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잿빛 새벽

낡은 시계는 오래전에 멈췄다. 더 이상 초침도 분침도 의미 없는 세상이었다. 지훈은 익숙하게 손목을 짚었지만, 텅 빈 감촉에 헛웃음을 흘렸다. 시계줄이 끊어진 것도, 아니 시계가 고장 난 것도 한참 전의 일이었다. 이제 시간은 그저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그리고 그의 몸이 느끼는 허기와 갈증으로만 가늠될 뿐이었다.

축축한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찢어진 모포 사이로 스며드는 새벽 공기는 칼날 같았다. 아랫배에서 울리는 통증에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젯밤 남은 깡통 하나를 다 비웠지만, 그건 며칠 전부터 이어지는 허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깡통 안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혀로 핥아 먹던 제 모습을 생각하면 헛구역질이 났지만, 동시에 살아남기 위해선 그 어떤 추한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씁쓸한 확신이 들었다.

폐허가 된 건물 잔해 사이, 그나마 온전한 벽 하나를 등지고 만든 임시 거처는 좁고 어두웠다. 밖에서는 새벽녘을 알리는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낮이 되면 잠시 잦아들었다가, 밤이 되면 다시 이 도시를 잠식하는 섬뜩한 교향곡. 이젠 그 소리마저도 배경음처럼 익숙해져 버렸다.

지훈은 낡은 배낭을 챙겼다. 안에 든 건 거의 없었다. 녹슨 단검 한 자루, 물통, 그리고 지난 던전에서 겨우 찾아낸 금속 파편 몇 개가 전부였다. 그 외엔 이 허물어져가는 세상에서 그를 지켜줄 어떤 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몸뚱이조차도.

어깨를 가로지르는 흉터가 쓰라렸다. 지난번 ‘균열’ 근처에서 도망치다 생긴 상처였다. 운이 좋았다. 더러운 짐승 한 마리에게 물렸을 뿐이었으니. 좀 더 운이 나빴다면, 그의 살점을 뜯어 먹으려는 더 거대한 것들의 먹이가 됐을 터였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오늘은 기필코 뭔가를 찾아야 했다. 먹을 것이든, 아니면 팔아서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

폐허 밖으로 나섰다. 새벽의 도시는 잿빛이었다. 무너진 고층 빌딩들은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길거리엔 온갖 잔해들이 파도처럼 쌓여 있었다. 한때 번화했던 도시는 이제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사방을 경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위험이었다. 붕괴된 건물 잔해 아래 숨어 있을지 모르는 돌연변이 쥐 떼부터, 어두운 골목길에 매복해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생존자들까지. 특히 사람이야말로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존재였다. 그들은 자비심 없이 서로의 것을 빼앗고,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몇 번이나 숨을 죽이고,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아직까지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평화란 잠시 스쳐 지나가는 환상일 뿐이었다.

목표는 도시 외곽에 위치한 ‘균열’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던전’이라고 불렀다. 정확히는 ‘폐기된 제3하수처리장 균열’. 이름만 들어도 역한 기운이 풍기는 곳이었지만, 그곳이야말로 이 도시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위험하게,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는 장소였다.

고층 빌딩의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이었다. 태양은 구름 뒤에 숨어 그 존재를 희미하게 알릴 뿐이었다. 지훈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던전에 도착해야 했다. 밤의 그림자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위험 요소도 줄어들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존자들과 마주칠 가능성도 높아지는 딜레마였다.

무너진 아파트 단지를 지나쳤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놀이터는 흙먼지에 뒤덮여 폐허가 되었다. 녹슨 그네와 미끄럼틀은 기괴한 조형물처럼 서 있었다. 그 위로 날아가는 까마귀 떼의 그림자가 음울했다.

지훈은 발밑에 채이는 돌멩이들을 신경 쓰지 않으며 걸었다. 그의 눈은 오직 던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가올 위험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드디어 멀리서 그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싱크홀처럼 땅이 꺼져 들어간 곳. 마치 거인이 한입 베어 문 자국 같았다. 그곳이 바로 ‘제3하수처리장 균열’이었다. 주변에는 오래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흉물스럽게 솟아 있었고, 그 밑으로 거대한 어둠의 입이 벌어져 있었다. 그 입에서는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지옥이었다.

지훈은 마지막으로 단검의 날을 확인하고, 낡은 장갑을 고쳐 꼈다. 물통을 입에 대고 남은 물을 조금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감각이 생생했다.

“젠장, 뭐라도 나와라.”

낮게 읊조리며 거대한 균열의 입구로 발을 내딛었다. 어둠이 그의 발을 집어삼켰다. 차가운 습기와 함께 희미한 빛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던전의 첫 번째 관문, 거대한 철문이 녹슨 채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음산하게 울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어둠과, 그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을 미지의 위협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