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잿빛 시장의 그림자 >
**(EPISODE 1: 잿빛 시장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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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허 속으로**
**[장면 1]**
화면: 잿빛 먼지가 자욱한 폐허 도시의 전경. 과거의 영광은 찾아볼 수 없고, 무너진 고층 빌딩의 뼈대만이 앙상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다. 바닥에는 녹슨 차량 잔해와 깨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널려 있다. 멀리서 황량한 바람 소리가 ‘쉬익-‘ 하고 들려온다.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태양을 가리고, 세상은 온통 암울한 모노톤이다.
**[장면 2]**
화면: 강민(30대 초반)이 닳고 닳은 가죽 조끼를 입고 허리에 긴 생존용 칼을 차고 걷고 있다. 그의 등에는 낡은 배낭이 메어져 있고, 한 손에는 녹슨 철근을 휘두를 준비를 한 채 들고 있다. 얼굴은 먼지로 뒤덮여 있고, 눈빛은 피로하지만 날카롭다.
수아(10대 중반)가 강민의 뒤를 바싹 붙어 따라 걷는다. 그녀의 어깨에는 작은 꾸러미가 메어져 있고, 주변을 경계하며 눈을 두리번거린다. 낡은 방진 마스크가 그녀의 입과 코를 가리고 있다.
**강민 (내레이션):** (낮게 깔리는 목소리)
또 하루가 시작됐다. 태양은 여전히 회색 장막 뒤에 숨어 있고, 폐허는 어제와 똑같은 침묵을 토해낸다. 이놈의 세상은 숨 쉬는 것조차 사치로 만들지. 잿빛 대정화 이후, 우리는…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장면 3]**
화면: 강민이 멈춰 서서 손을 들어 올린다. 수아도 덩달아 멈춘다. 강민은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주변을 한참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패널에 ‘정적’이라는 글씨가 작게 깔린다. 멀리서 들려오던 바람 소리마저 잦아든다.
**강민:** 조용히.
**수아:** (마스크를 내리며 속삭이듯)
뭐… 뭐 보여요, 오빠?
**강민:** (고개를 살짝 저으며)
아니. 너무 조용해서 문제다. 바람 소리도… 흙먼지 날리는 소리도 없어. 이건 좋은 신호가 아니야.
**[장면 4]**
화면: 강민이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 좁은 틈새로 고개를 내밀어 안쪽을 살핀다. 내부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희미한 빛만이 먼지를 뚫고 들어온다. 바닥에는 굳어버린 시멘트 덩어리와 녹슨 철근들이 마치 맹수의 이빨처럼 삐죽하게 솟아있다.
**강민 (내레이션):**
‘잿빛 시장’. 과거엔 온갖 물건들이 넘쳐나던 곳이었다지. 지금은… 물건 대신 유령 같은 것들만 떠도는 곳. 그래도, 희박한 확률로 아직 쓸만한 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이 빌어먹을 희망 때문에 오늘도 발을 들이는 거지.
**[장면 5]**
화면: 강민이 조심스럽게 먼저 틈새로 몸을 밀어 넣고, 수아에게 손짓한다. 수아가 그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녀의 눈빛은 경계심과 함께 어딘가 호기심도 서려 있다.
**수아:** (숨을 죽이며)
으스스하다… 여기 진짜 아무도 없어요?
**강민:** (앞서 걸으며)
‘아무도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네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눈은 바닥을 보고, 발은 소리 안 나게. 마스크도 다시 쓰고.
**수아:** (마스크를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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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잿빛 시장의 미로**
**[장면 6]**
화면: 무너진 건물 내부. 한때 진열장이었을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녹슨 선반들이 기괴하게 뒤틀려 있다. 천장에서는 빗물이 스며든 자국이 검게 얼룩져 있다. 벽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낙서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강민:** 우리가 찾는 건 통조림이나, 마른 식량. 아니면… 작동하는 배터리. 어제 찾은 정화 필터는 거의 수명을 다했으니까.
**수아:** (녹슨 장난감 인형을 발견하고 멈칫한다. 한쪽 눈이 뽑혀 있고 흙먼지로 범벅이 된 낡은 인형이다.)
이거… 인형이에요?
**[장면 7]**
화면: 수아가 망가진 인형을 조심스럽게 집어 든다. 인형은 한쪽 눈이 뽑혀 있고,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한때는 귀여웠을 모습이 남아 있다.
강민이 뒤를 돌아본다. 그의 표정은 딱히 감흥이 없다.
**강민:** 쓸데없는 건 두고 와. 짐만 돼.
**수아:** (인형을 꼭 안으며)
그래도… 버려진 것 같아서요. 불쌍해.
**강민:** (한숨을 쉬지만 딱히 나무라지는 않는다)
네 마음대로 해. 대신 내 배낭에 넣으려 하지 마.
**[장면 8]**
화면: 둘은 더 깊숙이 들어간다. 복도 중간에 거대한 바위처럼 굳어진 잔해가 길을 막고 있다. 강민이 잔해의 틈새를 비집고 지나갈 길을 찾는다. 작은 틈 사이로 한줄기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다.
**강민 (내레이션):**
이곳은 살아있는 미로와 같았다. 한 번 발을 잘못 들이면, 그대로 길을 잃거나… 더 나쁜 존재에게 먹힐 수도 있지. 우리는 한때 ‘인간’이 만들었던 이 콘크리트 무덤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였다.
**[장면 9]**
화면: 강민이 잔해 틈새로 몸을 통과시킨다. 좁은 길을 지나자, 작은 공간이 나타난다. 바닥에는 흩뿌려진 종이 조각들과 캔 쪼가리들이 널려 있다. 한쪽 벽면에는 낡은 표어가 희미하게 적혀 있다.
**’희망은 없다. 생존만이 전부다.’**
**수아:** (표어를 읽고 살짝 찌푸린다)
끔찍한 말이네…
**강민:** (바닥을 훑어보며)
이전에 누가 들렀던 흔적이야. 조심해.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니까. 바닥의 캔 조각들을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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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짐승의 그림자**
**[장면 10]**
화면: 강민이 부서진 진열대 안쪽으로 손을 뻗는다. 먼지 쌓인 틈새 사이로, 반짝이는 금속 캔 몇 개가 보인다. 그의 눈이 빛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처럼 보인다.
패널에 ‘번뜩!’하는 효과음이 작게 깔린다.
**강민:** 찾았다! 운이 좋았군.
**수아:** (기대감에 찬 얼굴로)
뭐예요, 오빠?
**[장면 11]**
화면: 강민이 캔 세 개를 꺼내든다. 통조림 햄, 콩, 그리고 알 수 없는 내용물이 담긴 캔 하나. 비록 녹슬어 있지만, 밀봉은 제대로 되어 있는 듯하다. 그는 캔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다.
**강민:** 통조림! 이 정도면 며칠은 버틸 수 있겠어.
**수아:** (환하게 웃으며, 인형을 꼭 안은 채 폴짝 뛴다)
와! 정말요? 그럼 이제 돌아가요?
**[장면 12]**
화면: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끼이이익!’ 하는 불쾌한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강민과 수아가 동시에 몸을 굳힌다. 소리는 날카롭고 찢어지는 듯하며,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진다.
패널 전체에 ‘끼이이익-!’하는 거대한 효과음이 깔린다.
**강민 (내레이션):**
젠장. 올 것이 왔다.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장면 13]**
화면: 강민이 재빨리 허리춤의 칼을 뽑아든다. 그의 눈이 빠르게 주위를 훑는다. 수아는 겁에 질려 강민의 뒤에 바싹 숨는다. 마스크 아래로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강민:**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숨어, 수아!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
**[장ем 14]**
화면: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인다. 짐승의 형체는 명확하지 않지만, 길고 뾰족한 다리들이 벽을 긁는 소리가 더욱 선명해진다. 눈처럼 보이는 붉은 점들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난다. ‘사냥벌레’였다. 잿빛 대정화 이후 변이된, 밤의 포식자.
**강민:** (이를 악물고)
하필… 사냥벌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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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필사의 도주**
**[장면 15]**
화면: 사냥벌레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다. 마치 거대한 사마귀와 거미를 합쳐놓은 듯한 기괴한 형상. 비대한 몸통에 수많은 날카로운 다리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타닥 타닥’ 소리를 낸다. 낫처럼 생긴 날카로운 앞다리 두 개가 공격적으로 들려 있다. 그 몸체는 잿빛 돌덩이처럼 거칠다.
**[장면 16]**
화면: 강민이 주저 없이 사냥벌레를 향해 돌진한다. 칼을 휘둘러 앞다리 하나를 겨냥하지만, 벌레는 놀라운 속도로 몸을 비틀어 피한다. 금속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패널에 ‘휘익!’ 하는 칼날 소리가 깔린다.
**사냥벌레:** (기이하고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끼아아아악!
**[장면 17]**
화면: 사냥벌레의 앞다리가 강민을 향해 냅다 찍힌다. 강민은 간신히 몸을 비틀어 피하지만, 칼집이 긁히며 ‘쉬이익!’ 하는 소리를 낸다. 강민이 서 있던 벽에서 먼지와 콘크리트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피한다.
**강민 (내레이션):**
이놈의 세상에선… 한눈파는 순간 죽음이 찾아온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끝장이야. 저 놈의 다리에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살이 찢겨나갈 테지.
**[장면 18]**
화면: 강민이 수아 쪽을 향해 소리친다.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다.
**강민:** 도망쳐, 수아! 내가 시선 끌게! 어서!
**수아:** (눈물을 글썽이며, 주춤거린다)
오빠는… 오빠는 어떡해요?
**강민:** 괜찮으니까! 빨리! 뒤돌아보지 마!
**[장면 19]**
화면: 수아가 망설이다가, 강민을 믿고 부서진 선반 사이로 몸을 던져 달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망가진 인형이 쥐어져 있다. 작은 발소리가 폐허를 울린다.
패널에 ‘타타타탁!’ 하는 발소리가 깔린다.
**[장면 20]**
화면: 강민이 사냥벌레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선다. 그는 벌레와 폐허의 구조를 동시에 살피며, 탈출구를 찾고 있다. 그의 눈은 빠르게 계산하고 있다.
**강민 (내레이션):**
놈은 냄새를 맡고 쫓아올 거다. 움직임을 최대한 예측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무조건 버려야 해.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장면 21]**
화면: 사냥벌레가 강민에게 달려든다. 강민은 절묘한 타이밍에 몸을 숙여 아래로 구른다. 그는 비좁은 틈새로 몸을 밀어 넣고 탈출을 시도한다. 콘크리트 잔해 사이의 좁은 구멍이었다.
패널에 ‘쿵!’ ‘쉬익!’ 하는 소리가 겹쳐 깔린다.
**[장면 22]**
화면: 강민이 좁은 틈새를 거의 빠져나왔을 때, 사냥벌레의 날카로운 다리 하나가 그의 종아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의 바지가 찢어지고, 붉은 피가 배어 나온다. 고통이 순간적으로 전신을 꿰뚫는다.
패널에 ‘찢-!’ 하는 소리와 함께 ‘욱!’ 하는 신음 소리가 깔린다.
**강민:** 윽!
**[장면 23]**
화면: 강민은 고통을 참고 재빨리 몸을 밖으로 빼낸다. 사냥벌레는 좁은 틈새에 비대한 몸이 끼어 꼼짝 못 하고 발버둥 친다. ‘끼아아아악!’ 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폐허를 뒤흔든다. 잔해에 갇힌 채 발버둥 치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악몽처럼 보인다.
**강민 (내레이션):**
젠장, 꽤 깊게 베였군. 다행히 놈을 붙잡아 두긴 했지만… 저 놈은 오래 발버둥 치지 않을 거다. 놈의 힘이면 저 잔해도 곧 부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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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다른 시작**
**[장면 24]**
화면: 강민이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온다. 수아가 멀지 않은 곳에서 숨어 있다가 그를 발견하고 달려온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흙먼지로 얼룩져 있다. 그녀의 작은 손이 강민의 팔을 붙든다.
**수아:** 오빠! 괜찮아요? 다쳤잖아요!
**강민:** (피 묻은 다리를 움켜쥐고)
별거 아니야.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 놈이 곧 쫓아올 거다.
**[장면 25]**
화면: 강민이 수아에게 몸을 기댄다. 수아가 강민의 부축을 받아 조심스럽게 폐허를 빠져나간다. 뒤에서는 여전히 사냥벌레의 울부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마치 폐허의 마지막 비명처럼 울린다.
**강민 (내레이션):**
오늘도 살아남았다. 상처 하나를 더 얻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이 비참한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은… 결국 ‘내일’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장면 26]**
화면: 강민과 수아가 석양이 지는 잿빛 폐허 도시를 배경으로 멀어져 간다. 석양은 붉은색이 아닌, 불투명한 회색빛을 띠고 있다. 수아의 작은 손에 쥐어진 인형이 흔들린다. 그들의 실루엣은 끝없이 펼쳐진 폐허 속에서 점처럼 작아진다.
**강민:**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아:** (고개를 끄덕이며, 강민의 팔을 더 꽉 붙잡는다)
네… 오빠.
**[장면 27]**
화면: 두 사람의 실루엣이 점점 작아진다. 폐허 위로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끝없는 잿빛 세상이 그들을 삼키는 듯하다.
**강민 (내레이션):**
우리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언젠가… 이 모든 것이 끝나는 날이 올까.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계속 걸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패널]**
화면: 잿빛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폐허. 그 위로 에피소드 제목이 다시 떠오른다.
**< 잿빛 시장의 그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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