빅토르 크롬웰 경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의 심장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증기 압력으로 작동되는 스틸레토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보십시오, 류인 경.”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강철 경감은 두꺼운 손가락으로 거대한 강철 문을 툭툭 두드렸다. 육중한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경감의 얼굴에는 어둠침침한 방의 공기만큼이나 답답한 기색이 역력했다.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창문은 안쪽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고, 환기 시스템은 그 자체로 요새입니다. 누군가 침입했다가 나갔을 리가 없어요. 게다가, 크롬웰 경은 평소에도 자신의 서재를 이렇게 완벽하게 잠그고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명백한 밀실 살인입니다.”
나는 강철 경감의 옆에 서서 팔짱을 꼈다. 류인, 이 도시에 소문난 젊은 탐정. 사람들은 나를 ‘기계의 언어를 읽는 자’라고 불렀다. 내 조수 한결은 내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류인 경, 이번 사건은 저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범인이 혹시 이 방 안에 아직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결의 말에 강철 경감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미 방 안은 샅샅이 뒤졌네. 숨을 만한 공간이라고는 없어. 혹시 서재 안에 다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크롬웰 경을 살해한 뒤 자결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자살 시체는 보이지 않는군요, 강철 경감.”
내 시선은 이미 방 안의 모든 것에 닿아 있었다. 앤티크한 서류철, 고풍스러운 증기 시계, 복잡한 증기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천장,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놓인 빅토르 크롬웰 경의 시신. 그의 얼굴은 평화롭다기보다는 놀라움으로 굳어 있었다. 오른손에는 텅 빈 총집이 들려 있었지만, 총은 없었다.
“사망 시각은 대략 자정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시계탑의 종이 울리던 때였을 겁니다.” 강철 경감이 덧붙였다. “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크롬웰 경이 저항이라도 했던 걸까요? 하지만 총탄 자국도 없습니다.”
나는 시체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의 가슴에 박힌 스틸레토는 은은한 금속광을 발하고 있었다. 칼날의 섬세한 홈에는 미세한 증기 압력 조절기가 붙어 있었는데, 이는 살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특수 장치로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맥동하는 듯한 기계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살인 도구였다.
“칼날은 피해자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습니다.” 나는 중얼거렸다. “망설임 없는 일격입니다.”
나는 시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방은 크롬웰 경의 서재인 동시에, 그의 자부심이 담긴 개인 실험실이기도 했다. 벽을 따라 복잡하게 얽힌 황동 파이프와 톱니바퀴 장식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이 저택의 모든 기계 장치를 제어하는 핵심 시스템이 이 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의 천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환기 시스템의 주 파이프가 천장을 가로질러 있었다. 육중한 강철과 황동으로 만들어진 그 파이프는 얼핏 완벽해 보였다.
“한결, 저기 천장 모퉁이에 있는 환기 시스템 주 파이프 말일세. 가장 두껍고 굵은 파이프 말이야.”
한결은 내 시선을 따라갔다. “네, 류인 경. 왜 그러십니까?”
“가장자리, 벽과 만나는 지점에 집중해서 보게. 미세한 흠집이 보이지 않나?”
한결은 안경을 고쳐 쓰고 눈을 가늘게 떴다. “흠집이요? 음…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아, 정말이군요! 아주 작은 스크래치가 있습니다. 마치 무엇인가가 스쳐 지나간 것 같은….”
강철 경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는 오래된 파이프라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류인 경.”
“아니요, 강철 경감. 이 흠집은 다른 낡은 흔적들과는 다릅니다. 표면이 미세하게 벗겨진 방향, 그리고 그 아래에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는… 이물질. 현미경으로 보면 더 명확할 겁니다. 특정 금속의 미세 입자가 묻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방에 묘한 냄새가 섞여 있습니다.”
강철 경감이 킁킁거렸다. “시체 썩는 냄새와 오래된 책 냄새, 그리고 이 저택 특유의 기계 기름 냄새 외에는 딱히….”
“피 냄새나 기름 냄새가 아닙니다. 아주 희미하지만, 특정한 증기 엔진에서나 맡을 수 있는… 특수 윤활유 냄새입니다. 이 방의 기계 장치에는 사용되지 않는 종류죠.”
나는 피해자의 시신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빈 총집 외에 다른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다. 그것은 작고 정교한 은색 열쇠였다. 서재 문 열쇠와는 달랐다.
“이 열쇠는 무엇에 쓰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강철 경감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저택 안의 그 어떤 자물쇠와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습니다. 크롬웰 경이 늘 지니고 다니던 개인 열쇠꾸러미에 있던 것입니다.”
나는 은색 열쇠를 조심스럽게 집어 올렸다. 표면이 매끄럽게 닳아 있었다. 자주 사용된 흔적이었다. 그리고 열쇠의 이빨 부분이 미세하게 뒤틀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강하게 부딪힌 것처럼.
내 시선은 다시 방 안을 훑었다. 빅토르 크롬웰 경의 책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돈되어 있었지만, 그의 의자는 미세하게 비틀어져 있었다. 마치 그가 급하게 몸을 돌린 것처럼. 그리고 그 의자 뒤편의 벽을 따라, 방의 환기 시스템을 수동으로 제어하는 육중한 황동 레버가 있었다. 그 레버는 현재 ‘닫힘’ 상태로 내려져 있었다.
“한결, 저 환기 레버를 좀 보게.”
한결이 다가가자 내가 손가락으로 레버를 가리켰다. 레버의 손잡이 부분에 아주 희미한, 실오라기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얇디얇은 비단실이었다.
“이건… 비단실입니까? 어디서 온 걸까요?” 한결이 신기한 듯 물었다.
“이 방에는 비단으로 된 물건이 없지 않나? 옷장도 아니고, 서재에 비단이라니.”
강철 경감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인들의 옷가지일 수도….”
“하인들이 이 완벽하게 잠긴 서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리는 없죠.” 내가 잘라 말했다. “이 실은 누군가의 옷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사용된 흔적입니다.”
나는 다시금 천장의 주 파이프와 환기 레버, 그리고 피해자의 자세를 번갈아 응시했다. 퍼즐 조각들이 서서히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이 환기 시스템에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강철 경감과 한결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환기 시스템이요? 하지만 완벽하게 닫혀 있었잖습니까!” 강철 경감이 소리쳤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닫혀 보였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크롬웰 경은 이 서재를 자신만의 안전한 요새로 여겼지만, 바로 그 안전망이 놈에게 이용당한 겁니다.”
나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이 방의 환기 시스템은 외부와 연결된 주 파이프를 통해 공기를 순환시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 주 파이프의 입구가 내부에서 육중한 잠금장치로 봉인되어 있지만, 동시에 내부의 이 황동 레버를 통해 수동으로 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비상 상황을 대비한 것이겠죠.”
“그렇다면… 범인이 레버를 조작해서 들어왔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레버는 닫힘 상태였고, 방은 잠겨 있었습니다!” 한결이 반박했다.
“범인이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범인이 *무엇인가*를 들여보낸 겁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방 안의 모든 시선을 집중시켰다.
“사건 당일 자정, 시계탑의 종이 울리던 순간. 크롬웰 경은 평소처럼 서재에 혼자 있었습니다. 그때, 외부에서 작동되는 미세한 장치가 이 환기 시스템의 주 파이프를 강제로 열었을 겁니다. 동시에, 아주 작고 민첩한 특수 제작된 자동 인형, 즉 *자동 드론*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자동 드론이요?!” 강철 경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 작고 날카로운 스틸레토를 들고 들어왔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천장의 주 파이프에 난 미세한 흠집은 자동 드론이 비좁은 공간을 통과하면서 남긴 흔적입니다. 윤활유 냄새는 드론의 특수 엔진에서 발생하는 것이고요. 크롬웰 경은 갑작스러운 침입에 놀라 의자를 비틀었을 겁니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총집은 아마도 자신의 호신용 총을 찾기 위함이었겠죠. 하지만 드론의 공격은 너무나도 빨랐습니다.”
“그렇다면 그 드론이 크롬웰 경을 살해했다는 말입니까?” 한결이 경악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드론은 이 스틸레토를 이용하여 크롬웰 경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크롬웰 경의 마지막 행동입니다.”
나는 황동 레버에 걸린 비단실을 가리켰다.
“크롬웰 경은 피격 직후, 혹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이 레버를 잡아당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침입한 드론을 가두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그 기계를 이 방 안에 가두려 했습니다. 하지만 드론은 그가 레버를 완전히 닫기 직전, 다시 환기 시스템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고, 레버는 결국 ‘닫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드론의 기계가 레버를 스치면서 비단실이 걸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도 안 돼….” 강철 경감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 은색 열쇠는…?”
“이 열쇠는 아마도 그 자동 드론을 제어하거나, 혹은 환기 시스템의 특정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었을 겁니다. 크롬웰 경이 이 열쇠로 환기 시스템을 열고 드론을 외부로 보내려 했거나, 혹은 드론이 공격하는 순간, 드론에 매달린 이 열쇠를 빼앗으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열쇠의 뒤틀린 이빨은 그 격렬한 몸부림의 증거입니다.”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범인은 이 방 안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부에서 정교하게 조작된 자동 드론을 이용해 살인을 저질렀고, 그 드론은 환기 시스템이라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통로를 통해 완벽하게 드나들었습니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바로 이것입니다.”
강철 경감과 한결은 넋이 나간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밀실의 완벽한 환상 뒤에 숨겨진, 기계 문명의 정교하고 섬뜩한 살인극.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죠?” 한결이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나는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그 기계의 주인을 찾아내야 할 차례입니다.”
창밖으로 자욱한 증기가 다시금 도시를 감쌌다. 톱니바퀴의 박동은 계속되었지만, 이제 그 소리에는 섬뜩한 살의가 섞여 들리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