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스며드는 공허의 그림자**

척박한 흙먼지가 발목을 휘감았다. 고요의 전초기지는 이름 그대로였다. 죽은 듯한 고요. 세라는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뒤따르던 진과 하린이 그림자처럼 멈춰 섰다. 셋은 낡은 바위틈에 몸을 숨긴 채 부패한 제국의 전초기지를 응시했다. 회색빛 벽은 이끼에 덮여 있었고, 깃대에는 한때 펄럭였을 깃발의 너덜한 조각만이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다.

“너무 조용해.”
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낮게 울렸다. 숙련된 사냥꾼의 본능이었다. 이곳은 제국군의 보급로 요충지였다. 항상 시끄러운 병사들의 고함과 마차 바퀴 소리로 가득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 하나의 미동도 없었다. 마치 이곳 자체가 거대한 폐허가 된 것 같았다.

“며칠 전 정찰대의 보고는 병력이 증강되었다는 내용이었어. 이 정도 규모의 부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리 없어.”
세라는 망원경을 들어 전초기지의 내부를 훑었다. 망루는 텅 비었고, 병영의 문은 활짝 열린 채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 흔치 않은 광경에 차가운 불안감이 등골을 타고 올랐다.

“저기, 대장님…”
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전초기지의 외곽, 부러진 깃대 아래였다. 거무튀튀한 액체가 흙바닥에 넓게 스며들어 있었다. 핏자국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둡고 끈적거려 보였다.

“피가 아냐. 뭔가 다른 거야.”
진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언제나 냉철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미세한 동요가 스쳤다.

“너무 오래 지체할 수 없어. 제국이 검은 비명 협곡에서 뭘 캐내고 있는지 알아내야 해. 이곳은 그 작업의 최전선이야.”
세라의 명령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지만, 묵묵히 세라를 따랐다. 셋은 그림자처럼 움직여 전초기지의 무너진 담을 넘어섰다.

내부는 더욱 기괴했다. 창고의 문은 뜯겨 나갔고, 선반들은 무참히 부서져 있었다. 벽에는 날카로운 것으로 긁힌 듯한 자국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그 긁힌 자국들은 단순히 파괴의 흔적이 아니었다. 어딘가 기하학적이고, 동시에 원시적인 문양처럼 보였다.

“이건… 사람이 한 짓이 아니야.”
진이 부서진 상자들을 발로 헤치며 말했다. 그의 눈이 창고 한가운데에서 발견된 기이한 물체에 멈췄다. 그것은 말라붙은 살점과 뼈, 그리고 알 수 없는 금속 조각들이 뒤섞인 덩어리였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녹아내린 후,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비린내와 쇠 냄새, 그리고 썩어가는 시체의 달큰한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향이었다.

“숨쉬기 힘들어…”
하린이 입을 막으며 웅크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정신 차려, 하린. 제국의 더러운 짓거리가 분명해. 그들이 검은 비명 협곡에서 가져온 것 때문에…”
세라가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녀의 말은 이내 잦아들었다. 멀리서, 전초기지 내부의 병영 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흐느끼는 소리이자, 동시에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기도 했다. 억눌린 고통의 신음이었다.

세라는 조심스럽게 병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은 권총을 꽉 쥐고 세라의 뒤를 따랐고, 하린은 공포에 질린 채 두 사람의 그림자에 기대듯 움직였다. 병영의 문은 안쪽에서 박살 나 있었다. 비릿한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경악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병영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침대와 사물함들이 뒤집혀 있었고, 바닥에는 구토물과 배설물, 그리고 이름 모를 끈적한 액체들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한 명의 병사가 웅크린 채 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제국군의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차마 온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의 살갗은 잿빛으로 변색되어 있었고, 눈은 공허하게 풀려 있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입술은 찢어져 귀밑까지 벌어져 있었고, 그 안쪽에는 닳아버린 잇몸과 길게 늘어진 혀가 징그럽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팔을 긁어대고 있었는데, 손톱 아래로 붉은 살점이 드러나 있었다.

“목소리… 목소리가… 안 돼… 제발… 멈춰…”
병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의 눈이 공포에 질린 채 세라 일행을 향했다. 하지만 그 시선은 그들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했다.

“저게 뭐야…?” 하린이 숨을 삼켰다.

“감염된 건가? 아니면 정신이 나간 건가?” 진이 경계 태세를 풀지 않으며 물었다.

세라는 병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그는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제국이 검은 비명 협곡에서 대체 뭘 캐낸 거야?” 세라가 낮게 물었다.

병사의 몸이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천장을 뚫고 저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그림자… 그림자가 말을 해… 심연이 속삭여… 온다… 오고 있어…”
병사의 말은 알아듣기 힘든 중얼거림이었지만, 그 마지막 단어는 또렷했다.
“…그것이, 너희를 기다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병사의 몸이 다시 한번 크게 경련했다. 그리고 그의 찢어진 입에서, 인간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비명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듣는 이의 뇌를 찢어버릴 듯한 불협화음이었고, 공간 자체를 뒤틀리게 만드는 듯한 진동이었다.

“젠장!” 진이 귀를 막으며 외쳤다.

하린은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귀를 막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세라 역시 두통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그녀는 병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안에서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의 영혼을 볼 수 없었다. 오직 광기, 그리고 깊은 심연의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그때, 전초기지 바깥에서 낮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땅이 흔들리고, 병영의 천장에서 먼지와 잔해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지진이 아니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마치 땅속에서 잠들어 있던 거대한 짐승이 깨어나는 듯한 포효였다.

“흑암의 포효…!”
세라의 입에서 절박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제국이 그들의 마지막 보루, ‘검은 비명 협곡’에서 깨워낸 것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병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공포, 모든 것을 뒤틀고 파괴하는 저주 그 자체였다.

“하린! 진! 당장 이 전초기지를 벗어나야 해! 우리가 너무 깊이 들어왔어!”
세라는 망설임 없이 병영의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진은 하린을 부축하며 세라의 뒤를 따랐다. 굉음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초기지 전체가 그 굉음에 반응하며 뒤틀리는 것 같았다.

바깥으로 나오자, 그들은 전초기지의 외곽, 검은 비명 협곡 방향에서 올라오는 검은 안개를 보았다. 단순한 안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움직이며, 닿는 모든 것을 부식시키고 뒤틀리게 만들었다. 안개가 스친 바위들은 회색빛으로 변하며 부스러져 내렸고, 나무들은 뼈대만 남긴 채 바스러졌다.

“저게… 저게 제국이 깨워낸 거야?”
하린의 목소리는 완전히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검은 안개 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망자들이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뒤틀린, 차마 눈으로 담을 수 없는 공포의 실체였다.

“아니… 저건 시작에 불과해. 저 안개는 그저 그 존재가 내뿜는 숨결일 뿐이야.” 세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우리는 제국이 검은 비명 협곡의 어떤 심연을 건드렸는지 알아내야 해. 그래야만 반란군이 무너지지 않을 거야.”

검은 안개가 빠르게 전초기지를 삼키고 있었다. 굉음은 이제 그들의 바로 뒤통수를 때리는 듯했다. 세라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병영 안에서 미쳐버린 병사가 찢어진 입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눈은 여전히 천장을 뚫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온다… 오고 있어… 피의 심연… 너희도… 곧…”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은 안개가 병영 전체를 집어삼켰다. 세라 일행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들의 뒤에서 전초기지의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하지만 그 어떤 물리적인 붕괴 소리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검은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였다. 그것은 고통받는 자들의 절규이자, 잊힌 존재들의 속삭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가 합쳐져, 마치 거대한 존재가 세상의 모든 공포를 품고 웃는 듯한 섬뜩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이 고요한 파멸의 그림자 속에서,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들의 귓가에는, 검은 안개 속에서 스며 나오는 섬뜩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너희의 반란은… 이미, 파멸할 운명이다…*

세라는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살아남아 이 진실을 알려야 했다. 제국이 건드린 것은 단순한 고대의 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심연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심연은 이미 세상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