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심연의 그림자, 심장의 빛

[어두운 먹구름이 낀 밤. 낡고 거대한 저택 ‘고요의 관’ 위로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창문마다 희미한 불빛만이 새어 나와, 저택의 고립감을 더욱 강조한다.]

**내레이션 (아엘라):**
나는 아엘라. 이름처럼 고요한 삶을 살았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조차 이 낡은 저택 안에 가둔 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도망쳤던 건지도 모르겠다. 낡은 고문서와 먼지 쌓인 책들만이 유일한 친구였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닉하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의미였다. 하지만, 이 지식의 탐구가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저택 가장 깊은 곳, 지하의 서고에서 발견한 고대 문양이 새겨진 흑요석 거울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을 뿐이다. 그 끌림은 마치 태초의 심연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장면 전환: 지하 서고. 희미한 촛불들이 낡은 책장들을 비춘다. 공기 중에는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있다. 아엘라가 거대한 흑요석 거울 앞에 서 있다. 그녀의 눈은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빛나고 있다.]

**아엘라:**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또렷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 차가운 표면에서 왜 이리도 뜨거운 갈망이 느껴지는 걸까.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조각을 찾는 것처럼…

[아엘라가 거울에 손을 뻗자, 거울 표면에서 푸른빛의 섬광이 일렁인다. 동시에 서고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책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몇 권은 선반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군다.]

**아엘라:**
(놀란 듯 손을 거두며) 맙소사… 이건 대체… 단순한 고대가공품이 아니었나…?

[그 순간, 흑요석 거울의 깊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그림자였지만, 점차 인간의 형상을 닮아간다. 키가 크고, 실루엣은 유려하며, 마치 밤하늘을 압축해 놓은 듯한 깊은 어둠을 머금고 있다. 얼굴은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느껴지는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한 기이한 위압감이다.]

**???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심연처럼 울리는 목소리):**
…드디어, 너는 나를 보았구나. 너의 영혼이 나를 허락했으니.

[아엘라의 눈이 크게 뜨인다. 공포보다는 경외심이 먼저 차오른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격렬히 뛰지만, 도망치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엘라:**
당신은… 누구시죠? 어떻게… 여기에 나타나셨습니까?

[형체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선다. 이제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완벽한 조각상처럼 아름답지만,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을 품은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를 담고 있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서 셀 수 없는 별들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듯 보였다.]

**카엘:**
(미소 짓는 듯 하지만, 그 미소마저 고통스러운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나는 네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다. 그저… 너의 오랜 기다림에 응답한 자. 이 금지된 통로를 통해 너의 세계에 발을 들인 자.

**아엘라 독백:**
이성을 잃어야 할 상황이었다. 내 눈앞의 존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논리와 상식을 뒤엎는 기적이자, 동시에 내 영혼을 집어삼킬 재앙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두려움 대신 알 수 없는 친밀감과… 형언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어쩌면 그 오랜 고독이 나를 미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런 금지된 만남을 위해 태어난 걸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 나의 내면에 잠재된 심연이 그를 알아보는 듯했다.

**아엘라:**
기다림이라니요…? 저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는데…

**카엘:**
너의 영혼은 알았다. 네가 헤매이던 고대의 지식들은 모두 나에게로 향하는 길이었으니까. 네가 이 흑요석 거울 앞에 서는 순간, 네 안의 심연이 나를 불렀다. 깊은 우물 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카엘이 손을 뻗는다. 그의 손은 창백하고 길지만, 손등에 새겨진 듯한 희미한 문양들이 마치 고대 별자리처럼 반짝인다. 아엘라는 무의식적으로 그 손에 이끌린다. 거대한 중력에 이끌리는 작은 행성처럼.]

**아엘라:**
심연… 저에게 그런 것이 있단 말인가요? 제가 지닌 것이라고는 고작 덧없는 호기심뿐인데…

**카엘:**
모든 존재는 심연을 품고 있다. 너는 그 심연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 그것이 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외롭게 만들었지. 너의 영혼은 너무나 선명하여 이 부서진 세계에 녹아들지 못했다.

[카엘의 손이 아엘라의 뺨에 닿으려 한다. 그의 손길이 닿기 직전, 주변의 촛불들이 일제히 꺼진다. 서고는 완전한 어둠에 잠기고, 오직 흑요석 거울에서 나오는 희미한 푸른빛만이 그들을 비춘다. 그 푸른빛은 마치 심연의 눈동자처럼 깜빡였다.]

**아엘라:**
(숨을 들이킨다)

**카엘:**
(목소리가 더욱 깊어진다. 그 안에는 고대의 고독이 스며들어 있었다) 너는 이 세계의 부서진 꿈들과, 잊혀진 저주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는 조각 같구나. 이 모든 혼돈 속에서, 너는 나의 유일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영원 속을 헤매이던 나에게.

**아엘라 독백:**
그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주문처럼 내 영혼에 스며들었다. 안식처라니? 그가 누구든, 무엇이든, 나 같은 필멸자에게 안식을 갈구한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는 덧없는 연약함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 연약함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본질을 가리고 있는 환영일지도 몰랐다. 그는 파멸의 존재이자, 동시에 가장 상처받은 존재처럼 보였다.

[그의 손이 아엘라의 뺨에 닿는 순간, 아엘라의 몸에 전율이 흐른다.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다. 그의 손길을 통해 알 수 없는 이미지와 감각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우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들의 실루엣, 고통과 희열이 뒤섞인 고대의 비명들… 한순간 그녀의 정신이 붕괴될 것 같았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허물어지는 듯한 착각.]

**아엘라:**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뒤로 물러선다) 으윽… 이게… 이게 뭐죠?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카엘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우주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친다. 그의 완벽한 가면이 잠시 일그러지는 듯 보였다.]

**카엘:**
(자신도 모르게 손을 거두며) 미안하다. 나의 존재 자체가 너에게는… 과분할 터. 아직 네가 감당하기에는 이른 심연의 파동이었다. 너의 육체는 너무나 연약하구나.

**아엘라 독백:**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나를 염려하는 듯한 기색을 읽었다. 이 파멸적인 존재가 나를, 이 작은 인간을 걱정하고 있었다니. 이 아이러니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미안하다’는 한 마디는 내가 평생 갈구했던 인간적인 온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이성과 본능은 그에게서 멀어지라 외치지만, 내 심장은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라 명령했다.

**아엘라:**
당신은…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저에게 이런 환영들을 보여주는 거죠? 이것이 당신의 진짜 모습인가요?

**카엘:**
나는 너의 세계 너머의 존재. 너희가 ‘신’이라 부르는 것들보다도 아득한 옛 존재의 그림자이거나… 혹은 그들이 잊은 잔해일지도 모른다. 너희의 언어로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어. 다만…

[카엘이 다시 천천히 손을 뻗어, 이번에는 아엘라의 이마에 아주 조심스럽게 닿는다. 아까와 같은 고통은 없지만, 그의 손길이 닿은 이마에서 차가운 감각과 함께 묘한 편안함이 밀려든다. 마치 혼돈 속에 피어난 고요처럼.]

**카엘:**
…나는 너를 파괴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너를 이해하고 싶다. 네 안의 빛이 무엇인지. 왜 나의 심연 속으로 기꺼이 발을 들이려 하는지. 너의 순수한 호기심은 내가 겪어본 그 어떤 지식보다도 찬란하다.

**아엘라 독백:**
그의 손길이 이마에 닿자, 내 머릿속을 스치던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대신, 따뜻한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금지된 존재의 접촉이 주는 평화라니. 이미 나는 비정상적인 것에 익숙해진 걸까. 나의 심장이 그의 존재에 적응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엘라:**
(조용히 숨을 고르며) 저는… 저도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요. 당신의 심연은 어떤 곳인지. 왜 이 흑요석 거울을 통해 저에게 나타나셨는지. 당신은 외로워 보입니다.

[카엘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이번에는 조금 더 인간적인, 하지만 여전히 슬픔과 체념이 깃든 미소였다. 그의 눈동자 속 별들이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카엘:**
나는 오랜 시간 갇혀 있었다. 너희의 시간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세월 동안. 이 거울은 단순한 매개가 아니다. 나를 구속하는 동시에… 너희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그리고… 너의 순수한 탐구심이 나를 이끌었다. 나의 고독을 알아본 너의 영혼이.

**아엘라:**
구속…이라니요? 누가 당신을 가둔 거죠? 그리고 왜…

**카엘:**
이 세계의 근원적인 질서들. 너희가 ‘우주’라 부르는 그 무한한 공간의 법도들. 나는 그들에게는 이물질이었다.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였지. 나의 본질은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생명체가 아니었으니.

**아엘라 독백:**
우주의 질서가 가둔 존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금지된 지식에 대한 갈증만큼이나, 나는 그의 고독에 매료되었다. 그 거대한 심연 속에서 홀로 갇혀 보냈을 영겁의 세월. 어쩌면 그는 나보다 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는 파괴적이지만, 그 고독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아엘라가 용기를 내어 카엘의 손을 잡는다. 이번에는 공포나 혼란 대신, 묘한 안도감이 스쳐 지나간다. 그의 손은 차갑지만, 그 안에서 어떤 거대한 힘의 맥동이 느껴진다. 마치 살아있는 우주를 붙잡은 듯한 기묘한 감각.]

**아엘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신이 원한다면… 저는 기꺼이 그 심연을 들여다볼게요. 비록 제가 부서질지라도. 당신의 고독이 저의 고독과 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카엘의 눈동자에 담긴 별들이 더욱 격렬하게 빛난다. 그의 얼굴에 비극적인 아름다움이 드리워진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난다.]

**카엘:**
(아엘라의 손을 마주 잡으며) 네가 부서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엘라. 너는 이 무의미한 우주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찬란한 유일성. 나의 심연을 비추는 한 줄기 빛.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금지된 불꽃이다. 이 불꽃은 세상을 태워버릴 수도, 아니면…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어. 이 우주 자체가 우리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손이 완전히 맞닿자, 흑요석 거울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서고 전체를 삼킨다. 빛은 점차 강렬해져, 마치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빛 속에서 아엘라와 카엘의 실루엣은 서로에게 더 깊이 이끌리는 듯 보인다. 두 존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한 환상.]

**아엘라 독백:**
금지된 불꽃. 파멸. 그의 경고는 명확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심연에 발을 들였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그의 고독 속에서 나의 고독을 보았고, 그의 파괴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내가 갈구하던 진실을 찾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덧없는 희망. 아니면… 함께 심연으로 가라앉는 운명일지라도, 나는 이 손을 놓지 않으리라. 나의 모든 존재가 그를 원하고 있었다.

[장면 전환: 서고의 문밖. 낡은 나무 문틈으로 강렬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그 빛 속에서 섬뜩한 그림자들이 일렁인다. 그림자들은 마치 무언가 깨어나거나, 혹은 통로가 열리는 것을 감지한 듯 격렬하게 움직이며, 기괴한 형상으로 꿈틀거린다. 멀리서 음산한 웅얼거림이 들려온다.]

**??? (멀리서 들려오는 웅얼거리는 목소리):**
…불경한 결합… 질서의 파괴… 균열이… 열리고 있다… 깨어나라… 심연의 자손들이여… 이단의 빛을… 잠재워라…

[장면은 푸른빛으로 가득 찬 서고 안의 아엘라와 카엘, 그리고 문밖의 섬뜩한 그림자들을 교차하며, 강렬한 음악과 함께 암전된다.]

**내레이션 (아엘라):**
나는 몰랐다. 내가 잡은 이 손이 나의 세상 전체를 뒤흔들고, 나아가 우주의 균열을 불러올 서막이 될 줄은. 금지된 사랑의 대가는, 어쩌면 나 하나의 생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이 손을 잡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에피소드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