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뼈 속까지 스며들었다. 축축한 공기는 폐를 짓누르는 납덩이 같았고, 발아래 돌바닥은 천 년도 더 된 비밀을 품고 흔적 없이 마모되어 있었다. 헤드랜턴 불빛이 닿는 곳마다 기괴한 상형문자들이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살아있는 문양처럼, 벽면에 새겨진 얼굴들은 비명을 지르는 듯했고, 왜곡된 신상들은 맹목적인 공포를 조장했다.
“이곳 공기는 유독 물질 농도가 너무 높아요. 산소통 없이 버티는 건 한계가 있을 겁니다.”
지혜의 목소리는 마스크에 가려 웅얼거렸지만, 헬멧 스피커를 통해 또렷이 들려왔다. 그녀는 손목에 찬 휴대용 분석기를 힐끗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산소통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여기까지 내려오는 데 보급품의 절반 이상을 소진했다.
현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폐부가 뜨겁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알고 있어. 지혜. 윤아는? 뭔가 찾았나?”
뒤쪽에서 랜턴 불빛이 휘둘러졌다. 고대 유적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윤아가 벽에 바싹 붙어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양을 훑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광기로 번득였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이건 기존에 알려진 어떤 고대 문명과도 달라요. 미지의 언어, 하지만 놀랍도록 정교한 설계… 신을 숭배하는 그림이 아니야. 이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야!”
그녀의 흥분한 목소리는 지하 동굴에 울려 퍼지며 묘한 불길함을 더했다. 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말은 줄여. 우린 관광 온 게 아니야. 우리가 찾는 걸 찾아내야 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고요?” 강혁이 짧게 물었다. 그는 항상 가장 마지막에 말하고, 가장 먼저 방아쇠를 당기는 남자였다. 묵직한 돌격소총을 든 그의 등장은 그 자체로 위압적이었다.
윤아는 현우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래, 인간… 아니, 인간을 닮은 존재를. 봐요, 이 그림들은… 그들이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이용해 생명을 주입하고 있어. 이건… 연금술이 아니야, 훨씬 더 과학적인 접근법이야. 어떤 실험실 같은…!”
그 순간, 멀리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돌덩이가 굴러떨어지는 듯한 소리. 이내 쿵, 쿵, 쿵 하는 규칙적인 진동이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발소리였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무수한 존재들의 발소리.
지혜가 화들짝 놀라 손전등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비췄다. “젠장, 저긴 길이 막혀 있었잖아요!”
그녀의 말대로,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들이 지나온 길은 거대한 바위가 무너져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들리는 소리는 분명 그 막힌 길 너머에서 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현우가 욕설을 내뱉으며 소총을 고쳐 잡았다. “강혁, 지혜, 엄폐! 윤아, 빨리 이쪽으로 와!”
하지만 윤아는 이미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벽에 새겨진 또 다른 그림에 홀린 듯 손을 뻗었다. 그 그림은 기괴한 에너지로 빛나는 핵을 중심으로 수많은 촉수 같은 것이 뻗어 나와 인간 형상의 존재들을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촉수들은… 붉은 액체를 주입하고 있었다.
“피… 피를 주입하고 있어! 아아, 이건 생체 병기… 죽은 자를 되살리는…!”
그녀의 손가락이 벽면에 닿는 순간이었다.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푸른빛으로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고대의 에너지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파동이 온몸을 때렸다. 동시에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에서 흙먼지와 작은 돌멩이들이 쏟아져 내렸다.
“윤아! 비켜!” 현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너무 늦었다. 윤아가 손을 댄 벽면, 그 거대한 그림 한가운데가 마치 거대한 문처럼 안쪽으로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안에서는 어둠과 함께, 썩은 살 냄새와 비릿한 쇠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악취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그것들은 일반 좀비가 아니었다. 뼈대가 기형적으로 뒤틀리고, 피부 곳곳에 알 수 없는 푸른색 발광체가 박혀 있었다. 눈은 텅 비었지만, 턱은 찢어질 듯 벌어져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이었다. 고대의 녹슨 철제 무기들이었다. 그들은 군대였다. 지하 깊은 곳에서 깨어난, 잊혀진 문명의 전사들.
강혁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돌격소총의 불꽃이 어둠을 갈랐다. 선두에 서 있던 괴물 두어 마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뒤를 이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젠장! 이건 끝이 없잖아!” 지혜가 권총을 뽑아들며 외쳤다. 그녀의 얼굴은 공포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현우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유일한 퇴로는 그들이 지나온, 이제는 완전히 봉쇄된 길이었다. 그들은 덫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윤아, 뭘 만진 거야, 도대체!” 현우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윤아는 경악한 표정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는… 나는 그저… 이 문명이 죽은 자들을 이용해 병사들을 만든 것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설마, 그들이 정말로 여기에 잠들어 있을 줄이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장 먼저 쓰러졌던 괴물 하나가 푸른빛을 내뿜으며 다시 꿈틀거렸다. 찢어졌던 피부가 기형적으로 아물고, 부러졌던 뼈대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그들은 죽지 않았다. 최소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죽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후퇴! 당장 후퇴해! 산소통은 다 썼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지혜가 절규했다.
하지만 어디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고대 병사들의 물결은 이미 그들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썩은 살점과 흙먼지가 뒤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고, 비명과 함께 고대 병사들이 던지는 녹슨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바로 그때, 현우는 저 너머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고대 병사들의 시체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푸른색 발광체들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푸른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 괴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히 죽어 있었다.
“저 발광체… 저걸 파괴해야 해!” 현우가 소리쳤다. “저게 녀석들의 약점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가장 거대한 고대 병사 하나가 현우의 코앞까지 달려왔다. 기형적으로 커다란 몸집, 푸른빛으로 번뜩이는 열두 개의 눈, 그리고 날카로운 뼈 촉수로 이루어진 팔이 현우의 심장을 향해 맹렬하게 뻗어왔다. 현우는 간신히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등 뒤에서 섬뜩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윤아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어깨는 이미 고대 병사의 뼈 촉수에 관통되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 위로, 푸른빛을 내뿜는 괴물 병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현우는 망설일 틈도 없이 총구를 겨눴다. ‘탕! 탕! 탕!’ 푸른 발광체를 향해 총알을 쏟아부었다. 괴물은 잠시 움찔했지만, 그 공격으로는 녀석의 맹렬함을 멈출 수 없었다.
“이쪽이다, 이 망할 자식아!” 강혁이 괴물 병사의 뒤에서 나타나, 미리 준비해둔 폭발물을 녀석의 등에 붙이고 버튼을 눌렀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괴물 병사의 몸체가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강혁의 얼굴에는 안도감 대신 더 깊은 절망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괴물의 몸에서 튀어나온 푸른 발광체 파편들이 바닥에 닿는 순간, 주변의 다른 시체들에게 마치 전이되는 것처럼 희미한 푸른빛을 다시 주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끝이 아니었다. 이 지하는,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고대 문명의 잊혀진 심장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은, 이제 다시 뛰기 시작했다.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은 사방이 막힌 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죽지 않는 병사들 속에서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어둠은 다시 그들을 집어삼키려 했고,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오직 괴물들의 으르렁거림과,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뿐이었다.
“탈출구… 찾아야 해… 반드시…” 현우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이미 희망의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깊은 지하에서, 그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혹은 이 고대 문명의 마지막 유물이 될 뿐일까?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