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또 나잖아.”
리온은 낡은 양동이와 걸레를 든 채 투덜거렸다. 거대한 아르카나 도서관의 최하층, ‘심연의 서고’라 불리는 금지된 구역. 이곳은 수십 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폐쇄된 이후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었다. 음침하고 축축하며, 책 대신 먼지와 거미줄이 왕국을 이루는 곳. 그리고 오늘, 이 끔찍한 곳을 청소하라는 임무는 어김없이 서고의 잡일꾼, 리온에게 떨어졌다.
“이봐, 리온! 꼼수 부리지 말고 구석구석 깨끗이 해놔! 안 그러면 오늘 저녁은 굶을 줄 알아!”
계단을 내려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선배 사서인 에드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리온의 귓가를 찔렀다. 젠장,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리온에게 가장 힘들고 더러운 일을 시키고, 심지어는 식사까지 빌미로 삼았다. 리온은 이를 악물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리라. 그는 그저 마법의 재능이 조금 늦게 피어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축축한 공기, 곰팡이 냄새, 그리고 텅 빈 정적. 리온은 낡은 마법 랜턴을 들어 올렸다. 희미한 불빛이 닿는 곳마다 먼지 구덩이가 출렁였다. 금이 간 책장들은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었고, 오래된 서판 조각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제대로 된 책은 이미 오래전에 썩어 문드러졌거나, 아니면 도난당했으리라.
“이런 곳에 도대체 뭘 보관했다는 거야?”
리온은 걸레를 들고 묵묵히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라 대충 해도 될 것 같았지만, 굶는 것은 싫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보냈을까. 팔다리가 저려오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오래된 건물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 리온은 휘청거리며 비틀거렸다.
“뭐, 뭐야?!”
거대한 진동이 가라앉자, 리온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가 청소하던 벽 한구석이 쩍하고 벌어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발톱으로 긁어낸 듯한, 불규칙한 균열. 그 안쪽은 더 깊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젠장, 벽이 무너졌잖아! 이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당장 관리인에게 알릴까 생각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분명 ‘네가 제대로 청소하지 않아서’라며 비난받을 것이 뻔했다. 일단 확인이라도 해봐야 했다. 리온은 조심스럽게 균열 안쪽으로 랜턴을 비췄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설마?”
리온은 홀린 듯 균열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좁고 축축한 통로를 기어가자, 이내 작은 동굴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은 서고의 어느 부분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아니, 애초에 발견조차 되지 않았던 곳일지도 모른다.
공간의 중앙에는 낡고 거대한 석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정교하고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리온이 학교에서 배운 어떤 고대 문자나 마법 서클과도 달랐다. 석판은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마치 먼지 쌓인 깊은 바다 밑에서 건져 올린 보석처럼 신비로웠다.
리온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석판의 표면을 만졌다. 차가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표면은 미지근했고, 희미하게 진동하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온 세상이 정지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짜르르르릉!
석판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리온의 온몸을 휘감았다. 빛은 그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고통은 없었지만, 마치 영혼까지 뜨겁게 데워지는 듯한 강렬한 감각이 밀려왔다.
“으읍…!”
리온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앞에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대의 도시, 잊힌 마법사들의 찬란한 의식, 하늘을 가르는 용들의 그림자,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은 채 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감히… 이 지식을 탐하는 자여…’
‘때가 되었다… 깨어나라…’
알 수 없는 언어,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되는 메시지들이 리온의 정신을 지배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강렬한 박동과 함께, 그의 몸 안에서 거대한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리온이 이제껏 경험했던 어떤 마법보다도 순수하고, 강력하며,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의 오른손등에 푸른빛으로 빛나는 문양이 서서히 새겨졌다. 그것은 석판 위에 새겨진 문양 중 하나와 정확히 일치했다. 문양이 완성되자, 리온의 몸을 휘감던 빛의 폭풍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리온은 땀으로 축축한 몸을 일으켰다.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고, 석판은 처음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리온의 몸 안에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힘이 잠들어 있었다. 손등의 푸른 문양은 아직도 희미하게 빛나며, 마치 그의 일부가 된 듯한 감각을 전했다.
“이게… 뭐야…?”
리온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갑자기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듯했다. 벽 너머의 희미한 기척마저도 느껴지는 것 같은, 오감의 확장.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방금 전에 봤던 환영들의 잔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의 지식, 잊힌 마법의 근원, 이 세계의 진실에 대한 파편들이었다.
이곳은 단순한 폐쇄된 서고가 아니었다. 잊힌 시대의 마지막 증거이자, 거대한 힘의 보고였던 것이다.
그때였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
리온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손등의 문양을 애써 가렸다. 이 힘은… 지금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다. 적어도, 이 힘이 무엇인지 완전히 알기 전까지는.
“리온! 거기서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빨리 안 나와?!”
에드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균열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들의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리온은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새롭게 얻은 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이 세계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는 알 수 없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의 새로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