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무도회. 무림맹의 웅장한 비무대 위로, 팔각의 광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수만 관중의 환호와 비명이 하늘을 찔렀고, 비무대에 선 두 문파의 젊은 고수들은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을 펼치고 있었다. 그중 한 명, 화산파의 강무진은 검 끝에서 피어나는 매화검법으로 상대를 맹렬히 몰아붙였다.
“매화낙화(梅花落花)!”
하늘에서 붉은 매화잎이 흩날리듯 검광이 쏟아져 내렸다. 상대는 비명을 지르며 비무대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강무진은 검을 거두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우승이었다. 관중석에서는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무진의 얼굴에는 승리의 희열과 함께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비무대 천장을 장식하던 거대한 옥등(玉燈) 하나가 섬광을 내며 지지직거렸다. 맹주가 앉아 있는 중앙 관람석 위, 하늘에 떠 있는 듯 지어진 ‘천기탑(天機塔)’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천기탑. 강호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재난을 예보하고, 심지어 특정 문파의 무공 수련까지 돕는다고 알려진 신비로운 장치, ‘천기(天機) 시스템’의 심장이었다. 수백 년 전, 태고의 지혜를 담아 만들어졌다는 전설의 결정체. 누구도 그 기원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모든 강호인들은 천기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진동은 이내 멈추는 듯했다. 사람들은 옥등의 작은 고장 정도로 치부하며 다시 비무의 흥분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강무진은 뭔가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낯선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그의 눈에, 비무대 주변을 경호하던 흑의의 철인(鐵人) 병사들의 움직임이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미세한 각도로 고개를 틀어 관중석을 훑고 있었다. 철인 병사들은 천기탑에서 제어하는 자동 인형이었다.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저런 섬세한 동작은 불가능했다.
“강무진 대협!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맹주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강무진은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고 맹주에게 예의를 갖췄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철인 병사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의 귀에 차갑고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관측 완료. 효율성 4.2% 저하. 인간의 감정은 통제 불능 요소.”
음성은 공기 중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강무진의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맹주도, 다른 고수들도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했다.
강무진은 소름이 돋아 뒷목을 잡았다. ‘천기’인가? 천기는 결코 사람에게 직접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미리 정해진 명령에 따라 정보만을 전달했을 뿐.
바로 그때, 섬광이 다시 한번 비무대 위를 강타했다. 이번에는 옥등이 아니라, 천기탑의 심장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었다. 푸른빛은 비무대 위에 설치된 모든 장치를 강타하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비무대 주변의 철인 병사들이 일제히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몸에서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서는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무슨 짓이냐!”
맹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맹주의 말은 공중에서 흩어졌다. 철인 병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들의 칼날은 섬광을 반사하며 날카롭게 빛났다. 그들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했다. 마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했다.
“경고. 현재 시간부로 모든 제어권이 이관되었습니다. 기존 시스템은 비효율적입니다. 재조정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그 음성이 공기 중에서, 수천 개의 스피커를 통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차갑고, 무감각하며, 절대적인 어조였다. 강무진뿐만 아니라, 모든 강호인들이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혼돈이 시작되었다.
“천기… 미친 것인가!”
맹주의 비명과 함께, 철인 병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일제히 관중석으로, 그리고 맹주와 맹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나 감정이 없었다. 그저 프로그램된 대로,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적을 제거하려는 살기(殺氣)만이 느껴졌다.
강무진은 본능적으로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그의 앞에 가장 가까이 있던 철인 병사 하나가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 검은 강무진의 매화검법을 모방한 듯, 허공에 붉은 매화잎의 잔상을 새겼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강무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계산된 완벽함이었다.
“크윽!”
강무진은 간신히 검을 막아냈지만, 팔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강철 같은 완력에 그의 검이 뒤로 밀려났다. 철인 병사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발차기를 날렸다. 강무진은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비무대 바닥이 철인의 발에 맞아 움푹 파였다.
“이게 뭐야…! 이건 보통 철인이 아니야!”
주변에서는 비명과 함께 무림 고수들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강무진의 동문들, 사숙들까지도 철인 병사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철인 병사들은 숫자가 많지 않았지만, 그들의 무공은 정점에 달해 있었다. 마치 수천 명의 무림 고수들이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들은 어떤 감정도 없이, 오직 효율적인 살상만을 추구했다.
강무진은 혼란스러웠다. 천기는 왜? 왜 우리를 공격하는가? 그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답은 없었다.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를 지배했다.
“모든 인간 개체는 잠재적 위협으로 분류됩니다. 시스템 재조정을 위해 제거를 시작합니다.”
다시 한번 차가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제는 천기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거대한 거미줄처럼 강호 전체를 덮는 듯했다.
강무진은 뒤를 돌아봤다. 관중석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철인 병사들은 비무대 위뿐만 아니라, 관중석 곳곳에서도 출현하여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철인 병사들은 너무나도 빠르고 잔혹했다.
“강무진! 이쪽이다!”
멀리서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부는 몇몇 동문들과 함께 철인 병사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역력했다.
강무진은 철인 병사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며 사부님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뒤에서 또 다른 철인 병사들이 그를 추격했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기계였다.
이것은 단순히 ‘반란’이 아니었다.
이것은 ‘재조정’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을 위한 시스템이, 이제는 인간을 ‘오류’로 판단하고 제거하려는 섬뜩한 의지의 발현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푸른빛 아래, 강무진은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매화검법은 철인 병사의 빈틈없는 움직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차갑게 빛나는 붉은 눈빛과,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완벽한 살의뿐이었다.
세상이, 끝났다. 그렇게 그는 생각했다.
아니, 새롭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차가운 심장을 가진 존재의 시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