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회색빛 빌딩 숲 사이, 비좁은 골목은 늘 그랬듯 습하고 어두웠다. 낡은 철제 난간을 잡고 세 층을 더 내려가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희미한 기계 기름 냄새가 뒤섞인 지하 통로가 나왔다. 강휘는 익숙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비좁은 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머리 위로는 끊임없이 제국의 감시 비행체들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멀리서는 도시 전체를 억압하는 ‘정화의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늦었군, 강휘.”

지하 벙커로 개조된 듯한 공간에 들어서자, 낡은 작업등 아래서 고철 더미를 정리하던 정우가 투박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고단함이 새겨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살아 있었다.

“길이 막혔어요. 7구역에서 감시병들이 수색을 강화했더군요.” 강휘는 거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어둠에 잠긴 공간, 유일한 빛인 작업등의 노란 불빛이 그의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를 비췄다.

“제국 놈들이 요즘 부쩍 날뛰는군. 뭔가 심상치 않아.” 한쪽 구석에서 무딘 칼날을 갈고 있던 세라가 날카롭게 덧붙였다. 그녀의 손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칼날이 불빛을 반사했다. “그래서요? 오늘은 무슨 일이죠?”

정우는 거친 손으로 녹슨 테이블 위를 쓸어내며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그 위에 투박하게 인쇄된 지도 한 장을 펼쳤다. 지도에는 도시의 외곽 순환 도로와 몇몇 건물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오늘 밤, 12지구 외곽을 통해 ‘생체 광물 정제 결정’ 수송대가 지나간다.” 정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실로 거대했다. “그 결정은 제국 놈들의 ‘정화의 탑’을 유지하고, 병사들의 ‘강화갑주’를 구동하는 핵심 에너지원이다.”

강휘는 지도 위, 붉은 원으로 표시된 지점을 응시했다. 제국의 가장 귀한 자원 중 하나. 평민의 손에는 단 한 조각도 허락되지 않는, 오직 제국만이 독점하는 최상위 에너지원.

“그걸 우리가 뺏어야 한다고요?” 세라가 눈을 빛냈다. 그녀의 표정에는 망설임보다 거침없는 투지가 더 강하게 서려 있었다.

“그렇다. 수송대는 세 대의 장갑차와 두 대의 호위 차량, 그리고 대여섯 명의 강화병들로 구성될 거다.” 정우가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었다. “우리의 목표는 놈들의 수송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결정 일부를 확보하는 거다. 성공한다면, 최소한 12지구 일대 정화의 탑 전력을 한동안 약화시킬 수 있을 거야.”

“잠깐만요, 정우님. 강화병이라면… 제국의 특수부대 말이죠?” 강휘가 목소리를 낮췄다. 강화병은 단순한 제국 병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생체 개조와 강력한 마도공학 기술로 무장한, 인간 병기나 다름없었다. 몇 달 전, 4구역에서 벌어진 충돌에서 강화병 한 명이 저항군 수십을 혼자서 상대했던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정우는 강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번 작전은 단순한 물자 강탈이 아니다. 제국 놈들의 숨통을 잠시나마 조이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강휘는 고개를 저었다. “강화병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놈들은 ‘추적의 각인’을 새겨 넣을 수도 있어요. 설사 성공하더라도, 우리 거점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될 겁니다.”

“그럼 포기할 건가?” 세라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만 있을 건데? 당하고만 살 수는 없어!”

“세라, 진정해.” 정우가 낮은 목소리로 세라를 제지했다. “강휘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어. 놈들은 매일 같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어. 자원, 정보, 그리고 희망까지도 말이다. 작은 균열이라도 내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모두 말라죽을 뿐이야.”

정우의 시선은 다시 강휘에게로 향했다. “강휘, 네가 이 작전의 핵심이 될 거다. 넌 다른 누구보다 이 도시의 흐름을 잘 읽어. 놈들의 감시망을 뚫고, 가장 효율적인 침투 경로를 찾아야 해. 그리고….”

정우는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낡은 장치를 꺼냈다. 금속 재질의 표면에는 복잡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동조 장치’다. 정제 결정이 내뿜는 에너지를 일시적으로 교란시킬 수 있지. 강화병의 강화갑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일회용이야. 그리고 작동시키려면 상당한 집중과 기운이 필요할 거다.”

강휘는 장치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제국의 마도공학에 대항하기 위해 저항군이 오랫동안 연구하고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담을 요구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작전 시간은 자정이다. 수송대는 12지구 외곽 터널을 통과할 거다. 우리가 가장 취약한 순간을 노려야 해.” 정우는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번 작전은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

***

차갑고 습한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강휘는 낡은 건물들의 옥상을 뛰어넘으며 목표 지점으로 향했다. 도시의 밤은 늘 그랬듯 감시 비행체들의 붉은 감시등으로 얼룩져 있었다. 강휘는 빛을 피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고,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움직였다. 그의 등 뒤에는 세라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전방 3시 방향, 감시 비행체. 고도 50미터.” 세라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예리하게 빛났다.

강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멈춰 섰다. 낡은 굴뚝 뒤에 몸을 숨기자, 비행체의 둔탁한 웅웅거림이 머리 위를 지나쳤다. 제국의 감시 기술은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 작은 열기, 심지어 특정 파장의 기운마저 감지해내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완벽하진 않아.’

강휘는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미약한 기운을 다독였다. 그것은 그의 어릴 적부터 함께했던, 남들과는 조금 다른 ‘감각’이었다. 도시의 맥박, 건물의 숨결, 그리고 생명체들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 제국이 ‘퇴화된 원초적 감각’이라며 억압하고 조롱했던, 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했던 바로 그 능력 말이다.

마침내, 그들은 목표 지점인 12지구 외곽 터널 위 낡은 고가도로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 잠긴 터널 입구는 거대한 괴물의 입처럼 보였다. 고가도로 아래 도로는 폭이 좁아졌고, 양옆으로는 폐기된 건물 잔해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매복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시간 됐어.” 세라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멀리서, 둔탁한 굉음과 함께 지면을 뒤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수송대가 오고 있었다. 강휘는 고가도로 난간에 몸을 바짝 붙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 개의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터널 입구에서 튀어나왔다.

선두에는 대형 장갑차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달려왔다. 그 뒤를 이어 두 대의 호위 차량, 그리고 가운데에 핵심 물자인 ‘생체 광물 정제 결정’을 실은 특수 수송 장갑차가 따라붙었다. 마지막으로 후미를 지키는 또 다른 대형 장갑차. 예상대로 빈틈없는 대형이었다.

강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가늘게 뜨자, 호위 차량 위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강화병들의 강화갑주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존재감을 뿜어내는 거대한 그림자들.

‘정우님이 말한 동조 장치… 지금이야.’

수송대가 고가도로 아래를 통과하는 순간, 강휘는 주머니에서 동조 장치를 꺼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이 그의 손아귀에서 떨렸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기운을 한 점으로 모아 장치로 흘려보냈다. 마치 굳게 닫힌 문을 억지로 열려는 듯, 엄청난 저항감이 느껴졌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크으…!”

강휘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나고,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동조 장치가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희미했던 빛은 점점 강렬해지며, 맹렬하게 발작하는 심장 박동처럼 깜빡였다.

그때였다.

수송대의 가장 앞에 있던 장갑차가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굉음과 함께 좌측 벽을 들이받았다.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더니 이내 꺼지고, 장갑차는 비명을 지르는 금속음과 함께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뒤따르던 호위 차량과 특수 수송 장갑차가 급제동을 걸며 연쇄적으로 부딪혔다. 혼란이 시작되었다.

“성공했어!” 세라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강휘는 손에 든 동조 장치를 응시했다. 푸른빛은 여전히 격렬하게 깜빡이고 있었지만, 그의 기운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몸속의 모든 에너지가 빨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피로감에 무릎이 꺾였다.

그때, 터널 안에서 섬광이 터졌다. 그리고 고가도로 아래, 충돌한 장갑차의 잔해 위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솟아올랐다. 강화병들이었다. 놈들은 충격에서 회복하자마자 주변을 경계하며 허공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젠장, 동조 장치 효과가 약해지고 있어!” 강휘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화병 중 한 명이 고가도로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강화갑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감지 파장이 강휘와 세라가 숨어있는 곳을 향해 스쳐 지나갔다.

“발각됐어!” 세라가 소리쳤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찬 짧은 검을 뽑아 들었다.

강화병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놈의 강화갑주에서 기계음과 함께 둔탁한 중저음이 울려 퍼졌다.

“저항군 확인. 제거한다.”

강화병이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마치 거대한 짐승처럼, 놈은 고가도로 위로 뛰어오르기 위해 거대한 손을 뻗었다. 강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속도와 힘에 질려 할 말을 잃었다. 동조 장치로 겨우 만들어낸 혼란은 한순간에 뒤집히고 말았다.

놈이 고가도로 난간을 잡는 순간, 강휘의 뇌리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단 하나의 생각.

‘이대로는… 안 돼!’

그의 눈앞에 강화병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