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도시의 흉터가 하늘을 찢고 있었다. 한때는 번영을 노래했을 마천루의 앙상한 뼈대들이 끝없이 펼쳐진 폐허 위로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거대한 기동 병기, ‘강철 파수꾼’의 조종석 안에서 카엘은 끈적한 땀을 닦아냈다. 투박한 금속 패널들로 둘러싸인 내부에는 오래된 기름 냄새와 눅눅한 습기가 섞여 있었다. 전면 스크린 너머로는 희뿌연 먼지가 사방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철 파수꾼’의 센서들은 묵묵히 길을 밝히고 있었다.
“카엘, 전력 수치 70%까지 떨어졌어. 이대로는 예정된 복귀 지점까지 못 돌아가.”
리나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조종석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후방 지원 차량에서 ‘강철 파수꾼’의 모든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미세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알고 있어, 리나. 그 빌어먹을 에너지 잔류파, 꼭 찾아야 해.”
카엘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일주일째였다. 녀석들은 거의 모든 예비 전력을 갉아먹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다음 탐색은 기약할 수 없었다. ‘강철 파수꾼’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이 황폐한 세상에서 그들이 가진 유일한 생존 수단이자, 이동하는 요새였다.
강철 파수꾼의 육중한 발이 무너진 도로 위를 밟고 지나갈 때마다 낡은 콘크리트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선 대구경 운동 에너지포가 묵직하게 존재감을 과시했고, 왼쪽 팔뚝에는 거친 진동을 일으키는 거대한 진동 칼날이 달려 있었다. 모두 파편과 폐기된 부품들로 조립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기들이었다.
“좌측 2시 방향, 희미하게 감지됩니다. 이전에 잡히던 것보다 훨씬 강해요. 움직임은… 불규칙적입니다.”
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핀은 경량 수색 기체를 타고 ‘강철 파수꾼’의 전방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는 팀의 눈이었다.
“불규칙적이라니?” 카엘이 되물었다. “오래된 감시 드론인가? 아니면… 철충?”
“철충은 아닙니다. 최소한 패턴이 달라요. 너무… 크고, 둔탁해요. 마치 뭔가에 이끌리듯 움직이고 있어요.”
핀의 목소리 끝에 미묘한 긴장감이 실렸다. 핀은 허세만 가득한 녀석이었지만, 그의 직감은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강철 파수꾼’은 조심스럽게 속도를 늦췄다. 카엘은 매니퓰레이터를 조작해 전방 스크린의 확대 배율을 높였다. 먼지와 안개 너머로, 희미한 윤곽이 잡혔다. 거대한… 기계. 하지만 온전한 형태는 아니었다. 마치 여러 대의 기계가 비정상적으로 엉겨 붙어 하나의 괴물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젠장… 저게 뭐야?” 카엘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형태예요. 잔류파의 근원지로 향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카엘!” 리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잔류파의 근원지. 그곳에 자신들이 찾는 에너지원이 있다면, 저 기괴한 괴물 역시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핀, 회수해. 교전한다.” 카엘이 명령했다.
“회수? 저거 혼자서 상대하겠다고요? 보십시오, 저 기형적인 크기를!” 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어쩌겠어, 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저놈이 먼저 전력원을 손에 넣게 둘 순 없지.” 카엘의 눈이 스크린 속 괴물을 응시했다. “리나, 모든 시스템 전투 모드로 전환. 에너지포 최대 충전 대기.”
‘강철 파수꾼’의 거대한 몸체에서 기계음과 함께 둔탁한 진동이 울렸다. 외부 장갑판 사이로 충전 중인 에너지포의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카엘은 조종간을 꽉 쥐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기괴한 기계 괴물은 마치 땅의 일부인 양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이 황량한 폐허에 울려 퍼졌다. 녀석의 몸체 곳곳에선 부식된 장갑판이 너덜거렸고, 날카로운 파편들이 불규칙하게 솟아 있었다. 이따금씩 기묘한 전기 스파크가 튀기도 했다.
“사정거리 300, 200… 150!” 리나가 카운트다운 했다.
“발사!” 카엘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앙!
‘강철 파수꾼’의 어깨 위에 장착된 대구경 운동 에너지포가 포효하며 거대한 푸른 섬광을 뿜어냈다. 수십 톤의 금속을 압축한 듯한 포탄이 음속을 뚫고 날아가 괴물의 몸통을 강타했다.
쿠우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괴물의 몸체에서 파편과 연기가 솟구쳤다. 잠시 녀석의 움직임이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녀석은 더욱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낡은 기계팔이 사방으로 뻗어 나오며 비명을 질렀고, 녀석의 몸체에서 또 다른 기형적인 부속들이 튀어나왔다.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어요!” 리나가 경악했다.
괴물은 마치 진흙 속을 기어 다니는 거대한 지네처럼, 뒤틀린 몸체를 이끌고 ‘강철 파수꾼’을 향해 돌진해왔다. 땅을 울리는 진동이 조종석까지 전달되었다.
“망할…! 핀, 엄호 사격!”
“쳇, 알겠습니다!”
핀의 경량 기체에서 기관포탄이 쏟아져 나와 괴물의 몸통을 긁어댔다. 하지만 녀석의 단단한 외피에는 작은 흠집만을 남길 뿐이었다. 괴물의 앞부분에서 거대한 금속 갈고리가 튀어나오며 ‘강철 파수꾼’을 향해 휘둘러졌다.
카엘은 재빨리 매니퓰레이터를 조작해 회피 기동을 지시했다. ‘강철 파수꾼’의 육중한 몸체가 간발의 차이로 갈고리를 피해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갈고리의 끝이 ‘강철 파수꾼’의 왼쪽 어깨 장갑을 스쳤고, 끔찍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조종석 내부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좌측 어깨 장갑 파손! 전력 케이블 일부 노출!” 리나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강철 파수꾼’의 어깨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카엘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저 녀석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자살 행위였다.
“리나, 괴물의 움직임 패턴 분석해! 핀, 녀석의 약점을 찾아!” 카엘이 외쳤다.
괴물은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낡은 유압 장치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대한 팔들이 ‘강철 파수꾼’을 짓누르려 했다. 카엘은 맹렬히 방어하며 빈틈을 찾았다.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들은 전투의 격렬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더욱 무너져 내렸다. 건물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먼지 구름이 시야를 가렸다.
“녀석의 심층 구조가 너무 복잡해요! 마치 무작위로 부품을 쌓아 올린 것 같아요!” 리나가 보고했다.
“잠깐, 카엘! 저기! 녀석의 몸통 중앙에, 뭔가 이질적인 부품이 보입니다! 다른 부품들에 비해 유독 깨끗하고, 푸른빛을 띄고 있어요!” 핀의 목소리에 희망이 섞여 있었다.
카엘은 핀의 지시를 따라 시야를 고정했다. 괴물의 뒤틀린 금속 덩어리 한가운데, 작지만 선명하게 푸른빛을 내뿜는 정육면체 형태의 코어가 박혀 있었다. 자신들이 찾는 에너지 잔류파의 근원지. 괴물은 그 코어를 마치 자신의 심장처럼 품고 있었다.
“저게 녀석의 전력원이군! 어쩐지 활성화된다 싶었어!” 카엘의 얼굴에 결의가 떠올랐다. “리나, 모든 예비 전력을 진동 칼날에 집중시켜! 한 번에 끝낸다!”
“위험해요, 카엘! 너무 근접전이에요! 실패하면…”
“성공해야 해. 다른 방법은 없어!”
‘강철 파수꾼’은 돌연 괴물의 공격을 받아내지 않고 피하며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녀석의 뒤틀린 팔들이 사방에서 날아왔지만, 카엘은 베테랑 파일럿의 노련함으로 그 모든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냈다.
괴물의 거대한 몸체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녹슨 철제 뼈대가 눈앞에 가득 찼다. 썩은 금속 냄새가 조종석 내부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칼날 최대 출력! 지금입니다, 카엘!” 리나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카엘은 조종간을 앞으로 밀어붙였다. ‘강철 파수꾼’의 왼쪽 팔에 달린 진동 칼날이 맹렬한 굉음을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칼날을 따라 번쩍였다. 전력 소모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지만, 카엘은 망설이지 않았다.
“죽어라, 고철!”
진동 칼날이 괴물의 몸통을 향해 맹렬하게 내리찍혔다. 쇠를 찢고 뼈를 가르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녀석의 몸체를 이루고 있던 온갖 부품들이 격렬한 진동에 못 이겨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진동 칼날은 마침내 푸른 코어에 도달했고, 코어는 마치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듯 섬광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강철 파수꾼’의 눈앞에서 터져 나갔다. 충격파가 조종석을 강타했고, 카엘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몸을 움츠렸다. ‘강철 파수꾼’의 시스템이 비명을 지르며 붉은 경고등을 뿜어냈다.
몇 초 후,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조종석의 흔들림이 멈추고, 카엘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전방 스크린 너머로는 거대한 괴물이 사라진 자리에 검은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기 속에서, 핀이 말했던 푸른 코어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의 그을음이 묻어 있었지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공했다…!” 리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도감이 가득했다.
카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철 파수꾼’의 시스템은 처참한 수준이었지만, 임무는 완수했다. 이 코어만 있다면, 다음 탐색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력이 바닥이야, 카엘. 지금 당장 이걸 가져가도… 복귀는 무리야.”
리나의 차분한 목소리에 다시금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카엘은 스크린 너머로 무너진 도시의 끝없는 실루엣을 바라봤다. 아직 해는 저물지 않았지만, 이 폐허의 밤은 그 어떤 괴물보다도 잔혹했다.
겨우 코어 하나를 손에 넣었을 뿐인데, 생존을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