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잿빛 하늘 아래, 낡은 시계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무너진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지우는 익숙하게 폐허가 된 상점가를 가로질렀다. 텅 빈 진열장은 거울처럼 그녀의 피폐한 얼굴을 비추는 듯했다. 먼지와 거미줄로 얼룩진 유리창 너머로, 멀리서 녀석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젠장, 또 늘었군.”

지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깨에 멘 낡은 배낭 속 도끼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이 도시는 죽은 자들의 것이었다. 아니,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죽음의 덫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이곳을 찾았다. 기어이, 굳이.

오늘은 녀석의 구역이었다. 높은 빌딩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두운 골목. 지우는 숨을 죽이고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녀석은 일반적인 ‘그것’들과는 달랐다. 맹목적으로 달려들지 않았고, 기형적으로 뒤틀린 몸을 하고서도 기이한 지성을 지닌 듯 보였다. 처음 녀석을 마주쳤을 때, 지우는 망설임 없이 도끼를 들어 올렸었다. 하지만 녀석은 공격하는 대신, 무너진 벽에 기대어 흐릿한 눈으로 지우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에는 배고픔 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지우의 착각이었을까? 굶주린 시체에게서 인간적인 감정을 읽으려 하다니, 자신이 미쳐가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 녀석은 종종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지우를 해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굶주린 무리에게 지우가 포위되었을 때, 녀석은 짐승처럼 그들을 찢어발겼다. 그 잔혹하고 압도적인 힘에 지우는 숨을 멈췄다. 녀석은 자신을 구했지만, 그녀에게는 일말의 공격성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지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지우가 녀석에게 ‘아인(Ain)’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아인은 히브리어로 ‘눈’을 의미했다. 녀석의 눈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지우는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피해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그리고 녀석을 발견했다. 낡은 공원 벤치에 삐걱거리는 몸을 기댄 채, 아인이 앉아 있었다. 녀석의 시선은 하늘의 먹구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는 노인 같기도 했다. 지우는 멀리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아인이 그녀를 눈치챘는지 어렴풋이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이 지우를 향했다. 경계심 없는, 어딘가 체념한 듯한 시선이었다.

지우는 배낭을 벗어 내려놓고, 그 안에서 캔 통조림 하나를 꺼냈다. 닭고기 통조림. 꽤 귀한 것이었다. 녀석에게 던져주기 위해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캔을 따서 조심스럽게 벤치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조금 떨어진 곳에 주저앉았다.

“배고플 텐데.”

지우의 목소리가 텅 빈 공원에 흩어졌다. 아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하늘을 보다가, 천천히 지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캔을 보았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동공.

“먹어. 어차피 난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

지우는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녀석의 썩어가는 냄새는 여전히 역겨웠고, 일그러진 피부는 소름 끼쳤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이 끔찍한 진실에 길들여진 지 오래였다. 아인은 천천히 캔으로 향했다. 뒤틀린 손가락이 캔을 움켜쥐는 모습에 지우는 숨을 참았다. 녀석은 마치 제 생을 다한 노인처럼 힘없이 내용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으스러진 치아가 캔에 부딪히는 소리가 섬뜩했지만, 지우는 눈을 감았다.

이게 무슨 관계일까. 살아있는 인간과 죽어있는 시체. 지우는 모든 이성과 상식을 거부하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역겨움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순간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 황량한 세계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이 녀석에게서 어떠한 ‘진실’을 느꼈다. 비록 그 진실이 비틀리고 끔찍할지라도.

며칠 후, 지우는 정찰 도중 큰 위험에 처했다. 굶주린 무리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그녀를 덮쳤다. 필사적으로 도끼를 휘둘렀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정신을 잃어가는 순간, 굉음과 함께 녀석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떴을 때, 지우의 눈앞에는 아인이 서 있었다. 녀석의 손톱은 다른 시체들의 살점을 찢어발긴 피로 끈적했고, 붉은 눈은 맹렬한 광채를 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정확히 지우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좀비 하나를 아인이 아무렇지 않게 잡아 찢는 것을 보고서야, 지우는 자신이 살았음을 깨달았다.

“아인…”

지우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아인은 지우에게 다가왔다. 그 썩어가는 몸에서 풍기는 냄새에 현기증이 일었지만, 지우는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아인은 자신의 거칠고 갈라진 손을 들어, 지우의 뺨에 가져다 댔다. 차갑고 이질적인 감촉. 마치 흙과 돌멩이가 섞인 듯한 감촉이었다. 하지만 지우는 이상하게도 그 손길에서 위로를 느꼈다.

“고마워.”

지우는 아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아인의 눈동자가 지우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붉은 빛 속에서, 언뜻 인간적인 슬픔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녀석은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우는 녀석의 눈에서 모든 것을 읽었다. ‘가지 마.’ ‘혼자 두지 마.’

그날 이후, 지우는 아인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밤이 되면 그녀는 녀석의 구역을 찾아갔고, 아인은 그녀를 위해 폐허의 한구석을 비워두었다. 지우는 잠이 들 때마다 녀석의 끔찍한 형상에 공포를 느꼈지만, 동시에 녀석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아인 또한 지우가 곁에 있을 때면, 평소의 맹렬함 대신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어느 날, 지우는 녀석을 위해 구한 희귀한 치료제를 들고 아인을 찾아갔다. 상처 입은 팔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인의 옆에 앉아, 지우는 조심스럽게 약을 발랐다. 살이 썩어가는 상처가 흉측했지만, 지우는 개의치 않았다. 아인은 그녀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아인, 넌 왜 다른 녀석들과 다를까?”

지우는 녀석의 굳게 닫힌 눈꺼풀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아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손길에 맞춰 미세하게 몸을 떨 뿐이었다.

“아마 넌 날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난… 혼자 있는 게 더 미칠 것 같아.”

지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혔다. 살아남은 인간 무리에 섞여 살아도, 그녀는 늘 혼자였다. 모두가 의심과 경계로 서로를 대했다. 인간성은 이미 이 세계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인에게서만은, 그녀는 아무런 의심도 느끼지 않았다. 순수한 충동과 생존 본능, 그리고 그녀를 향한 알 수 없는 보호 본능. 그것이 아인의 전부였다. 그리고 지우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지우는 아인과 함께 폐허 깊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

“이쪽이야! 저기 뭔가 있어!”

지우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다른 생존자 무리였다. 그들이 이 구역까지 찾아오다니. 그들은 생존자 수색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폐허에서 지우가 좀비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인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녀석의 붉은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지우는 아인의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살점의 감촉.

“아인, 도망쳐야 해. 어서.”

아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은 지우를 돌아보았다. 그 눈에 비친 것은, 마치 그녀를 보호하려는 맹렬한 의지였다.

“안 돼! 넌 그들을 이길 수 없어. 그들은 총을 가지고 있어!”

지우는 필사적으로 아인을 끌었다. 하지만 녀석은 바위처럼 굳건했다. 이미 늦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플래시 불빛이 지우와 아인을 비췄다.

“이봐, 거기 누구야! 꼼짝 마!”

인간들의 경계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들은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아인의 모습을 본 순간, 그들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젠장! 괴물이야!”
“이쪽에도 한 마리 더 있어! 이 여자는… 이 여자도 녀석과 같이 있었어!”

총성이 울렸다. 아인이 빠르게 움직였다. 녀석은 몸을 날려 지우를 보호했고, 총알이 녀석의 어깨를 꿰뚫었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비틀거렸다. 지우는 비명을 질렀다.

“아인!”

“이 미친 여자! 괴물과 한패였어! 둘 다 죽여!”

인간들의 목소리는 증오로 가득했다. 지우는 도끼를 쥐었다.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인간들을 향해 그녀는 이를 갈았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유일한 진실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덤벼. 이 개자식들아.”

지우는 아인의 곁에 섰다. 아인은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녀석의 피 묻은 손이 지우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차갑고 메마른 손길이었지만, 지우는 그 안에서 뜨거운 유대감을 느꼈다. 어떠한 종족도, 어떠한 상황도 끊을 수 없는 유대감.

총성이 난무하는 폐허 속에서, 인간과 시체의 금지된 사랑은 그렇게 피를 흘리며 시작되고 있었다. 이 세상은 이미 망가졌고, 그 안에서 그들 둘만이 살아남은 듯했다. 살아남은 동시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그들의 앞날은 어둠뿐이었지만, 적어도 그 어둠 속에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아인의 붉은 눈이 지우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모든 언어를 초월하여 말했다. ‘우리는 함께.’ 그리고 지우는 그 말을 이해했다. 완벽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