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차가운 칼날, 피로 물든 밤

밤은 깊고, 달은 숨었다. 흑성각(黑星閣)의 거대한 지붕 위로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그림자는 지붕 기와 한 장 부서뜨리지 않고, 굳게 잠긴 서재의 창을 종잇장처럼 열어젖혔다. 그 안에 자리한 자는 강무진(姜武盡). 한때 강호제일검문(江湖第一劍門)의 가장 촉망받는 후계자였으나, 지금은 복수라는 한 줄기 증오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은 사내였다.

서재 안은 짙은 먹 향과 미약한 취기가 감돌았다. 고급 비단 족자에 걸린 산수화, 묵직한 서안 위에 놓인 금강저 모양의 문진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강무진의 시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방 중앙에 앉아 깊은 잠에 빠진 사내에게로 향했다. 흑성각의 주인이자, 백리진(百里辰)에게 강호제일검문의 멸문을 위한 거대한 자금을 댔던 장화룡(張化龍)이었다.

장화룡은 고요한 숨을 내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가 저지른 죄악의 그림자 따위는 없었다. 그저 부와 권력에 취한 자의 오만함만이 역력했다. 강무진은 그를 천천히 응시했다. 무려 3년,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는 얼굴이었다.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분의 피로 물든 검을 건네받으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짓던 백리진의 그림자처럼, 장화룡은 그 웃음을 뒤에서 키워낸 씨앗이었다.

강무진의 손에서 검은 천으로 감싼 무언가가 스르륵 벗겨졌다. 이윽고 섬뜩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검신이 어둠을 갈랐다. 스승의 유산이자,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검, ‘혈광검(血光劍)’이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서재 안의 온도를 순식간에 떨어뜨렸다.

갑자기, 장화룡의 어깨가 움찔했다. 잠결에 뒤척이던 그가 가느다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누, 누구냐!”

잠에서 깨어난 장화룡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렸다. 그는 침상에 몸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이미 강무진의 발은 그의 목덜미를 지그시 밟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섬뜩하게 조여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강무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낮은 속삭임이었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였다.

장화룡은 그의 얼굴을 보려 애썼지만,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서 풍기는 익숙한 분노와 절망, 그리고 서늘한 살기(殺氣)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 이 목소리는… 설마… 강무진! 죽었을 터인데!” 장화룡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이 뒤섞여 있었다. 3년 전, 강호제일검문은 백리진의 배신과 외부 세력의 협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무진 역시 그 대혼란 속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강무진은 장화룡의 비명을 무시한 채, 그의 턱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혈광검의 푸른빛이 장화룡의 눈동자를 섬뜩하게 비췄다. “죽었어야 했다. 너희들의 바람대로.”

“아, 아니다! 나는 그저… 백리검존의 지시를 따랐을 뿐… 내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장화룡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그의 눈에서는 누런 오줌이 찔끔 흘러내렸다.

“힘이 없었다고? 네가 대었던 그 막대한 자금으로, 내 스승의 피가 붉게 물들었고, 내 동문들이 칼날에 스러졌다. 내 아비의 숨통이 끊어졌다! 그것이 네가 말하는 힘이 없는 자의 행동이더냐!” 강무진의 목소리는 한 음절 한 음절이 비수처럼 박혔다. 그의 눈빛은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처럼 이글거렸다.

“나는…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용서해다오, 무진 도련님! 목숨만 살려준다면, 내 전 재산을 드리겠소! 백리진의 모든 음모를 발설하겠소!” 장화룡은 침을 질질 흘리며 애원했다.

강무진은 그의 애처로운 구걸에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네가 뿌린 씨앗은 피를 마시고 자랐다. 이제 그 피를 거둘 때다.”

혈광검이 스르륵 움직였다. 검 끝이 장화룡의 목덜미에 닿자, 그는 마지막 발악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살려다오! 살려다오!”

“아직 멀었다. 너의 비명은 이제 시작일 뿐.”

쉬익!

섬광과 함께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장화룡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는 피거품을 물며 허우적거리다,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고꾸라졌다. 목의 정맥이 끊어진 채, 그의 숨통은 순식간에 끊어졌다.

강무진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장화룡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고인 피가 검푸른 혈광검의 빛을 받아 기이하게 반짝였다. 3년 전,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오직 돈으로 수많은 목숨을 유린했던 자의 최후치고는 너무나도 짧고 편안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강무진은 혈광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칼날은 다시 차가운 푸른빛을 되찾았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공허했지만, 그 심연 깊숙한 곳에서는 꺼지지 않는 복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서재의 창문 밖으로, 새벽을 알리는 첫닭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강무진은 장화룡의 피 묻은 시체를 뒤로한 채,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의 그림자는 밤하늘 아래, 다음 목표를 향해 소리 없이 움직였다. 백리진, 그 잔혹한 배신자에게 닿기 위한, 피로 물든 복수의 여정은 이제 막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