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의 먼지처럼 흩뿌려진 우주, 그 광활함 속을 낡은 화물선 한 척이 조용히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은하수 지평선’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선체는 지친 영혼처럼 녹과 긁힌 자국으로 가득했다. 어둠이 드리운 함교 안, 푸른빛 홀로그램 스크린만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희미하게 공간을 밝혔다.
“진혁 씨, 이대로 가면… 제국 순찰대와 충돌 확률 80% 이상입니다.”
조종석에 앉은 세라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은 능숙하게 조종간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지만, 살짝 굳은 얼굴은 내부의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붉게 물든 성운 조각들이 창밖으로 느리게 지나갔다. 마치 우주가 스스로 흘리는 피눈물 같았다.
강진혁은 홀로그램 지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고도로 암호화된 항로를 따라 움직였다. 제국은 이 성운 지대를 ‘유령의 안식처’라고 불렀다. 항성풍과 기이한 중력 이상 현상 때문에 통신이 불안정해지는 데다, 수십만 개의 소행성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순찰대의 감시망을 회피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80%… 그래, 제국 놈들이 이런 곳에 순찰대를 보낼 줄은 몰랐군.” 진혁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다. “정보통이 뭔가 놓쳤거나, 아니면… 그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함교 한쪽 구석, 통신 장비 앞에 앉아 있던 현우가 움찔했다. “설마… 내부자가 있는 건 아니겠죠?”
“아니, 그럴 리 없어. 이번 작전은 극비였으니까.” 진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 한구멍에서는 싸늘한 의심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평민 연합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틈으로 제국의 눈과 귀가 스며들 가능성도 커지는 법이었다.
“그럼 경로를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이 근처에 숨을 만한 곳은 없습니다. 다음 성계로 진입하려면 최소 한 시간은 더 걸릴 거예요.” 세라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한 시간은 너무 길어. 우리가 제국 순찰대의 시야에 들어가는 순간, 이 함선은 우주 쓰레기가 될 거야.”
그때, 현우가 헤드셋을 고쳐 쓰며 외쳤다. “감지되었습니다! 순찰선 두 척, 3시 방향에서 접근 중! 예상 도착 시간 10분! 스텔스 기능이… 간섭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경보음이 날카롭게 울리며 함교의 분위기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푸른 홀로그램 지도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변하며 위협을 알렸다. 진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세라, 그대로 직진해. 소행성 지대 중앙으로 돌입한다. 현우, 스텔스 시스템 출력을 최대로 올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간섭을 줄여야 해.”
“미쳤어요?! 중앙은… 소용돌이 지대입니다! 거긴 블랙홀처럼 모든 걸 삼킬 수도 있어요!” 세라가 경악하며 외쳤다.
“다른 방법이 없어. 제국 놈들이 가장 예측하지 못할 곳으로 가는 거야. 저들은 안전한 곳에서 싸우는 것에 익숙하지.” 진혁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은 이미 눈앞의 절망을 넘어선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안전 따위는 익숙지 않은 놈들이잖아.”
세라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이 조종간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은하수 지평선은 낡은 선체를 으르렁거리며 소행성 지대 깊숙이 파고들었다. 수많은 암석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충격 완화 장치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찢는 듯했다.
“젠장, 간섭이 더 심해집니다! 스텔스 출력 40% 이하로 떨어졌어요!” 현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서는 제국 순찰선의 서치라이트가 거대한 뱀처럼 어둠을 헤집고 있었다. 그 빛이 은하수 지평선의 낡은 선체를 스치듯 지나갔다.
“세라, 왼쪽으로 30도! 큰 놈 온다!” 진혁이 소리쳤다.
세라가 급격히 선체를 틀자,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함교 유리창을 스쳐 지나갔다. 몇 미터만 더 가까웠어도 선체는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선내에 비명과 함께 승무원들이 이리저리 부딪혔다.
“젠장… 제국 놈들이 굳이 이런 위험한 곳까지 들어올 리 없는데… 왜 저렇게 적극적이지?” 현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진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함정일 가능성이 높아. 우리가 이 성운을 통과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여기로 몰아넣으려고 한 거지.”
그때, 함선 전체가 덜컥하고 크게 흔들렸다. 제국 순찰선이 쏘아 올린 에너지 포가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것이다.
“피탄! 실드 30% 손상! 다시 옵니다!” 현우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두 번째 포격이 이어졌다. 은하수 지평선의 함체 외곽에서 섬광이 터져 나갔다. 선내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젠장! 제국 놈들, 실력이 늘었군!” 세라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은 창밖의 소용돌이치는 소행성들과 순찰선의 움직임을 동시에 읽고 있었다.
진혁의 시선은 홀로그램 지도의 특정 지점에 꽂혔다. 그곳은 지도상으로도 ‘미등록 구역’이라고 표시된, 중력 이상 현상이 극심한 공간이었다. 제국조차도 꺼리는 곳.
“세라, 풀 스로틀! 저 미등록 구역으로 돌입한다!”
“거긴… 자살 행위예요! 아무도 거길 통과한 적이 없어요!”
“도망칠 곳은 없어!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야. 저놈들에게 잡혀 죽거나, 우리가 직접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거지. 뭐가 더 확률이 높을 것 같아?” 진혁의 눈에서 강철 같은 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저놈들은 우리가 미지의 위험을 택할 거라고 상상도 못 할 거야. 그게 우리 평민의 방식이다. 목숨을 걸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세라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는,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낡은 엔진이 한계까지 으르렁거렸다. 은하수 지평선은 포효하며 미등록 구역을 향해 돌진했다.
함선이 중력 이상 구역에 진입하자, 선체는 마치 거대한 손에 붙잡힌 장난감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기계음이 찢어지는 비명처럼 울려 퍼졌고, 내부 패널이 터져 나가며 스파크를 튀겼다.
“시스템 오류! 중력 안정화 장치 과부하! 선체 곳곳에 균열 발생!” 현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진혁은 의자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창밖의 우주는 혼돈 그 자체였다. 별빛은 길게 늘어졌고, 소행성들은 마치 유령처럼 빠른 속도로 주변을 맴돌았다. 시야가 일그러졌다.
“이대로 가다간 함선이 분해될 겁니다!” 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진혁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그는 믿고 있었다.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이 작은 반란의 불꽃이,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견뎌! 우리는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해! 우리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잊지 마!”
그의 외침은 함교를 가득 메운 절망의 아우성을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스크린에 예상치 못한 것이 나타났다. 미등록 구역의 중심부, 중력 이상 현상에 의해 뒤틀린 시공간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 그것은 자연적인 구조물이 아니었다. 폐기된 듯 보이는 거대한 제국 군함의 잔해. 혹은… 버려진 기지?
진혁의 눈이 번뜩였다. “멈춰! 세라, 천천히! 엔진을 멈춰!”
“하지만… 이대로 엔진을 멈추면 중력에 빨려 들어갈 거예요!”
“아니! 저길 봐! 저건… 제국의 기록에 없는 곳이야! 우리가 찾던 ‘균열의 틈새’가 틀림없어!”
진혁은 스크린에 나타난 거대한 구조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마치 우주가 스스로 만들어낸 상처 같았다. 제국의 손길이 닿지 않는, 혹은 닿았으나 이제는 망각된 비밀스러운 장소.
은하수 지평선은 간신히 속도를 줄였다. 함선은 거대한 그림자 주변의 불안정한 중력장 안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스캐너를 조작했다.
“놀랍습니다… 내부에 에너지 반응이 있습니다! 생체 신호도 감지됩니다! 소규모이지만… 규칙적인 활동이…!”
“제국 순찰대는?” 세라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놀랍게도… 감지 범위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미등록 구역의 중력장과 에너지 간섭이 우리의 위치를 완전히 가려주고 있어요!” 현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진혁은 입술을 들어 올렸다. 찢어진 옷자락과 피폐해진 얼굴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국이 예상치 못한, 어쩌면 제국조차 모르는 장소. 그곳에 그들이 찾던 답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랐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숨을 곳이자, 반격의 기회를 찾을 곳이다.” 진혁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거대한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부패한 제국의 거대한 감시망에도 뚫리지 않은, 미지의 균열.
하지만 그 균열 속에는 과연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새로운 희망일까, 아니면 더 깊은 절망일까? 은하수 지평선은 불안정한 어둠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미지의 영역, 그곳에서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될 터였다. 새로운 위협과 새로운 기회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