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녹슨 심장의 고동**
네오 서울, 섹터 7의 최하층은 언제나 눅진한 습기와 부패한 금속 냄새로 가득했다. 머리 위로는 수백 개의 레벨이 쌓여 올려진 마천루들이 희미하게나마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이곳의 바닥은 영원한 어둠과 녹슨 강철의 미로였다. 김현은 익숙한 듯 좁디좁은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의 안면 임플란트가 발산하는 희미한 청색광이 앞을 밝혔다. 낡은 공구 벨트에는 갖가지 센서와 케이블, 그리고 녹슬지 않은 고성능 멀티툴이 매달려 달가닥거렸다.
“젠장, 이런 쓰레기 구덩이에서 대체 뭘 찾는 건지.”
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목표는 간단했다. ‘하프라이프 서버’로 불리는 구형 데이터 뱅크의 코어 프로세서. 구세대 인공지능 연구에 사용되었던 물건으로, 지금은 쓸모없어진 고철 덩어리 취급을 받지만, 특정 기업의 암시장에서 여전히 높은 값에 거래되는 품목이었다. 이런 곳에 남아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어째서인지 익명의 의뢰인은 이곳 ‘폐기물 처리장 제3구역’을 콕 집어 언급했다.
지하 수십 미터 아래, 붕괴 위험 경고가 요란하게 깜빡이는 통로를 지나자 거대한 돔형 공간이 나타났다. 한때는 연구 시설이었을 이곳은 이미 폐허가 되어 천장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빗물과 녹물이 뒤섞여 고인 웅덩이마다 주변의 잔해가 어렴풋이 비쳤다.
현은 주변을 스캔했다. 망가진 로봇 팔, 케이블이 뒤엉킨 제어판, 그리고 무수한 서버 랙들의 잔해. 거의 모든 것이 침식되고 부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야 한구석에 잡힌 것은 달랐다. 중앙부, 무너진 천장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바로 그 아래에, 다른 모든 고철과 확연히 구분되는 존재가 있었다.
거대한 검은색 직사각형 구조물. 그것은 서버 랙처럼 생겼지만, 그 재질은 현이 이제껏 본 어떤 금속과도 달랐다. 유기물처럼 울퉁불퉁하면서도 매끄러웠고, 빛을 흡수하는 듯 깊은 검은색을 띠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그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었다. 기하학적이면서도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낯선 상형문자들이 희미하게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대의 심장이 어렴풋이 고동치는 것만 같았다.
“이건… 대체 뭐야?”
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스캐너가 이물질을 탐지했다. 아니, 이물질이 아니라 ‘미지의 에너지원’을 탐지했다. 장치 표면에는 그 어떤 접점이나 포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매끄럽고, 검은, 낯선 덩어리였다.
호기심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차가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표면은 미지근했다. 그리고 손이 닿는 순간, 파동이 느껴졌다. 피부를 타고 스며드는 미세한 진동.
“이봐, 무슨 일이야?”
현은 주머니에서 최신형 해킹 툴을 꺼냈다. 손목에 장착된 인터페이스가 ‘알 수 없는 전력 출력’, ‘시스템 없음’, ‘데이터 링크 불가’라는 경고를 뱉어냈다. 하지만 포기할 현이 아니었다. 그는 툴의 미세 탐침을 구조물의 표면에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신경 인터페이스를 연결하자, 뇌 속으로 차가운 전기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보통은 시스템의 방화벽이나 데이터 노드에 대한 정보가 시각화되어 펼쳐져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데이터 그리드가 아니었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푸른빛의 선들이 물결치듯 솟아나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코드도, 정보의 흐름도 아니었다. 순수한 에너지, 태초의 혼돈 같은 것이었다.
“이게… 뭐지?”
뇌 속에서, 아니, 어쩌면 뇌 밖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울렸다. 언어가 아닌, 개념 그 자체였다. **’열어라. 그대의 심장을. 그대의 눈을.’**
동시에 검은 구조물 표면의 상형문자들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현은 자신의 눈이 평소와 다르게 세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의 폐허가 단순한 고철 덩어리로 보이지 않았다. 망가진 제어판 사이에서 희미하게 흐르는 잔류 전력들이 마치 혈관처럼 보였고, 천장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서는 고대의 소리들이 들리는 듯했다.
갑자기, 현의 손에서 해킹 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금속이 녹아내리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툴의 디스플레이가 혼란스러운 패턴으로 깜빡이더니 이내 ‘오류: 시스템 과부하. 존재하지 않는 프로토콜.’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터져버렸다.
파편이 튀었지만, 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푸른빛의 선들이 춤추는 어둠 속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구조물에 손을 댄 곳에서부터 그의 팔 전체로, 그리고 다시 그의 몸 전체로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마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감각.
**’취해라. 그대의 갈망을.’**
뇌 속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게, 그의 의식을 잠식하듯이. 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푸른빛의 에너지 선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그 순간, 거대한 돔형 공간 전체가 일렁였다. 천장에서 떨어지던 물줄기가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역류하듯 위로 솟구쳐 올랐다. 바닥에 고인 녹물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며 격렬하게 끓어올랐다. 주변의 망가진 서버 랙과 고철들이 굉음과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마치 중력이 사라진 듯 천천히 움직였다. 그것은 전자기 충격파도, 시스템 해킹도 아니었다. 순수한 힘, 세계의 법칙을 일시적으로 뒤바꾸는 듯한 기적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현은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고동쳤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주변을 온통 집어삼켰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인데, 세상이 그의 뜻대로 뒤틀렸다.
하지만 그 힘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초 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물은 다시 아래로 떨어지고, 고철들은 쿵,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낙하했다. 푸른빛은 사그라들었고, 검은 구조물은 다시 침묵 속에 잠겼다.
현은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서 희미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잔상이 남아있었다. 그는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 단순한 구형 서버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것은… 마법이었다. 기술의 정점에 다다른 이 세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대의, 순수한 마법의 힘.
갑자기, 어둠 속에 숨어있던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폐허 저편에서 붉은 센서등 두 개가 번뜩였다. 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그 빛은 분명 로봇의 눈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보안 드론은 이미 오래전에 기능을 상실했어야 했다.
“젠장, 설마 이것 때문에…”
현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깨운 것은 비단 고대의 힘만이 아니었다. 그 힘의 존재를 탐지하고 달려온, 혹은 깨어난,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수호자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커졌다. 기계적인 발소리. 그리고 이내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기계 음성이 울려 퍼졌다.
“미확인 에너지 감지. 침입자 확인. 제거 프로토콜 활성화.”
현은 구조물을 등지고 뒤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방금 자신이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이 암울한 사이버펑크 세계를 뒤흔들 무언가가 잠들어 있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방금 맛본 그 힘을 다시 한번 사용할 것인가. 그의 손끝이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힘에 반응하며 미약하게 떨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