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3: 강철 심장 속에 피어나는 어쩌면…
“젠장, 젠장, 젠장!”
나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꾹 참으며 비틀거렸다. 방금 전 펼쳐졌던 일격을 겨우 막아내고 허벅지에 힘을 주어 버텨냈지만,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상대는 저 멀리 늠름하게 서 있는, 강철 같은 몸을 지닌 북방 무림의 맹수, ‘철권’ 백룡이었다. 크억, 이름값 하는 건 알겠는데 좀 살살 해주면 안 되냐고!
천하무림대회 4강전.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우리 보잘것없는 ‘비영문’의 문주이신 할아버지가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아내셨지만, 나는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왜냐고?
“크흠!”
나는 거친 숨을 고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자세를 잡았다. 사실 속으로는 발목이 삐끗한 것 같고, 방금 막아낸 일격에 손목은 시큰거리고, 무엇보다… 저 멀리 귀빈석에 앉아 계신 ‘그 분’의 시선이 혹시라도 나에게 향했을까 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래, ‘그 분’. 강호진.
천하 무림에서 300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라며 칭송이 자자한 ‘청룡문’의 소문주 강호진. 그의 검 끝에 스치면 바위도 두 동강 난다는 전설의 검수. 게다가 얼굴은 또 무슨 죄인지, 조각상이 울고 갈 만큼 완벽했다. 차가운 눈매와 날렵한 콧대, 굳게 다문 입술은 그가 얼마나 흔들림 없는 사내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물론, 내 눈에는 그저 ‘어우, 너무 멋있어!’로밖에 안 보이지만.
문제는, 강호진이 바로 이 천하무림대회의 *최종 보스*라는 점이었다. 결승전에서 만나게 될 상대 말이다. 그것도 그냥 상대가 아니라, 이번 대회는 ‘천하의 운명’이 걸린 자리다. 대륙의 평화를 유지해 오던 고대 신물 ‘환수의 심장’의 봉인력이 약해져, 이 대회의 우승자에게 그 봉인을 다시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권능이 주어진다는 엄청난 발표가 있었다.
“어이, 아가씨! 멍하니 있다간 큰코다친다!”
백룡의 우렁찬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젠장, 또 딴생각을 하고 있었잖아! 이러다 진짜 ‘환수의 심장’이고 뭐고, 이 자리에서 내가 심장이 튀어나오게 생겼다.
“흥! 누가 멍하니 있다고 그래요!”
나는 애써 당당한 척 소리쳤지만, 내 목소리는 백룡의 그것에 비하면 참새가 지저귀는 수준이었다. 백룡은 껄껄 웃으며 다시 한번 무시무시한 주먹을 움켜쥐었다.
“좋다! 그럼 이 백룡의 ‘맹호출림권’을 받아라!”
크아앙! 그의 외침과 함께 그의 주먹에서 정말 호랑이가 튀어나오는 듯한 기세가 느껴졌다. 저건 또 무슨 권법이야!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그의 주먹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퍽! 그의 주먹이 내 왼쪽 어깨를 스치듯 강타했고, 나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몇 발자국 뒤로 밀려났다.
“크으읍…!”
아파! 진짜 아파! 어깨가 아려왔다. 순간 눈앞이 핑 돌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할아버지의 간절한 눈빛이, 그리고… 저 멀리 귀빈석에 앉아 있는 강호진의 차가운 시선이 어쩌면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희망(?)이 나를 일으켰다.
‘연하랑, 정신 차려! 너는 비록 이름 없는 문파의 어쩌고저쩌고지만, 그래도 ‘비영문의 날쌥돌이’ 연하랑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스스로를 세뇌하며 자세를 낮췄다. 상대가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나는 속도와 기술로 승부한다! 이것이 비영문의 가르침이었다. 그래, 비록 우리 문파의 이름이 ‘비영(飛影)’ – 그림자처럼 날아다닌다는 뜻 – 이지만, 사실 할아버지의 주특기는 ‘비영각’이라는 발차기였다. 나는 발차기는 영 소질이 없어서, 주로 손기술과 잔재주로 먹고사는 편이었다.
“간다!”
나는 마치 화살처럼 튕겨져 나갔다. 백룡은 예상치 못한 나의 속도에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그의 틈을 놓치지 않고 쉴 새 없이 잔기술을 퍼부었다. 손바닥으로 그의 팔꿈치 안쪽을 긁고, 발끝으로 그의 정강이를 툭툭 건드렸다. 물론 데미지는 미미했지만, 그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기에는 충분했다.
“젠장! 이 간사한 기술은 대체 뭐냐!”
백룡이 버럭 소리치며 내 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바로 이거다! 나는 그의 팔 움직임을 예측하고 몸을 숙여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내 필살기!
“이얍! ‘연하랑식 발목걸이 후 넘어뜨리기’!”
내 발이 그의 발목을 정확히 걸었고, 나는 동시에 그의 등 뒤를 밀쳤다. 거대한 백룡의 몸이 휘청이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관중석에서는 “우와아아아!”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거구의 백룡을 쓰러트린 나의 재주에 감탄하는 소리였다.
나는 뿌듯함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해냈다! 드디어! 이겼다! 백룡은 바닥에 엎어진 채로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강철 몸이라도 발목이 꺾인 채로 넘어지면 아프지, 암.
그때였다.
“흠…”
귓가에 맴도는 나지막한 소리. 너무 작아서 착각인가 싶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은 바로 귀빈석.
그리고 그곳에, 강호진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정말이지 내가 강호진에게 반한 이후로 처음 본 것 같은, *작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라고 생각했다. 아니, 본 것 같았다. 분명히.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내가 그의 미소를 착각한 건지, 아니면 그게 정말 나를 향한 미소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방금 전의 통증도, 피로도, 모든 것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우승자! 비영문의 연하랑 선수!”
심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관중석을 향해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겼다는 기쁨과, 방금 본 것 같은 강호진의 미소 때문에.
나는 이제 결승전에 진출했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이 대회에서, 나는 드디어 강호진과 맞붙게 된다.
만약 그가 나에게 지어 보인 미소가 정말이었다면… 만약 그가 나를 조금이라도 신경 쓰고 있었다면…
“젠장, 연하랑! 정신 차려! 지금 연애질 할 때가 아니잖아!”
나는 붉어진 얼굴을 감싸며 애써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의 발걸음은 이미 가볍게,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결승전. 내 심장이 걸린 결승전.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로맨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예감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