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 72화: 비룡, 혈룡을 겨누다

천하무림대회의 열기가 끓어오르는 대화련(大華蓮) 경기장. 수만 명의 환호와 비명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아쳤다. 지붕이 없는 둥근 경기장 한가운데, 수십 장(丈) 넓이의 비무대는 거대한 연꽃잎처럼 펼쳐져 있었다. 연잎처럼 부드러워 보이지만, 천근추(千斤錘)가 낙하해도 흔적조차 남지 않을 단단한 무대. 바로 그 위에서 천하의 운명이, 혹은 최소한 천하무림의 향방이 결정될 터였다.

나는 조용히 경기장 입구에 섰다. 쨍한 햇살이 머리 위에서 쏟아졌고, 온몸의 털끝 하나하나가 섬광처럼 반응하며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경기장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꽂히는 듯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가 되어 고막을 울렸다.

“다음 경기! 천하무림대회 준결승 제2경기!”

심판의 우렁찬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울려 퍼졌다.

“푸른 비룡, 단우현 선수! 입장!”

환호성은 절정에 달했다. 수많은 군중이 내 이름을 외쳤고, 나는 그들의 기대와 열망을 짊어진 채 한 걸음 내디뎠다. 비무대로 향하는 길은 짧았지만, 그 발걸음마다 온몸의 기혈(氣血)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깨를 짓누르는 시선과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가벼운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여유로워 보여야 했다. 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위압감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산 같은 의지였다.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도중, 시선은 저절로 맞은편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그가 서 있었다.

붉은색 무복을 입은 사내. 사내의 주변은 기묘하게 공기가 일렁이는 듯했다. 붉은 무복의 색상과 어울리지 않는, 창백하리만치 하얀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허리춤에는 검은색 손잡이와 붉은색 검집의 장검이 꽂혀 있었다. 그의 이름, 독고현.

그리고 그를 상징하는 별호, ‘혈룡검객(血龍劍客)’.

천하를 진동시킨 파락호 출신의 검객. 한때는 무림의 이단아로 불리며 수많은 문파의 고수들을 베어 넘겼던 자. 이제는 천하무림대회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명실상부한 절정 고수 중 한 명이었다.

나와 독고현은 무대 중앙에서 서로 마주 섰다. 비무대의 모래먼지가 한 줄기 바람에도 흩날리는 정적.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함성은 어느새 잦아들고, 모든 이목은 우리 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마치 우리가 서 있는 이곳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단우현.”

독고현의 입에서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고, 그 안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만이 존재했다.

“네놈의 별호가 ‘비룡’이라지? 같잖군. 하늘의 용은 단 하나뿐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가 말하는 하늘의 용이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용이 언제까지 하늘에 머무를 수 있을지는, 겨루어 봐야 알겠지.”

내 도발적인 말에도 독고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정 그러고 싶다면… 기꺼이 네 날개를 꺾어주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몸에서 거대한 기세(氣勢)가 터져 나왔다. 붉은 안개가 피어나는 듯한 환영과 함께, 독고현의 주변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비무대에 흩날리던 모래먼지가 일순간 그의 주위로 휘감겨 올라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맹수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고작 기세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하는 힘. 과연 혈룡검객다웠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의 기세를 받아냈다. 내 안의 기운 역시 맹렬하게 솟구쳐 올랐다. 푸른색 기운이 희미하게 내 몸을 감싸는 듯했다. 마치 푸른 용 한 마리가 붉은 용을 향해 포효하는 것 같았다.

“양 선수! 준비!” 심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서히 자세를 잡았다. 오른손이 허리춤에 매달린 목검 손잡이를 감쌌다. 비록 목검이지만, 이 목검은 단순한 목검이 아니었다. 수많은 강적과 겨루며 강해진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독고현 역시 천천히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쉬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집에서 뽑혀 나온 검날은 섬뜩하리만치 붉은 기운을 띠고 있었다. 태양 빛 아래에서도 마치 피처럼 붉게 빛나는 검. 저것이 바로 그의 보검, ‘혈명검(血冥劍)’이었다.

“시작!”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독고현의 발이 비무대를 박차고 튀어나왔다. 붉은 잔상이 섬광처럼 번쩍이며 내 눈앞에 다가왔다. 그의 속도는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혈룡의 강림’이라 불리는 그의 보법은, 마치 공간을 왜곡시키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나는 본능적으로 목검을 들어 막아냈다. ‘크아앙!’ 쇠와 쇠가 부딪히는 듯한 굉음이 비무대를 뒤흔들었다. 분명 목검인데도, 혈명검과 부딪힌 순간 쇠붙이의 격돌음이 났다. 그만큼 그의 검에 실린 내공이 엄청나다는 증거였다.

첫 일합 만에 내 팔목이 저릿했다. 그의 공격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검에 실린 엄청난 힘과 살기(殺氣)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수 십 합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의 검은 마치 살아있는 붉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내 빈틈을 노렸고,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피하며 반격의 기회를 엿봤다.

독고현의 검술은 분명 압도적이었다. 허나, 내 눈에는 그의 검술이 맹목적으로 보였다. 마치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격정적이고 파괴적이었으나,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 한 번 공격을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몰아붙이는 파도와 같았다.

나는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려 그의 검을 피했다. ‘스윽!’ 섬뜩한 검날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운 기운이 피부에 닿자 소름이 돋았다.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독고현은 비웃듯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그는 다시 한번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번에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검기가 그의 검 끝에서 피어올랐다. 붉은 기운이 깃든 검날이 서서히 춤을 추듯 휘돌아가며 하나의 거대한 용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혈룡만천(血龍滿天)!”

독고현이 외치자, 붉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용이 비무대 위를 가득 채우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맹렬한 기운과 살기가 담긴, 실체와 다름없는 검기(劍氣)였다. 용의 형상을 한 검기가 포효하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경기장을 메운 관중석에서 경악에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한순간 모든 감각이 정지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저것을 막아낼 수 있을까? 내 안의 이성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굳건한 의지가 그 혼란을 잠재웠다. 이곳은 천하무림대회. 내가 물러설 곳은 없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내 심장 속에서 끓어오르는 푸른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팔다리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성화되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붉은 용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그의 검술에 숨겨진 그 맹목적인 흐름을 깨부술 단 한 번의 기회!

나는 목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단전의 모든 내공을 끌어올렸다. 푸른 기운이 내 목검을 휘감았고, 마치 목검 자체가 푸른 용의 송곳니가 된 것처럼 번뜩였다.

“비룡승천(飛龍昇天)!”

내 입에서 터져 나온 포효와 함께, 나는 땅을 박차고 붉은 용을 향해 날아올랐다. 내 목검 끝에서 푸른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붉은 용의 턱을 향해, 나는 모든 것을 걸고 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검과 검이, 용과 용이 격돌하는 순간, 거대한 폭풍이 비무대를 강타했다. 온 세상이 잠시 붉고 푸른 섬광에 휩싸였다가, 이내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적인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관중들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렸다. 경기장 한가운데, 흙먼지가 하늘을 찌르듯 치솟아 시야를 가렸다.

과연, 이 일격의 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