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아파트 304호: 기원의 틈새 (에피소드 1)

**[프롤로그 – 밤]**

**장면:** 고층 아파트 단지, 밤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수백, 수천 개의 창문마다 다른 색깔의 빛이 번져 나온다. 현대적이고 차가운 회색빛 건물들이 거대한 숲처럼 솟아 있다. 도시의 숨결이 느껴지는 가운데, 유독 한 아파트 건물만이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내레이션:** 이 도시의 밤은 늘 똑같다. 수없이 많은 삶이 빛나고 사라지지만,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은 누구도 쉽사리 알 수 없다. 모든 평범함 뒤에는, 때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균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치 단단한 바위 틈새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처럼, 혹은… 어둠처럼.

**[장면 1 – 지아의 아파트 304호 거실, 늦은 밤]**

**패널 1:** 아늑하지만 약간 어수선한 거실. 책상 위에는 태블릿, 스케치북, 그리고 반쯤 비워진 커피 컵이 놓여 있다. 조명은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어 방 전체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지아(20대 후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가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태블릿 화면에 코를 박을 듯 집중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하지만, 작업에 몰두한 날카로운 표정이다.

**지아 (독백):** (작게 중얼거린다) 마감… 마감… 이 빌어먹을 마감이 나를 잡아먹든, 내가 마감을 잡아먹든 둘 중 하나다. 오늘은 기필코…

**패널 2:** 테이블 위, 컵에 담긴 커피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아주 미묘한 움직임이라 지아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 소리가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온다.

**효과음:** … (정적 속 아주 미미한 진동)

**패널 3:** 지아가 길게 숨을 내쉬며 헤드폰을 벗고 기지개를 크게 켠다. 우두둑, 하는 소리가 어깨뼈에서 울린다.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 도시의 불빛은 멀리서 점처럼 반짝인다.

**지아:** 흐읍… 이제야 좀 살겠네. 죽는 줄 알았다.

**패널 4:** 지아가 목을 축이려 커피 컵을 잡으려 손을 뻗는다. 손가락 끝이 컵에 닿기 직전, 컵이 마치 누군가 민 것처럼 책상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다.

**효과음:** 쨍그랑! (컵 깨지는 소리)

**지아:** 헉!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다. 몸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난다) 앗, 뭐야?! 손이 미끄러졌나? 피곤해서 별짓을 다 하네…
**지아 (생각):** (바닥에 흩뿌려진 커피와 유리 조각을 내려다보며) 분명… 잡기 직전이었는데. 내가 밀었나? 아니, 손이 닿지도 않았어.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장면 2 – 다음 날 아침, 혜진과의 통화]**

**패널 1:** 지아가 무선 청소기로 깨진 컵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청소하고 있다.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의아함과 찜찜함이 남아있다.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혀 있다.

**지아 (전화 통화 중):** …그랬다니까. 어제 너무 피곤해서 그랬나 봐. 진짜 깜짝 놀랐어.

**패널 2:** 혜진(지아의 오랜 친구, 활발하고 현실적인 성격)이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깔깔 웃고 있다. 그녀의 뒤로는 북적이는 사무실 풍경이 보인다.

**혜진:** 야, 누가 커피 먹다 잠들었냐? 너 마감하다가 영혼까지 갈려나가는구나. 손이 아니라 뇌가 미끄러졌네, 뇌가!
**지아:** 아 진짜! 웃지 마!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설마… 이상한 건 아니겠지?
**혜진:** 뭔 이상한 거? 귀신이라도 붙었냐? (킥킥 웃는다) 너 요즘 너무 집에만 박혀있어서 그래. 햇빛 좀 쬐고,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해!
**지아:** 에이… 그럴 리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불안하다)

**[장면 3 – 지아의 아파트, 낮]**

**패널 1:** 지아가 혼자 컵라면을 먹고 있다. 어제의 일은 잊은 듯, 혹은 애써 잊으려는 듯 평화로워 보인다.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방을 밝힌다.

**패널 2:** 벽에 걸린 액자가 갑자기 삐뚤어진다. 지아가 흘끗 보고는, 한숨을 쉬며 다시 똑바로 걸어놓는다.

**지아:** 어? (무심하게 다시 건다) 벽이 삭았나.

**패널 3:** 작업실로 돌아온 지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때, 뒤편 주방에서 금속성의 ‘덜컹’ 소리가 들린다. 냄비 뚜껑이 흔들리는 소리다. 지아의 손이 멈칫한다.

**효과음:** 덜컹! 덜그럭!

**지아:** (귀를 쫑긋 세운다) 어? 뭐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패널 4:** 지아가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향한다. 주방에는 아무도 없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냄비의 뚜껑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흔들리고 있다. 주변에 바람이 불어올 만한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다. 공기는 무겁고 정적만이 흐른다.

**지아:** …바람도 없는데?

**패널 5:** 냄비 뚜껑이 갑자기 공중으로 튀어 오르더니, 바닥에 떨어져 ‘챙’ 소리를 낸다. 냄비 안에 담겨있던, 끓지 않았던 물이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휘저은 것처럼.

**효과음:** 챙! (뚜껑 떨어지는 소리) 슈우욱! (물이 튀어 오르는 소리)

**지아:** 꺄악! (놀라 뒤로 자빠진다. 눈은 공포로 가득하다) 이건… 이건 아니야…

**[장면 4 – 지아의 아파트, 밤. 공포의 시작]**

**패널 1:** 지아가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고 있다. 방 안의 모든 불은 켜져 있지만, 벽과 가구들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유독 길고 짙게 느껴진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하다.

**지아:** (떨리는 목소리) 아니야… 아니야… 내가 너무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거야. 정신 차려, 지아!

**패널 2:** 갑자기 방문이 ‘쾅’ 하고 닫힌다. 문고리가 요란하게 흔들린다.

**효과음:** 쾅! (방문이 닫히는 묵직한 소리)

**지아:**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이불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온몸을 웅크린다)

**패널 3:** 방 안의 모든 가구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벽에 걸린 액자들이 우르르 떨어지고, 책들이 책장에서 쏟아진다. 벽에서는 마치 거대한 손톱으로 긁어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낡은 건물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효과음:** 덜컹덜컹! (가구 흔들리는 소리) 콰르릉! (액자 떨어지는 소리) 우당탕탕! (책 쏟아지는 소리) 긁적긁적! (벽 긁는 소리, 섬뜩하게 반복된다)

**지아 (생각):** (눈물이 고인다. 몸이 경련한다) 이건… 이건 아니야… 이건 내가 아는 현실이 아니야… 분명히… 분명히 뭔가 있어…!

**패널 4:** 침대 발치, 널브러져 있던 스케치북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른다. 지아는 이불 틈으로 간신히 그 모습을 훔쳐본다. 스케치북의 페이지들이 미친 듯이 팔랑거리기 시작한다.

**효과음:** 후드득 후드득! (종이 넘어가는 소리, 점점 더 거세진다)

**패널 5:** 스케치북이 지아의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마지막으로 펼쳐진 페이지에서 멈춘다. 그 페이지에는 지아가 최근에 스케치했던, 기이하고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 문양은 마치 수많은 ‘눈’들이 중앙에서 ‘검은 균열’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형태다. 그 그림은 어둠 속에서도 기묘한 빛을 내뿜는 듯하다.

**지아 (공포에 질린 표정.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 스케치북을 가리킨다.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 이건… 내가 그렸던…

**패널 6:** 갑자기 스케치북의 문양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는 마치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방 한가운데로 모이더니, 점점 더 짙은 형체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 형체는 완벽한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마치 ‘갇혀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오려는’ 듯한 기이하고 불길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배경의 고대 문양은 더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하며, 방 안을 섬뜩한 기운으로 채운다.

**효과음:** 쉬이이익… (연기 피어오르는 소리, 점점 커진다) 으으으으… (낮게 울리는 불길한 소음)

**지아:** (숨조차 쉬지 못한다. 눈은 공포와 경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현상으로 가득 차 있다.)

**내레이션:** 도시의 평범한 아파트, 그 익숙한 벽 속에 갇혀 있던 존재가 마침내 ‘틈’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틈은, 지아가 무심코 그려낸 ‘상상의 문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거대한 무언가의 서막이, 이제 막 이 아파트 304호에서 열리려는 참이었다.

**[에필로그]**

**장면:** 지아의 아파트 건물, 멀리서 잡아 한 건물만 클로즈업한다. 수많은 창문 중 304호 창문에서 희미하게 검고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의 다른 건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평화롭게 서 있다.

**내레이션:** 그녀의 일상은 산산이 조각났다. 이제 그녀가 마주할 것은, 평범한 도시 너머에 숨겨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진실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손끝에서부터, 이 세계의 균열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