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를 가르며 빵집 문을 열 때마다 서진은 늘 같은 설렘과 무게를 느꼈다. 고소한 버터와 갓 구운 빵의 향이 아직 잠들어 있는 산자락을 깨우는 듯했다. 오늘은 유독 그 향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제 밤늦게까지 씨름했던 신메뉴, ‘별빛 카스테라’가 드디어 그 자태를 드러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선배님, 오늘도 완벽해요! 아침 햇살을 머금은 것 같아요!”
하은의 발랄한 목소리가 빵집 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막 오븐에서 나온 카스테라의 황금빛 표면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카스테라는 마치 밤하늘의 별을 품은 듯 반짝이는 설탕 가루로 장식되어 있었다. 서진은 하은의 과장된 칭찬에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멀었어. 맛은 봐야 알지. 그래도 네 도움이 없었다면 어젯밤을 넘기지 못했을 거야.”
하은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소한 빵 부스러기를 집어먹었다. 서진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빵집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른 손님은 늘 그렇듯 아침 산책을 마치고 오는 김 노인이었다.
“서진 씨, 오늘도 빵 굽느라 수고가 많구먼. 향이 아주 일품이야.”
김 노인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서진의 빵을 제일 먼저 맛보는 특권을 누렸다. 오늘은 새로 나온 별빛 카스테라 한 조각이 노인의 쟁반에 올려졌다. 노인은 한 입 맛보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음… 그래, 이거로구먼.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맛이랄까. 젊은 시절, 고향에서 어머니가 해주셨던 따뜻한 빵 맛이 나는구먼.”
그의 칭찬은 서진에게 어떤 전문가의 평가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빵을 통해 누군가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고,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서진이 이 작은 빵집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날 오후, 빵집은 평소보다 분주했다. 별빛 카스테라에 대한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는지, 평소보다 많은 손님들이 새로운 빵을 맛보기 위해 찾아왔다. 빵 진열대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바쁜 와중에도 서진의 눈길을 끈 것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별빛 카스테라를 먹고 있는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그녀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은 채였다. 서진은 그녀의 짙은 눈빛에서 깊은 슬픔을 읽었다. 빵집은 단순히 빵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하은아, 저분에게 별빛 카스테라 한 조각하고 따뜻한 차 한 잔 가져다 드려. 서비스라고 하고.”
서진의 말에 하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쟁반을 들었다. 잠시 후, 하은이 돌아와 속삭였다.
“선배님, 그분… 카스테라를 한 입 드시고는 계속 눈물을 흘리세요. 괜찮으실까요?”
서진은 가슴이 저릿했다. 빵 한 조각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혹시 그 빵이 아픈 기억을 건드린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녀는 하은에게 잠시 자리를 비워달라 한 뒤, 직접 차를 들고 젊은 여인에게 다가갔다.
“손님, 혹시 제 빵이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여인은 고개를 들었다. 촉촉한 눈가에는 아직 슬픔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작게 미소 지었다.
“아니요… 전혀요. 오히려 감사해요. 제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저에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있어요. 하늘에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면 그 별들을 모아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빵을 만들어주고 싶다고요. 그 빵이 꼭… 이 카스테라 같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진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여인은 말을 이었다.
“오늘이 엄마의 기일이거든요. 매년 이맘때면 너무 힘들었는데… 이 빵이, 엄마의 마음을 다시 만난 것 같아요. 정말 고마워요.”
서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손을 잡아주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별빛 카스테라는 단순히 달콤한 빵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그리움이었고, 사라진 사랑에 대한 추억이었으며, 동시에 따뜻한 위로였다.
그날 저녁, 빵집 문을 닫으며 서진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갓 구운 빵의 온기 속에 담긴 진심이었고, 한 조각 빵으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순간들이었다. 빵집 불이 꺼지고 고요함이 찾아왔지만, 서진의 마음속에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따뜻한 희망이 가득했다. 내일은 또 어떤 인연이 이 작은 빵집을 찾아올까.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