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어 돌아가는 밤**
한지후는 낡은 태엽 시계탑이 뿜어내는 증기 기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빌딩 숲을 가로지르는 철제 비행선의 그림자가 아득해질 때까지 밤거리의 냉기를 등지고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삐걱거리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멈췄다. 27층, 그의 ‘강철심장 주거지’는 언제나처럼 금속성 맥박을 지니고 있었다. 벽 안쪽을 타고 흐르는 증기 파이프의 낮은 웅얼거림, 미세하게 진동하는 바닥, 그리고 알 수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째깍거리는 수천 개의 태엽 소리. 이 모든 것이 이곳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은 묵직한 침묵으로 가득했다. 평소 같으면 현관 센서에 반응하여 벽면의 가스등이 부드러운 오렌지빛을 뿜어냈을 텐데, 오늘은 짙은 어둠만이 그를 맞았다. 지후는 벽을 더듬어 황동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등이 ‘쉬이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희미한 빛을 토해냈다.
“하, 고장인가.”
중얼거리며 신발을 벗었다. 바닥은 여느 때보다 싸늘했다. 보통이라면 바닥 아래를 지나는 온수 파이프의 미열이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발끝을 타고 오르는 냉기만이 감돌았다. 괜히 오싹한 기분에 지후는 어깨를 움츠렸다.
주방으로 향하며 낡은 금속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끓는 물소리라도 들으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그 순간, 탁자 위, 그가 아끼는 태엽식 자명종 시계에서 ‘덜그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후는 고개를 돌렸다. 시계 위에는 작은 증기기관차가 모형으로 얹어져 있었고, 그 기관차의 바퀴가 아주 미세하게, 스스로 움직인 것 같았다.
“젠장,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지후는 눈을 비볐다. 분명히 착각일 것이다. 수십 년 된 태엽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데, 멈춰있던 장식물이 저절로 움직일 리 없었다.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녹슨 황동 기어들이 장식처럼 박혀있는 벽지, 천장에서 거미줄처럼 뻗어 나온 증기 파이프들, 그리고 오래된 금속 책장 위를 빼곡히 채운 고서들과 기묘한 태엽 장치들. 이 아파트는 도시의 심장부에서 고동치는, 살아있는 거대한 기계 같았다.
주전자에서 김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지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등 뒤, 침실 쪽에서 ‘딸깍, 딸깍, 딸칵’ 하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태엽 소리라기엔 너무나도 선명하고, 마치 무언가가 애써 균형을 맞추며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지후는 숨을 멈췄다. 그의 침실에는 그렇게 크게 ‘딸깍’거릴 만한 물건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천히 침실 문 쪽으로 다가갔다. 심장이 불안하게 고동쳤다. 문고리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문 안쪽에서 ‘쉬이이이익!’ 하는 거친 증기 분출음이 들렸다. 짧고 굵게, 마치 거대한 증기 괴물이 숨을 토해내듯이.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명백히 들리는 소리였다. 누가 장난을 치는 건가? 아니, 이곳은 27층, 지후의 아파트. 다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누구… 누구 없습니까?”
지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침묵. 깊고 두려운 침묵만이 답했다. 다시 ‘쉬이이이익!’ 하는 소리가 들릴까 봐, 혹은 더 기괴한 소리가 들릴까 봐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결국 지후는 용기를 내어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이 손에 닿는 순간, 손끝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방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가스등은 꺼져 있었다. 창밖에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이 방 안의 형체를 어렴풋이 드러냈다. 침대, 옷장, 그리고… 지후가 아끼던, 태엽으로 작동하는 작은 황동 인형. 인형은 책상 위에 고이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인형은 침대 중앙에 똑바로 서 있었다. 그것도, 지후 쪽을 향해서.
인형의 작은 유리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심장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지후는 뒷걸음질 쳤다.
그때였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정지했던 황동 인형의 태엽이 ‘드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갑작스럽게 감기기 시작했다. 인형의 머리가 서서히 아래로 숙여지고, 작은 팔이 천천히 위로 올라오더니, 마치 지후를 향해 손짓하는 것처럼 허공을 휘저었다.
“이런… 말도 안 돼…”
지후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형의 동작은 점점 더 빨라졌다.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이며 춤을 추는 듯했다. 태엽 소리는 미친 듯이 속도를 높여 ‘다다다다닥!’ 하고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인형의 쩍 벌어진 입에서 튀어나온 작은 금속 피리에서 ‘끼이이이이익!’ 하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찢어지는 듯한 쇳소리였다.
지후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비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끼이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익!’ 비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는 문을 닫으려 했지만, 이미 손이 굳어버린 뒤였다.
그때였다.
침대 아래에서,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르륵… 쾅!’ 침대가 통째로 들썩이며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의 거대한 그림자가 불룩하게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끼기긱’ 소리가 방 전체를 채웠다.
지후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는 비명을 삼키며 뒤돌아 뛰었다. 현관을 향해, 이 괴상한 기계탑 주거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지만 그의 시야 끝에, 거실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황동 태엽 시계가 보였다. 평소에는 웅장하게 서있던 시계는 지금, 멈춰있어야 할 추를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의 유리문 안쪽에서,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마치 무엇엔가 억지로 이끌리는 듯, 맹렬하게 역회전하고 있었다.
유리문 안에서, 그 톱니바퀴들 사이로, 불가능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아… 아악!”
지후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시계는 미친 듯이 째깍거리며 울부짖는 듯했다. 톱니바퀴들은 더욱 격렬하게 역회전했고, 그 사이로 보이는 그림자는 점점 더 짙고 선명해져 갔다. 마치 시계의 심장이 터져 나오려는 것처럼.
그리고 시계의 거대한 종이, 자정을 알리는 소리도 아닌데, ‘뎅… 뎅… 뎅…’ 하고, 너무나 느리고 묵직하게, 마치 이 모든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듯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지후의 심장을 찢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는 그를 향해 손을 뻗는 듯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