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7화

깊은 밤, 도시의 불빛마저 희미해지는 시간.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스튜디오에는 따스한 온기가 가득했다. DJ 별지기의 낮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흐르면, 수많은 영혼들이 보이지 않는 파장을 따라 모여들었다. 지난 방송에서 한 청취자가 전해온 먹먹한 이별 이야기가 여운처럼 스튜디오에 감돌았다. 별지기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별들의 속삭임이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밤입니다. 이 순간, 어디에 계시든 여러분의 밤하늘은 어떤 별들로 채워져 있나요? 저는 DJ 별지기입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별지기는 천천히 다음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 도착한 사연 중 그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새벽별’이라는 이름의 청취자가 보낸 편지였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에서는 오래된 종이 냄새와 함께 아련한 그리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별지기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난생 처음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봅니다. 얼마 전 이사를 준비하다가 오래된 앨범 구석에서 작은 나무 조각을 발견했어요.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투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새 모양 조각이었죠.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이 새가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왜 제가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다만, 그 나무 조각을 손에 쥐었을 때, 잊고 있던 어떤 따뜻함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별지기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의 눈빛은 아득한 먼 곳을 응시하는 듯했다.

“‘새벽별’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어릴 적, 저는 부모님과 함께 잠시 시골 작은 마을에 살았어요. 기억나는 건 어렴풋한 들판과 밤이면 쏟아지던 별들뿐입니다. 제가 그 마을에 살던 때, 아주 잠시 동안 저와 매일 함께 놀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손재주가 정말 좋았고, 늘 무언가를 만들고 다듬기를 좋아했어요. 이름은… 희미해요. 그 아이도 이사를 갔고, 저도 곧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으니까요. 어쩌면 이 나무 새는 그 친구가 제게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마음이 아려옵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선물인데, 저는 그 마음을 잊고 살았던 걸까요?’…”

별지기는 편지를 읽는 내내 자신의 손바닥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졌다. 그의 손에도 비슷한 크기의, 그러나 조금은 다른 모양의 나무 조각이 쥐어졌던 기억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존재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는 마이크를 향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새벽별님의 사연을 읽으니, 저도 문득 오래된 기억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듭니다. 잊고 지냈던 조각들이 문득 어떤 계기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때, 우리는 그 조각들이 지닌 이야기의 무게에 한없이 작아지곤 하죠.”

그의 뇌리에는 흐릿한 한 폭의 그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 막 이사 온 옆집에 또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태준. 태준이는 늘 주머니에 작은 칼과 나무 조각을 가지고 다녔다. 말이 많지 않았지만, 그의 손은 늘 바쁘게 움직였다. 별지기, 아니 당시의 어린 ‘지환’은 태준이 옆에 앉아 그 섬세한 손길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태준이는 지환에게 다가와 말없이 손바닥에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쥐여주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연필 모양을 한 조각이었다. 태준이가 늘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끄적였기 때문이었다. “지환아, 이거 네 거야. 네가 그림 잘 그리잖아.” 태준은 그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그 미소는 지환의 가슴에 따뜻한 감동과 함께 깊이 새겨졌다. 그것은 그가 받은 첫 번째 ‘진심’이 담긴 선물이었으니까.

하지만 태준이는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갑작스레 이사를 가게 되었고, 지환에게 작별 인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지환은 태준이가 떠나는 날, 마을 어귀에서 멀어지는 트럭을 보며 나무 연필 조각을 꽉 쥐고 서 있었다. 그 후 그 연필 조각은 그의 보물 상자 안에 고이 간직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며 그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별지기는 잠시 멍하니 스튜디오 창밖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저 별들 중 하나가 태준의 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새벽별님의 친구의 별일까. 어쩌면 그 별들은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조각들을 다시 찾아주려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벽별님, 어쩌면 그 나무 새는 잊혀진 마음이 아니라, 잠시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었던 마음일 겁니다. 잊히지 않고, 그저 우리 삶의 어느 한 페이지에 조용히 숨 쉬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지금, 그 페이지가 다시 펼쳐진 것이고요.”

그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이 사연을 통해 문득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물건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 그중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리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우리의 손에 쥐어졌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새벽별님, 저는 새벽별님의 마음이 아린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이 작은 나무 조각이 여러분에게 던진 질문에 귀 기울여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조각이 다시 나타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어쩌면 잊었다고 생각했던 인연을 다시 찾아갈 기회, 혹은 그때 미처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이제라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별지기는 스튜디오의 불빛 아래 놓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연필 조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그 연필 조각이 남긴 따스함과 아련함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는 태준이의 이름 세 글자를 나직이 읊조렸다.

“오늘 이 밤, ‘새벽별’님에게 그리고 저에게, 그리고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작은 조각들이 다시 빛을 발하는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조각들이 여러분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고, 혹은 잊고 지냈던 소중한 인연을 다시 이어줄지도 모르니까요.”

그는 심호흡을 한 뒤, 다음 곡을 소개했다. 잔잔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멜로디였다. 별지기는 노래가 흐르는 동안 눈을 감았다. 태준이에게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 혹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이제 와서 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스쳤다.

별지기는 라디오 스튜디오의 창문 너머로 무수히 박혀 있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연필 조각은 더 이상 희미한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새벽별님이 찾은 나무 새처럼, 다시 그의 심장을 두드리는 하나의 작은 신호였다. 어쩌면 이 밤은 잃어버린 모든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의 시선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 끝에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