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짙게 깔린 하늘 아래, 낡은 간판이 위태롭게 매달린 편의점 안은 고요했다. 창문은 깨지고 찢어진 방충망 너머로 먼지 섞인 바람이 스며들었다. 지훈은 망가진 계산대 위에 놓인 흙먼지 쌓인 지도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검게 그을린 글자들 사이로 희미하게 ‘구역 7’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이곳은 그들이 어제 밤새 걸어 도착한 지옥의 한 조각이었다.
“형, 이쪽은 다 썩었는데요?”
세준의 목소리가 구석에서 울렸다. 지훈은 고개를 돌렸다. 세준은 엎어진 선반 아래를 조심스레 들여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희망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지난 몇 달간 매일 보아온 익숙한 표정이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 앞이 안 보여.”
지훈의 경고에도 세준은 이미 팔꿈치까지 선반 안으로 밀어 넣은 뒤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 형! 여기 뭐 있어요! 깡통 같아요!”
세준의 목소리에 희미한 활기가 돌았다. 지훈은 망설이지 않고 세준에게 다가갔다. 폐허가 된 편의점 안은 온통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썩은 음식물 냄새로 가득했지만, 어딘가 희미하게 눅진한 핏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지훈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뭐든 조심해. 냄새가 좋지 않아.”
지훈은 칼집에서 사냥용 칼을 뽑아 들었다. 칼날에 희미한 조각달 빛이 반사되어 섬광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어둠에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깨진 유리조각들이 뒹구는 바닥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세준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캔 서너 개를 꺼내 들었다. 녹이 슬어 상품명은 알 수 없었지만, 내용물이 새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보물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런 게 아직 남아있을 줄이야!” 세준이 거의 감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지훈의 귀에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륵… 스륵…* 마치 젖은 천이 바닥에 쓸리는 듯한 소리였다.
세준은 아직 깡통들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지훈은 조용히 세준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 아무 소리도 내지 마.”
세준의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녀석은 지훈의 말에 따라 숨소리마저 죽였다. 지훈은 손가락으로 편의점 안쪽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소리는 그곳에서 들려왔다. 희미한 달빛마저 닿지 않는 어둠 속.
*스륵… 스륵…*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지훈의 코를 강하게 자극하는 역한 썩은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그것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지훈은 세준의 등을 밀어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기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계산대 잔해 뒤에 몸을 납작하게 붙였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긴장감에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했다. 이런 순간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드러났다. 삐쩍 마른 팔다리, 찢어진 옷자락,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눈은 텅 비어 있었고, 입은 끔찍하게 벌어져 있었다. 살점을 찾아 헤매는 짐승의 표정. 워커였다.
한 마리가 천천히, 마치 길을 찾는 것처럼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뒤이어 또 한 마리, 그리고 또 한 마리.
총 세 마리였다. 편의점 안쪽 창고에서 나온 듯했다. 어쩌면 낮 동안 잠복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훈은 저런 것들이 자신들의 기척을 느끼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이미 도망칠 시간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첫 번째 워커가 계산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눈동자가 흔들리는 달빛을 쫓는 듯했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젠장.*
워커는 지훈이 숨어있는 계산대를 지나쳤다. 그러다 갑자기 멈칫했다. 그리고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녀석은 지훈이 엎어져 있던 바닥에서 희미한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크르르륵…*
목구멍에서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워커가 고개를 돌려 지훈이 숨어있는 계산대 잔해를 응시했다. 텅 빈 눈동자가 지훈의 심장을 꿰뚫는 것 같았다.
“세준, 도망쳐!”
지훈은 소리치는 동시에 몸을 날려 계산대 잔해를 박차고 워커에게 달려들었다. 워커가 찢어진 손톱을 세워 지훈을 할퀴려 했지만, 지훈은 노련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다. 칼날이 워커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쩌억!*
뼈와 살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워커는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나머지 두 마리가 지훈의 움직임에 반응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형!”
세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이 철제 바구니를 집어 들고 한 마리의 워커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세준은 바구니로 워커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하지만 워커의 두개골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녀석은 잠시 휘청거렸을 뿐, 이내 세준에게 끔찍한 손톱을 휘둘렀다.
“물러서, 세준! 위험해!”
지훈은 이미 한 마리를 처리했지만, 나머지 한 마리가 등 뒤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워커 특유의 썩은 내는 강렬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칼날이 워커의 턱을 겨냥했지만, 녀석은 몸을 틀어 간신히 피했다. 지훈의 칼날은 워커의 어깨를 깊게 베었지만, 녀석은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세준이 휘두른 바구니에 맞았던 워커가 다시 세준에게 달려들었다. 세준은 넘어지며 간신히 피했지만, 녀석의 찢어진 옷자락이 세준의 팔을 스쳤다.
“젠장!”
지훈은 두 마리의 워커 사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한 마리는 계속해서 그의 목을 노렸고, 다른 한 마리는 세준을 쫓아 선반을 넘어뜨렸다. 쿵!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선반에서 캔들과 각종 잡동사니들이 쏟아져 내렸다. 지훈의 시야가 잠시 가려졌다.
*이대로는 안 돼.*
지훈은 재빨리 판단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세 마리 모두를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게다가 저 소리에 더 많은 워커들이 몰려들지도 모른다.
“세준! 뒤쪽 문으로!”
지훈은 소리쳤다. 그 사이 달려드는 워커의 무릎을 걷어찼다. 워커는 다리가 부러진 듯 휘청거렸다. 지훈은 그 틈을 타 워커의 머리를 짓밟았다. 끈적이는 파열음과 함께 워커는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세준을 쫓던 한 마리. 그리고 아마도 선반이 넘어지는 소리에 몰려들 외부의 위협들.
세준은 이미 편의점 뒤쪽, 창고와 연결된 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문은 낡았지만 다행히 빗장이 걸려 있지 않았다.
*끼이이이익…*
녹슨 경첩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지훈은 마지막 워커의 발목을 칼로 찍어 넘어뜨리고는 세준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세준은 이미 문밖으로 몸을 던진 뒤였다.
“빨리!”
세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지훈을 재촉했다. 지훈은 문을 통과하며 뒤돌아 워커를 노려봤다. 녀석은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그들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지훈은 문을 힘껏 닫고 쇠막대기로 빗장을 질렀다.
*쿵! 쿵! 쿵!*
워커가 문을 긁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댔다. 세준은 이미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낡은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있었다. 굉음이 황량한 골목을 갈랐다.
“형! 어서요!”
지훈은 다리에 힘을 주어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세준은 망설임 없이 액셀을 밟았다. 낡은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뒤편에서 워커들의 비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달빛 아래, 먼지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지훈은 고개를 돌려 폐허가 된 편의점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놈들은 이미 그들의 냄새를 맡고 몰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세준, 더 빨리!”
지훈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녀석의 팔목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까 워커의 손톱이 스쳤던 부분에서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젠장, 이런 망할.*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언제나 시작은 사소했다. 그리고 놈들은 언제나 그 사소한 틈을 노렸다.
그들은 계속해서 달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워커들의 울부짖음은 점점 더 멀어졌지만, 지훈의 심장은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이 끝없는 도주가 과연 어디에서 멈출 수 있을까. 어디에 안전한 곳이 있기는 할까. 지훈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달려야만 했다. 밤은 길었고, 위협은 끝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