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틈새를 비집고 스며든 달빛이 음습한 동굴의 바닥을 희미하게 밝혔다. 그 작은 빛줄기마저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류진우는 끓어오르는 통증과 싸우고 있었다. 온몸의 경맥이 뒤틀리고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영혼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크윽…!”
핏줄 선 눈이 번뜩였다. 그는 땀으로 범벅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이미 수십 번도 더 겪은 일이었다. 이 지독한 ‘마혼 연단술’을 익히기 시작한 이래, 평온한 순간이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장을 옥죄는 압박감, 오장육부를 뒤집어엎는 역겨움, 그리고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과거의 기억이었다.
*강호.*
그 이름 석 자가 뇌리에 박히는 순간, 핏줄이 울컥 솟아오르는 분노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했다. 절친한 벗이자, 자신과 함께 천도문(天道門)의 쌍벽을 이루던 존재. 그와 함께라면 세상 끝이라도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젠장…! 왜…! 어째서…!”
진우의 손에 들린 검은 옥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사부가 목숨처럼 아끼던 비보이자, 천도문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흑염심결(黑炎心訣)’을 담은 유일한 매개체였다. 사부는 진우에게 이 심결을 익히지 말라고, 그 힘은 너무나도 위험하여 이성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수없이 경고했었다. 그러나 이제 진우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 그날.
황금빛 영기가 용솟음치는 비경, ‘광명동천(光明洞天)’의 정점이었다.
천 년에 한 번 열리는 그곳에서, 진우는 마침내 전설 속 ‘태양의 정수(太陽精髓)’를 손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온몸의 영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드디어 숙원이었던 현경(玄境) 돌파를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칼날 같은 비수가 날아들었다.
“미안하다, 진우야. 하지만… 태양의 정수는 내가 가져야겠어.”
낮게 속삭이던 목소리. 익숙해서 더욱 믿을 수 없던 그 목소리에 진우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돌아본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애써 지어 보인 강호의 싸늘한 미소와, 그의 손에 들린 은빛 단도에서 번뜩이던 섬뜩한 빛이었다.
강호는 태연하게 진우의 기해(氣海)를 꿰뚫었고, 진우가 어렵사리 모은 모든 영기를 빨아들였다. 생명줄과도 같은 영기가 뽑혀 나가는 고통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했다. 강호는 그런 진우를 비웃으며, 힘없이 쓰러져 가는 그를 광명동천의 가장 깊은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내 손으로 너를 찢어 죽일 것이다. 강호!’*
그것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진우가 마지막으로 뇌까린 맹세였다. 처절하고, 피가 끓는 저주와도 같은 맹세.
시간은 흘러, 진우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육신은 만신창이가 되고 경맥은 파괴되었지만, 복수심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이 그를 지탱했다. 그리고 그 복수심이, 사부가 그토록 경계했던 ‘흑염심결’을 익히게 만들었다.
지금, 진우의 몸속에서는 흑염심결의 힘이 요동치고 있었다.
본래 정제된 영기만이 흐르던 경맥은 이제 검붉은 기운으로 가득 차, 마치 살아있는 지옥의 불길처럼 휘몰아쳤다. 힘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증폭되었지만,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폭주하여 영혼마저 잠식당할 것 같은 위기감.
“흐읍… 으으읍…!”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시커먼 약초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명계초(冥界草)’. 지독한 맹독을 품고 있으며, 오직 죽음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에서만 자란다는 전설의 약초였다. 흑염심결을 완전히 다루기 위한 필수적인 매개체이자, 동시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위험한 존재.
진우는 망설임 없이 명계초를 입에 털어 넣었다.
쓰고 비릿한 맛이 혀를 강타했다. 독기가 온몸의 세포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피부 아래로 검은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크아아악!”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진우는 절규했다.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고, 뼛속까지 시려오는 한기가 온몸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흑염심결이 명계초의 독기와 충돌하며 몸 안에서 격렬한 전쟁을 벌였다.
이대로 폭주하면 끝이었다.
영혼이 검은 불길에 타들어가 영원히 고통받거나, 아니면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강호의 오만한 미소가 아른거렸다.
*‘천도문의 모든 영기를 흡수한 강호는 지금쯤 어디까지 강해졌을까? 벌써 천선(天仙)의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할수록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고통을 초월하게 했다.
그래, 이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친구의 배신으로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하면,
몸이 부서지는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우는 억지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피 비린내가 가득한 입안에서, 처절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강호… 네가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지옥에서 되살아난 악귀다.”
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피부 위로 돋아났던 검은 실핏줄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몸 안에서 흑염심결과 명계초의 독기가 격렬하게 뒤섞이며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파괴적인 힘이자, 동시에 진우의 영혼을 갉아먹는 칼날이었다.
“더…! 더 강해져라…! 내 모든 것을 불태워서라도… 너를 반드시…!”
진우의 몸에서 검붉은 오라가 솟아올랐다. 동굴 전체를 휘감는 듯한 압도적인 기운이, 주변의 바위들을 미세하게 진동시켰다. 어둠 속에서 진우의 존재감이 마치 거대한 그림자처럼 웅장하게 펼쳐졌다.
그의 눈에 복수의 불꽃이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진정한 지옥은, 강호가 마주하게 될 미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