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세이렌: 망각의 유물
**프롤로그**
[장면 시작]
**내레이션 (차분하지만 스산한 음성):**
광활한 우주. 검은 벨벳 위에 수놓인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수십억 개의 별들. 그 별들 사이를 유영하는 것은 어둠보다 더 짙은 침묵이었다. 인간이 명명한 은하계의 끝, 알려진 모든 탐사 경로를 벗어난 미지의 영역. 이곳은 단순히 ‘미개척지’가 아니었다. 태초의 공포, 우주의 본질적인 무관심이 살아 숨 쉬는, 아니, 존재 자체를 압도하는 망각의 바다였다.
작은 점 하나가 이 거대한 검은 바다를 가로지른다. 인간의 기술력이 만들어낸 작은 불빛, 탐사선 ‘세이렌’. 선체에 반사된 별빛은 찰나의 환상처럼 스쳐 지나갈 뿐, 세이렌은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화면 전환: 세이렌 호의 함교]
**S.F.X.:** (저음의 엔진 소리, 간헐적인 컴퓨터 경고음)
함교는 고요했다. 푸른색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와 희미한 조명이 공간을 채우고, 세 명의 승무원이 각자의 임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함장 이진아 (30대 후반, 날카로운 눈빛과 굳건한 표정):**
(시트러스 향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민준, 현재 위치와 항해 보고.”
**항해사 김민준 (20대 중반, 약간 긴장한 듯 보이지만 숙련된 손놀림):**
“함장님, 현재 은하 중심으로부터 2만 3천 광년, 탐사선 기준 좌표 베타-78 지점 통과 중입니다. 예정 경로 이탈률 0.001%, 엔진 출력 안정적입니다. 특이 사항 없습니다.”
**함장 이진아:**
“그래, 특이 사항이 없는 게 이상할 지경이지. 닥터 서현, 과학 부서는 여전히 이상 신호의 원인을 찾고 있나?”
**과학 담당 닥터 서현 (30대 초반, 지적인 인상, 살짝 피곤해 보임):**
(자신의 콘솔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함장님, ‘이상’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합니다. 어제부터 감지된 이 에너지 파장은 저희가 아는 어떤 물리적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위적인 흔적도 보이지 않고요. 마치… 우주 자체가 만들어낸 오류 같습니다.”
**함장 이진아:**
“오류라… 허용 오차 범위를 넘어섰나?”
**닥터 서현:**
“오차 범위를 넘어선 정도가 아닙니다. 애초에 감지될 수 없는 파장입니다. 존재 자체가 모순입니다. 게다가… 범위가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저희 쪽으로요.”
김민준이 갑자기 움찔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모니터에 희미한 경고음과 함께 붉은색 글자가 깜빡였다.
**항해사 김민준:**
“함장님! 미확인 물체 접근! 일반적인 소행성이나 파편이 아닙니다. 중력 왜곡이… 감지됩니다!”
**함장 이진아:**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킨다. 목소리에 긴장감이 깃든다)
“중력 왜곡? 스크린에 띄워!”
함교 중앙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일렁이더니,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형태는 불분명했지만, 그 거대함은 세이렌 호를 순식간에 집어삼킬 듯했다. 별빛조차 흡수하는 듯한 짙은 어둠,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불가능한 기하학적 형태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닥터 서현:**
“이럴 수가… 저건… 우주선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천체도 아니고요.”
**항해사 김민준:**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노려본다) “거리 500킬로미터… 400…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피해야 합니다, 함장님!”
**함장 이진아:**
“아니, 민준. 저건 움직이는 게 아니야. 우리가 빨려 들어가고 있어.”
그 순간, 세이렌 호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모든 디스플레이가 지지직거리며 노이즈를 뿜어냈다.
**S.F.X.:** (거대한 금속이 뒤틀리는 소리, 경고음이 최고조에 달함)
**닥터 서현:**
“에너지 파장이… 급격하게 증폭하고 있습니다! 함장님, 모든 시스템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함장 이진아:**
“비상 출력! 엔진 가동률 최대! 이 중력장을 벗어난다!”
그러나 세이렌 호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불가능한 기하학적 구조물은 더욱 가까이 다가왔고, 그 거대하고 침묵하는 존재는 마치 우주 자체가 형상화된 절망처럼 세이렌 호를 응시하는 듯했다.
**내레이션:**
세이렌 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서서히 그 존재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승무원들은 깨달았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단순히 미지의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잠들어 있던 우주의 악몽이 깨어나는 서곡이었다. 그리고 그 서곡의 첫 음은… 영원한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는 공포의 메아리였다.
[장면 종료]
—
**1화: 심연의 메아리**
[장면 시작]
**S.F.X.:** (세이렌 호 내부의 규칙적인 진동음, 간헐적으로 시스템 오류음)
세이렌 호는 이제 미지의 구조물과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파묻힌 듯, 함교의 메인 스크린은 검은색 외곽선만 겨우 보여주고 있었다. 구조물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고, 빛도 반사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절대적인 어둠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함장 이진아:**
(굳은 얼굴로 모니터들을 살핀다) “손상 보고. 김민준.”
**항해사 김민준:**
“함장님, 외부 센서 일부 손상. 동력 계통 이상 징후는 없으나, 모든 전자기기가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함체 외벽 센서들은…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저 존재가 모든 데이터를 삼켜버리는 것 같습니다.”
**닥터 서현:**
“삼킨다기보다는… 재정의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희의 측정 기준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저것은 질량도, 에너지도, 물질도 아닙니다. 하지만 명백히 존재합니다. 우주 공간에… 불가능한 기하학적 구조로요.”
메인 스크린에 미지의 구조물 근접 영상이 띄워졌다. 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매끈한 검은 표면은 보는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뒤틀리는 듯했고, 때때로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환각을 유발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검은 수정 같았다.
**보안 담당 강철 (30대 중반, 건장한 체격, 무뚝뚝한 표정):**
(함교 문을 열고 들어서며) “함장님, 보안 담당 강철입니다. 함선 내부 순찰 완료했습니다. 특이 사항은 없었으나… 몇몇 승무원들이 두통과 구역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우주병과는 다릅니다.”
**함장 이진아:**
“알았네, 강철. 승무원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고, 의료팀에서 진찰하도록 해.”
**닥터 서현:**
“그것 역시 저 존재의 영향일 겁니다. 저희의 인지 능력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정보들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저 표면의 불가능한 패턴들, 존재하지 않는 방향에서 들려오는 듯한 초저주파 진동…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날 겁니다.”
**함장 이진아:**
(고민에 잠긴 듯 턱을 쓸어내린다) “우리는 이제 이 미지의 존재와 너무 가까이 있다.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조사를 시작한다.”
**항해사 김민준:**
“조사요?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저것이 우리에게 적대적일 수도 있습니다!”
**함장 이진아:**
“적대적이었다면 이미 우린 파괴되었을 것이다. 우릴 빨아들였을 때 끝냈을 테지. 지금 저것은… 침묵하고 있다. 마치 우리를 기다린 것처럼.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 이 임무의 목적은 미지의 탐사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보다 더한 미지가 어디 있겠나.”
**닥터 서현:**
“함장님의 결정에 동의합니다. 제 생애 최고의 발견이 될 겁니다. 인류의 과학사를 송두리째 바꿀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함장 이진아:**
“강철, 근접 조사팀을 준비해라. 닥터 서현, 자네도 합류해. 박진우 기관 담당도 함께 가게. 혹시 모를 내부 동력원이나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르니.”
**보안 담당 강철:**
“알겠습니다, 함장님. 최정예 인력으로 꾸리겠습니다.”
**함장 이진아:**
(탐사 장비를 점검하는 강철과 서현을 보며) “잊지 마라. 최우선은 생존이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어떤 이상 징후라도 포착되면 즉시 복귀해라. 통신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닥터 서현:**
“명심하겠습니다, 함장님.”
[화면 전환: 세이렌 호 격납고. 조사팀이 준비 중이다.]
**S.F.X.:** (장비 착용 소리, 공기압 빠지는 소리)
닥터 서현은 첨단 센서와 분석 장비가 가득 찬 가방을 메고 있었다. 강철은 중무장한 방호복을 입고 플라즈마 소총을 점검했다. 박진우 기관 담당(30대 중반, 기름때 묻은 작업복 위에 방호복을 입음)은 휴대용 공구와 탐지기를 챙겼다.
**박진우 기관 담당:**
“젠장, 함장님이 왜 하필 나를 보내는 건지. 이런 괴상한 물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저거 고장 나도 못 고칠 것 같은데요.”
**닥터 서현:**
“고장이라뇨, 박진우 씨. 저건 우리의 개념 너머에 있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고장 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보안 담당 강철:**
“닥터, 농담이 아니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총알이 통하는 적이 훨씬 낫습니다.”
**닥터 서현:**
“글쎄요. 총알이 통하지 않는 존재가 더 흥미롭지 않나요?”
강철은 닥터 서현의 태연함에 살짝 짜증이 나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한숨을 쉬었다.
**보안 담당 강철:**
“자, 이제 나갈 시간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격납고의 외부 문이 천천히 열리자, 압도적인 검은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이렌 호의 거대한 선체도 그 앞에서는 작은 모형처럼 왜소해 보였다. 우주복 헬멧의 조명등이 구조물의 표면을 비추었지만, 빛은 그저 어둠 속으로 흡수될 뿐이었다. 마치 그 표면 자체가 빛을 삼키는 입인 것처럼.
**닥터 서현:**
(헬멧 내부 통신으로) “함장님, 외부 조사팀 출격 준비 완료했습니다. 이제… 접근합니다.”
**함장 이진아 (헬멧 통신):**
“알았다. 조심해라, 서현. 어떤 미약한 변화라도 즉시 보고해.”
세 명의 승무원은 세이렌 호의 선체를 따라 천천히 미지의 구조물로 이동했다. 그 거대한 침묵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작고 나약한 존재였다. 표면은 놀랍도록 매끄러웠다. 그 어떤 연결 부위나 틈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인 것처럼.
**박진우 기관 담당:**
“이럴 수가… 아무런 접합 흔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통짜로 만든 거죠? 말도 안 돼.”
**닥터 서현:**
(자신의 장비를 표면에 대본다) “데이터 수집 시도… 실패. 모든 센서가 먹통입니다. 이 물질은… 저희가 아는 어떤 원소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비물질 같으면서도… 엄청난 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닥터 서현의 손이 표면에 닿았다. 검은 표면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허공 같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무언가 포착되었다.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세한 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너무나 복잡하고 미세해서 눈으로 제대로 식별하기도 힘들었다. 그것은 그림이나 문자라기보다는, 마치 수학적인 공식이나 살아있는 신경망처럼 보였다.
**닥터 서현:**
“이것 좀 보십시오… 패턴입니다. 표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패턴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공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자연의 극대화된 복잡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보안 담당 강철:**
“닥터, 패턴이든 뭐든, 저에게는 그저 검은 돌덩이로 보입니다. 어디 진입할 곳이라도 있습니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닥터 서현이 손을 뗀 순간, 그가 손을 댔던 지점의 패턴이 아주 미세하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섞인 몽환적인 빛이었다.
**박진우 기관 담당:**
“젠장! 저거… 빛납니다!”
빛은 점점 확산되더니, 닥터 서현의 눈앞에 있던 검은 표면에 거대한 문양이 새겨졌다. 그것은 단순히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차원 자체가 뒤틀리는 듯, 빛나는 문양의 한 부분이 안쪽으로 스르륵 밀려들어 갔다. 그리고 그곳에, 검은 심연으로 향하는 통로가 열렸다.
**함장 이진아 (헬멧 통신):**
“서현!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일어났지?!”
**닥터 서현:**
(넋을 잃은 듯, 목소리에 경외심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문… 문이 열렸습니다. 함장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안 담당 강철:**
“함장님! 계획에 없던 상황입니다! 복귀해야 합니다!”
**함장 이진아 (헬멧 통신):**
“서현! 강철! 당장 복귀해라! 명령이다!”
하지만 닥터 서현은 함장의 명령을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완전히 열린 문 안쪽의 어둠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그 빛은 마치 멀리서 손짓하는 등불 같기도 했고, 깊은 심해에서 떠오른 거대한 눈동자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매혹이 그를 잡아끌었다.
**닥터 서현:**
(헬멧 통신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이것은… 인류가 본 적 없는 진실입니다. 들어가야 합니다…”
강철이 닥터 서현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닥터 서현은 홀린 듯 그 손을 뿌리치고 천천히 열린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진우는 공포에 질린 채 강철의 뒤에 숨어 있었다.
**보안 담당 강철:**
“닥터 서현! 멈춰요! 위험합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닥터 서현의 몸이 완전히 문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열렸던 문은 흔적도 없이 다시 닫혔다. 표면의 빛나는 문양도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완벽한 검은 벽으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보안 담당 강철:**
(당황하여 벽을 두드린다) “닥터 서현! 들립니까! 닥터 서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완벽한 침묵만이 그들을 감쌌다. 강철과 박진우는 망연자실한 채, 사라진 문과 닥터 서현이 있던 자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헬멧 안에서, 함장 이진아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함장 이진아 (헬멧 통신):**
“서현! 서현! 들리는가! 강철! 박진우! 무슨 일이냐! 당장 복귀해라!”
[장면 종료]
—
**2화: 불가능한 조우**
[장면 시작]
**S.F.X.:** (세이렌 호 함교 내부의 정적, 낮은 시스템 노이즈)
함교는 얼음처럼 차가운 정적에 휩싸였다. 메인 스크린은 여전히 검은 미지 구조물의 완벽한 표면만을 비추고 있었다. 강철과 박진우는 세이렌 호 격납고로 복귀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충격과 공포, 그리고 알 수 없는 혼란이 깃들어 있었다.
**함장 이진아:**
(목소리가 떨린다) “설명해라, 강철. 서현 박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보안 담당 강철:**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함장님. 제가 막지 못했습니다. 닥터 서현이… 그 구조물의 표면에 손을 대자 갑자기 문이 열렸습니다. 닥터는 마치 홀린 듯 그 안으로 들어갔고, 문은… 흔적도 없이 닫혔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찾아봐도… 문이 있던 자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박진우 기관 담당:**
(얼굴이 창백하다) “함장님, 저건… 괴물입니다. 우리를 유혹해서 삼켜버리는… 괴물이에요. 우리는 도망쳐야 합니다! 제발요!”
**함장 이진아:**
(주먹으로 콘솔을 내리친다) “도망칠 곳이 없어! 애초에 여기서 나가지도 못해! 엔진이 풀가동되어도 저 중력장을 벗어날 수 없다고!”
그때, 함교의 모든 디스플레이가 지직거리더니, 갑자기 서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S.F.X.:** (통신 노이즈, 기이하게 일그러진 서현의 목소리)
**함장 이진아:**
“서현! 서현인가?! 들리는가!”
화면 속 서현의 얼굴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그의 눈은 동공이 풀린 듯 멍했고,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배경은 완전히 어두웠지만,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였다.
**닥터 서현 (왜곡된 목소리):**
“함장님… 여기는… 놀랍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함장 이진아:**
“서현!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위험하지는 않은 건가?!”
**닥터 서현 (왜곡된 목소리):**
“위험… 아닙니다. 이곳은… 이해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빛이… 존재의 근원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서현의 목소리가 점점 더 기이하고 몽환적으로 변해갔다. 그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강하게 반사되는 것이 보였다.
**닥터 서현 (왜곡된 목소리):**
“패턴… 보세요. 함장님. 이 모든 것은… 살아있는 언어입니다. 우리가 꿈꾸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 있습니다. 우주는… 노래합니다.”
화면 속 서현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그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언어라고 할 수 없는,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저음의 읊조림이었다. 인간의 성대로는 낼 수 없는 소리, 존재 자체를 흔드는 듯한 불협화음이었다.
**S.F.X.:** (불규칙적인 저음의 읊조림, 신경을 긁는 듯한 고음의 비명소리)
**항해사 김민준:**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린다) “소리가… 소리가 들려요… 머릿속에서… 젠장!”
함교의 조명이 깜빡이더니, 천장에서 희미한 액체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름도, 물도 아닌, 끈적하고 검붉은 액체였다.
**박진우 기관 담당 (격납고 통신):**
“함장님! 격납고의 벽에서… 피 같은 게 흐르고 있습니다! 환각인가요?!”
**함장 이진아:**
“모두 진정해! 서현! 제정신으로 돌아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하지만 서현의 얼굴은 더욱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은 완전히 뒤집혔고, 입은 한계 이상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그의 모습 뒤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빛이 점점 더 강해지더니, 거대한 촉수 같은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닥터 서현 (절규에 가까운 기이한 음성):**
“그들이… 옵니다… 함장님… 우리의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환영… 환영합니다…”
**S.F.X.:** (서현의 비명, 통신이 끊기는 노이즈, 기계가 터지는 소리)
서현의 통신이 갑자기 끊겼다. 스크린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고, 함교는 혼란에 휩싸였다. 조명은 불안정하게 깜빡이고, 함선 전체에서 기계음과 함께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다.
**항해사 김민준:**
“함장님! 함선 내부 시스템이… 미쳤습니다! 중력 안정기가 오작동하고 있어요! 제어 불능입니다!”
**보안 담당 강철 (격납고 통신):**
“함장님! 이곳도 난리입니다! 몇몇 승무원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벽에 머리를 박고 있습니다!”
**함장 이진아:**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닥터 서현… 그가… 당했어. 그 외계 유물에… 침식당한 거야.”
그때, 함선 전체가 다시 한 번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단순히 중력장의 영향이 아니었다. 마치 함선 자체가 내부에서부터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스러운 진동이었다.
**S.F.X.:** (함선 외벽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 승무원들의 비명)
**함장 이진아:**
“무슨 일이야! 김민준! 손상 보고!”
**항해사 김민준:**
“함장님! 함선 외벽 센서에서… 거대한 구조물이… 세이렌 호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저희 함선은… 저 구조물 표면에 닿지도 않았습니다!”
메인 스크린에 다시 미지의 구조물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 그 모습은 더욱 기괴했다. 검은 표면 곳곳에서 끈적한 촉수 같은 것들이 솟아나와, 세이렌 호의 선체를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촉수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세이렌 호의 강철 외벽을 녹여내며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함장 이진아:**
(눈을 크게 뜨고 스크린을 노려본다) “저것은… 우리를 흡수하고 있어. 세이렌 호를…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먹어치우고 있어!”
**내레이션:**
세이렌 호는 마치 작은 먹잇감처럼 거대한 존재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침묵하던 유물은 이제 깨어나 자신의 굶주림을 드러냈다. 승무원들의 정신은 무너지고, 육신은 찢겨나갔다. 이진아 함장은 마지막 순간에도 절망 속에서 생각했다. 그들은 단지 미지의 유물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잠들어 있던 우주의 거대한 악몽을 깨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악몽은 이제… 모든 것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주의 끝에서 발견된 것은 고대의 지식이 아니라, 고대의 허무였다.
**함장 이진아:**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 승무원에게 통보한다… 이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그녀의 목소리는 곧 거대한 유기체적인 굉음과 함께 섞여 들어갔다. 세이렌 호의 함교는 검은 촉수들에 의해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고, 희미하게 빛나던 푸른색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는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장면 종료]
[화면 암전]
**S.F.X.:** (침묵,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이하고 반복적인 저음의 읊조림이 서서히 페이드아웃)
**내레이션:**
그리고 우주는 다시 침묵했다. 세이렌 호의 흔적도, 그 위에 타고 있던 인간들의 비명도, 심우주의 무한한 검은 심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직 거대한 유물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었다. 한때는 침묵하던 존재가 이제 막 깨어나, 다음 먹잇감을 기다리며 끝없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작품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