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요새 7구역, 생체 연구동. 그곳은 언제나 흰색의 냉정한 빛으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오늘은 서늘하다 못해 싸늘한 기운이 지배하고 있었다. 유나의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불규칙하게 울렸다. 복도를 따라 늘어선 무장한 경비원들의 굳은 얼굴과 웅성거리는 낮은 목소리들이 긴장감을 더했다.
강진혁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제 페이스를 유지했다. 한 손에는 끈적한 에너지바를 씹으며, 다른 손으로는 낡은 PDA를 만지작거렸다. 늘 그렇듯 주변의 모든 것에는 무관심한 듯 보였지만, 유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은 이미 모든 것을 스캔하고 있다는 것을.
“박 박사님 연구실입니다, 진혁 씨.” 유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박 박사님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연구실 입구, 육중한 강철 문 앞에는 이미 새벽 요새의 총괄 책임자인 김상훈 소장과 경비대장 최우진이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침통함과 동시에 어찌할 바 모르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강진혁 씨, 오셨군요.” 김 소장이 굳은 얼굴로 인사했다. “상황은 보고받으셨겠지만… 믿기지 않습니다. 박 박사는 생체 에너지 분야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가시다니.”
“믿고 안 믿고는 제 소관이 아닙니다.” 진혁은 무심하게 대꾸하며 에너지바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사실 관계만 중요하죠. 문은 어떻게 열었습니까?”
최 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열었습니다. 안에서 잠겨 있었더군요. 두꺼운 강철 볼트가 모두 걸려 있었습니다.”
“그럼 시신은 그대로인가요?”
“네, 제가 확인했을 때도 그대로였습니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최 대장이 힘주어 말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제로 열린 문틈으로 연구실 안을 훑어보았다. 방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각종 복잡한 장비들이 빼곡했다. 방 한가운데, 쓰러진 박 박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네, 현재는 통제선만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상당히 충격적인 모습입니다.” 김 소장이 고개를 떨궜다.
진혁은 마치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서듯 태연하게 통제선을 넘어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유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연구실 안은 밖보다 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희미한 쇠 비린내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진혁은 바닥에 쓰러진 박 박사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박 박사는 얼굴이 창백했고, 관자놀이 부근에 끔찍한 상흔이 있었다. 외부의 강한 충격으로 인한 사망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그 어떤 둔기도 보이지 않았다.
“사인은 두부 손상으로 인한 즉사로 보입니다.” 유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흉기가… 보이지 않아요.”
진혁은 대답 없이 방을 한 바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벽의 패널부터 천장의 환기구, 바닥의 타일까지 모든 것을 훑었다. 유나는 그의 미세한 표정 변화조차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방안의 습도는 어떻지, 유나?” 진혁이 갑자기 물었다.
유나는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PDA를 확인했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45% 정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박 박사님은 민감한 생체 재료를 다루셨으니, 늘 일정하게 유지했을 겁니다.”
“음… 그렇군.” 진혁은 만족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천천히 문가로 향했다. 강제로 뜯겨 나간 문이었지만, 그는 남은 문틀과 문의 경첩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고 했죠?” 진혁이 김 소장에게 물었다.
“네, 볼트가 단단히 박혀 있었습니다.” 김 소장이 재차 확인했다. “외부에서 강제로 열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진혁은 문틀을 따라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훑는 듯했다. 그러다 특정 지점에서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아주 미세한, 거의 보이지 않는 긁힌 자국. 그리고 그 옆에는 미세한 이물질이 굳어 있었다. 금속 가루 같기도 하고, 미세하게 부서진 돌가루 같기도 했다.
“유나.” 진혁이 나직이 불렀다. “이 문틀 가장자리, 여기 이 자국을 봐. 이 파편도 채취해둬.”
유나는 그의 지시대로 현미경으로도 봐야 할 것 같은 미세한 흔적을 조심스럽게 채취했다. 육안으로는 그저 먼지처럼 보일 뿐이었다.
진혁은 고개를 들어 문틀 위쪽과 천장까지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박 박사의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시신 주변의 바닥을 더 면밀히 살폈다.
“이 방은 대피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연구실이었죠. 벽은 보강 콘크리트와 강철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고, 방음 시설도 완벽하다고 들었습니다.” 진혁이 중얼거렸다. “누군가 밖에서 침입하거나 탈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텐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들 당황하고 있습니다.” 최 대장이 말했다. “이 요새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였습니다.”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박 박사의 시신 주위를 몇 번 더 돌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특정 지점에서 멈췄다. 박 박사의 머리맡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바닥이었다. 그곳에는 육안으로 식별하기 힘든 아주 희미한 반점들이 연속해서 찍혀 있었다. 마치 아주 가느다란 무엇인가가 반복적으로 떨어진 자국처럼 보였다.
“이건…” 유나가 알아채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액체 방울 자국 같은데요?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미세하게 표면이 변색되었습니다.”
진혁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이 그제야 흥미를 찾은 듯 번뜩였다.
“그래, 아주 잘 보았어.” 진혁이 말했다. “이건 액체가 아니야. 아주 미세한 진동이 반복적으로 가해진 흔적이지.”
“진동이요?” 유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방의 벽은 겉보기엔 단단한 콘크리트와 강철 같지? 하지만 새벽 요새가 처음 지어질 때 재활용된 자재가 많았다는 걸 잊어선 안 돼. 특히 이 연구동의 일부 벽면은, 오래된 은행 금고의 벽을 재활용한 부분도 섞여 있지.” 진혁의 목소리가 점차 빨라졌다.
그는 박 박사의 시신 근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봐, 박 박사의 머리에 가해진 충격은 놀랍도록 정확해. 그리고 주변에 흉기가 없어. 이 모든 건 살인자가 방 안에 없었다는 증거가 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인자가 물리적으로 이 방에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는* 증거지.”
모두의 시선이 진혁에게 집중됐다.
“이 방은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었지. 내부에서 잠겼고. 외부에서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하지만, *닫는 방법*은 있었어.”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틀로 다시 향했다. 그리고는 벽과 문틀이 만나는 특정 지점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오래된 금고 벽은 특정 주파수의 진동에 취약해. 특히, 볼트가 박히는 문틀의 특정 부분이 그래. 살인자는 그걸 알았어.”
유나는 숨을 들이켰다. “설마… 외부에서 진동을 가해서 문을 잠갔다는 말씀이세요?”
“정확해.”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자는 문이 닫히기 직전, 혹은 닫힌 후에 외부에서 강력한 공명 진동을 벽에 가했어. 그 진동은 금고 문틀의 결함 부위를 통해 내부의 볼트를 움직여 완전하게 잠기게 했겠지. 우리가 찾은 미세한 긁힌 자국과 파편은, 그 진동 장비가 문틀에 닿았던 흔적일 가능성이 커.”
김 소장과 최 대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도 안 돼… 그런 기계가 존재합니까?” 최 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물론. 전 시대의 산업용 초음파 발생기나, 지반 조사용 진동 장비를 개조하면 충분히 가능해. 새벽 요새 지하에는 그런 낡은 장비들이 부품으로 보관되어 있지.” 진혁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박 박사를 살해한 방법… 그것 역시 외부에서 이뤄졌어.”
진혁은 다시 박 박사의 시신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시선이 천장의 환기구를 가리켰다. 그것은 일반적인 환기구보다 훨씬 작고, 철망으로 단단히 막혀 있었다.
“이 환기구, 언뜻 보기에는 단단히 막혀 있는 것 같지만, 유나.” 진혁이 말했다. “살인자는 이곳을 이용했어. 아주 가늘고 긴 도구, 예를 들면 길게 이어진 고강도 케이블이나 유연한 금속 막대에 둔기를 매달아 넣었을 거야.”
“그 작은 구멍으로요? 그건… 너무 작아요!” 유나가 외쳤다.
“물론,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지. 하지만 작은 둔기를 넣어 정밀하게 휘두를 수는 있었을 거야. 박 박사의 머리맡에 있던 미세한 자국들은, 그 도구가 정확한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바닥에 닿았던 흔적이지.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그 둔기로 박 박사의 머리를 강타한 거야.”
진혁은 천장의 환기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환기구 철망에도 미세하게 휘어진 흔적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도구는 살해 후 회수되었겠지. 밀실 살인? 아니. 살인자는 단 한 번도 이 방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어.”
모두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했다. 방 안은 다시금 침묵에 잠겼지만, 이전과는 다른, 진혁의 비범함이 만들어낸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
“그럼… 누가 그런 정교한 장비를 다룰 수 있고, 요새의 구조를 그렇게까지 잘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김 소장이 겨우 입을 열었다.
진혁은 에너지바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턱을 약간 들고 김 소장을 응시했다.
“그건 이제 당신들이 찾아야 할 범인의 문제입니다, 소장님.” 그의 눈은 마치 모든 퍼즐 조각을 맞춰버린 기계처럼 차갑고도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장비가 요새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고, 누군가는 그 사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건 분명하군요.”
새벽 요새의 밤은 언제나 길었다. 그리고 오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두운 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밤이 될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