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어둠 속에서 눈을 번쩍 떴다. 새벽 3시 17분. 정확히 17분 전부터, 거실에서 잊을 만하면 ‘딸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고양이인가 싶었다. 물론 지아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소음은 잠결에 흐릿했던 이성을 완전히 깨웠다. 지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세요?”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지아는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거실로 나갔다. 빛줄기가 닿는 곳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쿵, 쿵, 쿵.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뛰었다. 거실 테이블 위, 어제 마시다 둔 머그컵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미쳤나 봐, 지아야. 혼자 오래 살더니 드디어 환청까지 듣는구나.’
지아는 애써 침착하게 머그컵을 들었다. 컵 자체의 문제일까 싶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부엌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아의 손에서 머그컵이 떨어질 뻔했다.
“악!”
이번엔 확실했다. 지아는 손전등을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 밤새 먹다 남긴 과자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진 조각들 사이로 어제 미처 다 먹지 못한 초코칩 쿠키 조각들이 뒹굴었다.
지아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닭살이 돋았다. 이건 환청도, 착각도 아니었다. 뭔가… 있었다. 이 아파트에, 아니 이 집에.
그날 이후, 지아의 아파트에서는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분명히 닫아둔 베란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밤에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TV가 저절로 켜져 섬뜩한 화면을 보여주곤 했다. 냉장고 문은 덜컥이며 열렸다 닫혔고, 욕실 거울엔 뿌연 김 서림 위로 알 수 없는 문양 같은 게 그려져 있기도 했다. 한번은 씻고 나온 지아의 눈앞에서 칫솔이 컵 안에서 빙글빙글 돌다 툭 하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젠장, 정말 유령인가?”
지아는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중얼거렸다. 어쩐지 날마다 피곤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건 기본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 구석에 소금 단지를 놔두기도 하고, 퇴근길에는 무당집 앞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아파트 유령 현상’을 검색했고, ‘염력’, ‘폴터가이스트’ 같은 단어들만 줄줄이 떴다.
‘빌어먹을… 귀신이 아니라면 누가 내 물건을 건드리고, 내 TV를 켜는 건데?’
지아는 웹툰 작가였다. 낮에는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고, 밤에는 오로지 고요한 집에서 작업에 집중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미지의 존재가 사는 위험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최근 들어서는 심지어 작업 중이던 태블릿이 저절로 꺼졌다가 켜지며 이상한 그림이 그려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건 정말 심각했다. 창작의 혼을 담은 작품에 장난을 치다니!
“야! 거기 있는 너! 이제 그만 좀 하지?!”
어느 날 밤, 맥주 캔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지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천장에서 ‘우웅~’ 하는 묘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저음처럼, 온몸을 흔드는 진동이었다. 지아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유령이 음파 공격이라도 하는 건가?
그 진동은 딱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며칠 전, 윗집에 새 이웃이 이사 온다고 했다. 지아는 무심하게 흘려들었었다. 낡은 아파트라 방음이 좋지 않으니, 혹시 층간 소음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진동은 이내 잦아들었다. 유령이 신 이웃을 환영하는 걸까? 지아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며칠 후, 사건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지아가 샤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온수에서 냉수로 물이 바뀌었다. “꺄악!” 찬물 세례에 지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욕실 벽에서 ‘쿵! 쿵! 쿵!’ 하는 심장마비 걸릴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마치 거대한 북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천장을 부수는 것 같기도 했다. 지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건 아니지!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지아는 수건으로 몸을 대충 감고 욕실을 뛰쳐나왔다.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유령이든, 악마든, 아니면 망할 폴터가이스트든,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어야 했다. 지아는 옷도 제대로 못 입은 채 일단 제일 만만한 무기인 대걸레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쿵, 쿵, 쿵!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목표는 윗집이었다.
“야! 나와!”
윗집 문을 쿵쿵 두드렸다. 엄청난 굉음과 진동 때문인지 온 아파트가 울리는 듯했다. 지아의 주먹이 문짝을 부술 기세였다.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었다.
‘그래, 넌 더 이상 날 건드릴 수 없어! 내가 먼저 너를 건드려주겠어!’
드디어 찰칵, 하고 문이 열렸다.
“저기… 무슨 일이세요?”
문 뒤에 서 있는 남자는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젖은 머리카락에 큼지막한 헤드폰을 목에 걸고, 넉넉한 회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키는 훌쩍 컸고, 얼굴은… 꽤 잘생긴 편이었다. 지아의 눈에 비친 그는, 마치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아와 대걸레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희미하게 ‘우웅~’ 하는 저음이 깔려 있었다.
“무, 무슨 일이냐니! 당신! 당신이 저지른 일이잖아! 이 야밤에 이게 무슨 짓이에요! 유령놀이 하는 것도 아니고!”
지아는 흥분해서 따발총처럼 말을 쏟아냈다. 남자는 살짝 눈을 깜빡이더니, “유령놀이요…?” 하고 되물었다. 그의 뒤쪽에서 다시 한번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지아는 움찔했다.
“저 진동! 저 소리! 이 모든 게 다 당신 짓이잖아! 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현상들, 다 당신 때문이었냐고!”
지아는 대걸레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남자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이내 “아… 설마… 제 작업 소리가 밑으로 다 들렸나요?” 하고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순간 당황한 듯 흔들렸다.
“작업 소리요? 당신이 지금 귀신이랑 동업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내 TV는 저절로 켜지고, 내 칫솔은 빙글빙글 돌고, 심지어 내 샤워기는 냉온수 막 바꿔가면서 날 괴롭혔다고요!”
남자는 지아의 말을 끊으며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저는… 저는 그냥…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방음을 제대로 못 해서… 그리고 제가 지금 새로운 스피커 테스트 중이라… 이웃분들께 피해를 드린 건 정말 죄송해요!”
남자는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의 집 안으로 살짝 보이는 거실에는 온갖 전선과 스피커, 흡음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거대한 서브우퍼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피커에서 희미하게 ‘우웅~’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저게 바로 그 유령 진동이었구나.
“스피커 테스트요? 그럼 내 칫솔은 왜…!” 지아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그, 그건… 혹시 제가 아침에 실수로 칫솔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게 혹시… 죄송해요. 제가 좀 덤벙대서… 그리고 샤워기는… 제가 어제 욕실 배관 수리를 하다가… 밸브를 잘못 건드렸나 봐요. 진짜 미안합니다. TV는… 글쎄요, 그건 제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그의 눈은 진심으로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잘생긴 얼굴이 이렇게까지 사과를 하니, 지아의 분노도 사그라들었다. 유령이 아니라, 그냥 덤벙대고 소음 심한 옆집 남자였다니. 게다가 얼굴은 너무 멀끔해서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그럼 당신이 이 모든 기괴한 현상의 원인이란 말이죠?” 지아는 대걸레를 겨우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네… 아마도요. 제가 ‘도윤’입니다. 이사 온 지 일주일 됐는데, 이렇게 찾아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작가님.” 도윤은 멋쩍게 웃었다.
작가님이라니. 지아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윗집에서 작가라고 한 것을 본 모양이었다.
“저는 지아예요. 웹툰 작가고요. 아무튼… 다음부터는 조심 좀 해주세요.” 지아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표정은 누그러져 있었다.
“네! 물론이죠! 그리고… 칫솔이나 배관 문제는 제가 책임지고 해결해 드릴게요! 혹시 지금 당장이라도 봐드릴까요? 아니면 불편하신 거 없으세요?” 도윤은 의욕적으로 말했다.
지아는 황당했다. 이 남자는 뭘까? 유령인 줄 알았더니, 온몸으로 사과하는 대형견 같았다.
“됐어요, 지금은. 다음에 봐요.” 지아는 뒤돌아서려다 문득 멈춰 섰다. “근데… 그 저음 진동, 밤늦게까지 하는 건 아니겠죠?”
도윤은 살짝 흠칫하더니, “아니요! 이제는 조용히 할게요! 정말 죄송해요! 대신… 혹시 작업하실 때 집중 잘 되는 배경음악 같은 거 필요하시면 제가 만들어 드릴 수도 있어요!” 하고 엉뚱한 제안을 했다.
지아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이 남자, 정말 매력적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고,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이 이렇게 엉뚱하고 잘생긴 남자라는 사실이 꽤나 흥미로웠다.
“배경음악은 나중에 생각해보고요. 일단 당분간은 조용히 해주세요, 도윤 씨.”
“네! 알겠습니다, 지아 작가님!”
도윤은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지아는 대걸레를 들고 터덜터덜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비어있다고 생각했던 윗집에는, 이렇게나 생기 넘치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니.
그날 이후, 지아의 아파트에서는 더 이상 기괴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윗집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나 때로는 통통 튀는 비트 소리가 들려왔다. 작업에 방해될까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지아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왠지 모르게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한번은 도윤이 망가뜨린 욕실 배관을 수리해 주러 왔다가, 지아의 작업물을 보게 되었다.
“와! 그림 정말 멋있다, 지아 작가님! 저 이런 스타일 웹툰 정말 좋아하는데!”
그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지아의 작업물에 관심을 보였다. 지아는 왠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점차 가까워졌다. 가끔 도윤은 자기가 만든 음악을 들려주러 내려왔고, 지아는 그에게 작업 중인 웹툰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다 지치면, 도윤이 건네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위로를 받았다. 지아의 집은 더 이상 ‘유령의 집’이 아니었다. 오히려 따뜻하고, 활기차고, 때로는 엉뚱한 소음으로 가득 찬, 생기 넘치는 곳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지아의 태블릿이 갑자기 저절로 켜지더니 화면 가득 ‘저녁 같이 먹을래요?’라는 메시지가 떴다. 지아가 깜짝 놀라 도윤을 쳐다보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 제가 만든 스마트홈 제어 시스템이 좀 오작동을 해서… 엉망진창이죠?”
지아는 푸스스 웃었다. 폴터가이스트는 여전히 그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설레었다.
“좋아요, 도윤 씨. 저녁, 같이 먹어요.”
지아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날 이후, 지아의 아파트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기괴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주 로맨틱하고, 아주 코믹한. 유령 같은 그의 매력에 지아는 이미 홀려버린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