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천랑산맥의 등줄기를 타고 기어오르는 바람은 칼날 같았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은 지친 나뭇가지들을 흔들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단우는 바위틈에 몸을 바싹 붙인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깎아지른 듯한 협곡 아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흑영루.

철룡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흑영대주, 그 잔혹한 그림자의 본거지였다. 피비린내 나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 곳. 지난 세월, 단우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철룡의 그림자가 가장 깊게 드리운 곳이기도 했다.

한때는 모두가 우러러보던 명문 정파의 후계자였던 단우. 철룡은 그의 의형제였고, 누구보다 믿었던 벗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 함께 무공을 연마하며, 강호의 정의를 지키겠노라 맹세했던 날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철룡의 칼날이 그의 등에 꽂히던 그 순간, 믿음은 산산조각 났고, 따뜻했던 세상은 싸늘한 지옥으로 변했다.

“미안하다, 단우.”

그 비릿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등줄기를 뚫고 들어오던 차가운 칼날의 감촉. 살점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보다 더 생생했던 것은, 철룡의 눈에 서려 있던 지독한 승리감과 탐욕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올라온 지난 수년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한 시간이었다. 복수. 그 지독한 복수의 칼날을 갈기 위해 단우는 모든 것을 바쳤다. 허울뿐인 명성과 과거의 영광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버렸다. 오직 살의만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의 손이 허리춤의 검집으로 향했다. 투박하고 검은 철검. 한때 그가 지녔던 화려한 명검, ‘청룡검’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범한 검이었다. 그러나 이 검에는 그의 피와 땀, 그리고 억겁의 증오가 서려 있었다.

차가운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단우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은밀하고 물결처럼 유연했다. 흑영루의 외곽을 지키는 수많은 그림자들이 있었지만, 단우의 눈에는 그들의 허점과 빈틈이 선명하게 보였다. 과거의 그는 정정당당한 정파의 후예였으나, 지금의 단우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잔혹한 사냥꾼이었다.

한순간, 거대한 바위가 바람에 실려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보였던 단우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어진 착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흑영루 외곽을 지키던 흑영대의 무사 두 명이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기척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누구냐!”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허리춤의 도를 뽑아 드는 순간, 그들의 눈앞에는 오직 번뜩이는 검은 선만이 보였다.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무사의 목에서 붉은 선이 그어지고, 힘없이 쓰러지는 육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단우는 칼날에 묻은 피 한 방울까지 깨끗이 털어내며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어둠 속을 꿰뚫는 단우의 눈은 흑영루의 모든 감시망과 함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익힌 ‘잔혼검법(殘魂劍法)’은 단순한 검술이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난 잔인한 혼이 깃든, 예측 불가능하고 파괴적인 기술이었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상대를 무너뜨리는 필살의 검.

마침내, 흑영루의 깊은 곳, 가장 은밀한 밀실 앞에 단우가 섰다. 무겁고 육중한 철문 너머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철컥!’

단우는 지체 없이 철문을 열어젖혔다. 밀실 안은 의외로 검소했다. 탁자 하나, 의자 하나,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

남자는 고개를 돌려 단우를 바라보았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 한쪽으로 비틀린 입술, 그리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산한 기운. 흑영대주였다.

“네놈이… 단우?” 흑영대주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눈에는 경멸과 함께 미묘한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죽은 줄 알았는데, 기어이 여기까지 찾아왔군. 그 허접한 검술로 여기까지 기어들어 올 줄은 몰랐다.”

단우의 손에 들린 검에서 희미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너의 목을 취할 셈이다.”

“하! 웃기는군!” 흑영대주가 크게 웃었다. “정파의 잔재들이나 배우는 물러터진 검술로는 나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거다. 네놈이 살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 용하다면 용한 일이지. 철룡 님께서 직접 확인하시지 않은 것이 실수였군.”

“철룡에게 전해라.” 단우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강철 같았다. “곧 그자의 목을 직접 베어갈 것이라고.”

“건방진 소리!”

흑영대주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 그의 무공, ‘흑영참(黑影斬)’이었다. 어둠 속에서 상대를 유린하고 단숨에 숨통을 끊는 흑영대의 최상위 기술. 단우의 뒤에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고,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목덜미를 노렸다.

‘쉬이익!’

그러나 단우는 반응조차 하지 않은 듯 그대로 서 있었다. 칼날이 그의 피부에 닿기 직전, 단우의 몸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옆으로 미끄러져 사라졌다. 흑영대주의 검은 허공을 갈랐고, 그가 휘두른 검의 잔상조차 잡히지 않았다.

“건방지군!” 흑영대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조금은 변했구나, 쓰레기.”

단우는 이미 흑영대주의 왼쪽 옆구리에서 검을 꽂아 넣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의 검은 그림자처럼 빠르고,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파고들었다.

‘챙!’

흑영대주가 간발의 차이로 몸을 틀어 단우의 검격을 막아냈다. 그의 검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흑영대주는 놀란 듯 단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서렸다.

“겨우 이 정도인가?” 단우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철룡의 개라는 놈이 이토록 허약할 줄이야.”

“크아악!”

흑영대주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모욕감과 분노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그림자가 밀실을 가득 메웠고, 그 모든 그림자가 단우를 향해 동시에 칼날을 휘두르는 듯했다. 흑영대주의 ‘흑영참’이 절정에 달한 것이었다.

“죽어라, 쓰레기!”

단우는 쏟아지는 그림자 속에서 고요했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차가운 얼음처럼 침착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혼란스러운 그림자들이 아니었다. 그 모든 그림자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진실된’ 흑영대주의 움직임이었다.

‘잔혼검법 제 삼식, 환영멸도(幻影滅刀)!’

단우의 검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마치 시공간을 비틀어놓는 듯한 기이함을 품고 있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검은, 쏟아지는 수십 개의 칼날을 마치 거대한 파도를 가르는 뱃머리처럼 정확하게 헤치고 나아갔다. 수많은 그림자들이 단우의 검에 스치자마자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단 하나의 그림자만이 남았다. 흑영대주, 그 자신이었다. 그의 눈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자신이 평생을 갈고닦은 ‘흑영참’이 이렇게 허무하게 파훼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푸슉!’

단우의 검이 흑영대주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흑영대주는 피를 토해냈다. 그의 몸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단우는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말해라, 철룡이 노리는 것이 무엇이냐!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지?”

흑영대주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그는 피거품을 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크큭… 철룡 님은… 이미 예전의 그분이 아니시다… 너 따위가 감히…!”

“대답해!” 단우의 목소리가 흑영루를 뒤흔들었다.

“대륙의… 패권… 신의… 힘… 그걸 손에 넣으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흑영대주의 목소리는 마지막 숨을 내뱉듯 끊겨버렸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한 채 굳어졌다.

단우는 흑영대주의 시신을 힘없이 놓았다. ‘신의 힘’, ‘대륙의 패권’. 단순한 무림의 지배가 아니었다. 철룡의 야망은 자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는 흑영루를 빠져나왔다.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차가운 바람을 맞았다. 피투성이가 된 검을 고쳐 잡았다. 복수는 이제 시작이었다. 아니, 복수를 넘어선 거대한 재앙을 막아야 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랑산맥의 끝자락, 거대한 그림자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산맥이 단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은 철룡의 거점, ‘패천각(霸天閣)’이 위치한 곳이었다. 그의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과의 싸움, 그 거대한 서막이 이제 막 열린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