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강현의 발걸음은 미끄러운 바닥에 채이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침묵은 살아있는 존재처럼 두꺼웠고, 귓전을 맴도는 자신의 숨소리만이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는 지금 ‘심연의 흑철 유적’의 가장 깊은 곳, 전설 속에서만 회자되던 ‘절규의 전당’에 서 있었다.

지하 수만 길 아래, 태고의 어둠이 응집된 듯한 이곳은 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지옥과도 같았다. 강현이 든 영광석등(靈光石燈)이 희미한 푸른빛을 토해내며 주변을 비췄지만, 그 빛은 거대한 공간의 압도적인 암흑을 더욱 부각시킬 뿐이었다. 전당의 천장은 까마득하여 끝을 알 수 없었고, 사방의 벽면은 거친 흑철이 아닌,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뼈대처럼 꿈틀거리는 문양들로 뒤덮여 있었다. 벽에 새겨진 기이한 상형문자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명확했다. – 경고.

“젠장….”

강현은 무의식중에 낮게 읊조렸다. 숨통을 옥죄는 듯한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파고들었다. 이곳은 단순히 버려진 유적이 아니었다. 강현의 무수한 탐험 경험이 본능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곳은 무언가를 가두기 위해, 혹은 무언가로부터 스스로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봉인(封印) 그 자체였다.

그의 눈은 거대한 전당의 중앙에 꽂혔다. 높이 수십 척에 달하는, 정체 모를 검은 돌기둥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 기둥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마치 수만 년 동안 응어리진 고통이 형상화된 듯, 왜곡되고 뒤틀린 형상이었다. 그 위로 정교하게 조각된 문양들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며 불길한 생명력을 내뿜는 듯했다.

강현은 조심스럽게 기둥으로 다가섰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심장이 바닥을 울리는 듯한 둔탁한 진동이 발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환청인가? 아니, 미세하게 떨리는 영광석등의 불빛이 그 진동이 현실임을 증명했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듣는 이의 영혼마저 뒤흔드는 저음의 맥동이었다.

기둥에 가까워질수록, 벽면의 상형문자들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붉은빛으로, 이내 검붉은 색으로 변하며 강현의 시야를 잠식했다. 그와 동시에, 기둥 주변의 공기가 기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강현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기둥을 만져보려 했다. 그의 손이 표면에 닿기 직전, 불꽃 튀는 듯한 섬광이 번쩍이며 기둥 전체를 감쌌다.

콰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전당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천장에서 먼지와 돌 부스러기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강현은 재빨리 자세를 낮춰 충격에 대비했다. 굉음은 이내 잦아들었지만, 전당을 가득 채운 섬뜩한 고요는 이전보다 훨씬 깊고, 무거웠다.

강현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기둥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없었던, 기둥 중간쯤에 가로로 이어진 틈이 보였다. 그 틈은 마치 거대한 입술처럼 벌어져 있었고, 그 안에서 스며 나오는 기운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냉기로 가득했다. 그의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은 단순히 추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두려움이었다.

그때, 틈 사이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깨어나라….

환청이 아니었다. 분명히 귀에 박히는 소리였다. 아주 오래된, 수만 년의 세월을 짓눌러온 듯한 중후하고 비틀린 목소리. 그 소리는 강현의 뇌리를 직접 파고드는 듯했다.

강현은 검을 뽑아 들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껏 어떤 강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강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목소리는 마치 봉인된 존재의 의식 그 자체인 듯했다.

“누구냐!” 강현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전당의 거대한 공간에 흡수되어 허무하게 흩어졌다.

— 어둠 속에 갇힌 자… 너는… 나를 불러냈다….

목소리가 한층 더 또렷해지자, 기둥의 틈은 더욱 벌어졌다. 그 틈새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치 심연에서 기어오르는 거대한 그림자처럼, 틈을 비집고 기어나오는 거대한 손가락이 보였다. 검고 뒤틀린, 거대한 발톱이 달린 손가락은 전당의 바닥을 긁으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강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기둥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봉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방금 그 봉인의 빗장을 억지로 비틀어 연 것이었다.

그때, 전당의 네 귀퉁이에서, 바닥에 새겨져 있던 거대한 진법(陣法)이 붉은빛을 토하며 섬광과 함께 솟아올랐다. 그 빛은 봉인된 존재가 완전히 풀려나는 것을 막으려는 듯, 검은 기운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쿠르르릉!

전당이 다시 한 번 요동쳤다. 기둥에서 뻗어 나오던 검은 그림자가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그 힘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렬한 의지를 내뿜으며 봉인의 균열을 넓혀갔다.

강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 그림자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존재가 풍기는 기운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괴적인 힘과 태고의 사악함을 품고 있었다.

“이곳은… 봉인된 지옥이었군.”

강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고대 유적의 비밀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재앙의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둥의 틈새가 한 뼘 더 벌어졌다. 그 사이로 보이는 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무수한 별들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칠흑 같은 심연이었다. 그리고 그 심연 속에서,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섬뜩한 붉은 눈빛이 번뜩였다.

봉인의 마법진이 찢어지는 굉음이 전당을 뒤흔들었다. 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지금, 감히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와 마주하고 있었다. 과연 이 재앙을 다시 봉인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자신이 막을 수나 있을까? 의문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그림자의 손가락은 기둥의 틈을 완전히 벌리고, 비로소 전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용이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용이 아니었다. 뼈와 가죽이 뒤틀리고, 악의 기운에 오염된, 칠흑 같은 비늘로 뒤덮인 끔찍한 형상의 사룡(邪龍)이었다.

그 사룡의 눈이 강현을 향했다.

— 너의 피로… 다시 깨어나리라….

사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고대의 포효가 전당의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강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수만 년의 세월을 넘어, 심연의 흑철 유적에 봉인되어 있던 진정한 재앙이 마침내 깨어났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오직 강현, 한 사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