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장: 심연의 부름

세상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진무영은 말없이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때는 푸르고 드높았던 창공이었다. 허나 이제 그 위로는 언제나 옅은 먹빛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처럼, 혹은 깊은 심해에서 스며 나온 먹물처럼 희미하게 세상을 뒤덮는 검은 장막. 사람들은 그것을 ‘검은 그림자’라 불렀고,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변고들을 운명이라 체념했다.

강호는 더 이상 강호가 아니었다.

과거, 의협과 패기가 넘치던 무림인들의 발걸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무림맹의 정파와 사파, 마교의 삼분천하(三分天下)를 논하던 시대는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단 하나의 질문만이 강호를 지배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가?

몇 해 전부터였다. 세상의 이치와 어긋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산천은 제 색을 잃고 핏물처럼 검붉게 물들었다. 짐승들은 알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혀 서로를 물어뜯거나 기형적으로 변모했다. 심지어 사람마저도, 명경지수(明鏡止水) 같던 심신이 하루아침에 탁해지거나, 이성을 잃고 제 부모형제를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특히 기괴한 것은 무림인들이었다.
수십 년 공력을 쌓아 올린 강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초라한 몰골로 변해, 하늘을 향해 기괴한 울음을 터뜨리거나 제 살점을 뜯어먹는 추태를 보였다. 그들의 단전에서 흘러나와야 할 순수한 내공은 오염된 탁기(濁氣)로 변질되어, 몸과 정신을 갉아먹었다.

진무영은 폐허가 된 주막터를 지나며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한때는 술잔이 오가고 무용담이 꽃피던 곳이었다. 지금은 썩은 나무 기둥과 해골 몇 개가 뒹굴 뿐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허리에 찬 낡은 검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그의 이름은 진무영. ‘그림자 없는 검’이라 불리던 쾌검의 달인이자, 강호가 가장 암울한 시기에 등장한 기재(奇才) 중 하나였다. 허나 그조차도 이 미지의 재앙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질 뿐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재앙의 근원이 강호의 힘겨루기나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그것은 저 검은 장막 너머에서, 태고의 시간부터 잠들어 있다가 이제야 눈을 뜨기 시작한 무언가의 그림자였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저 차원의 존재. 진무영은 그 존재를 ‘심연’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심연은, 서서히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협객?”

폐허 속에서 튀어나온 누더기 옷차림의 노인이 진무영을 가로막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와 희끗한 머리카락, 마른 가지 같은 팔. 노인의 얼굴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진무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황혼객잔으로 가는 길입니다.”

황혼객잔. 강호의 모든 문파와 세력들이 모이기로 한 약속 장소였다.
역사상 유례없는 ‘천하비무대전(天下比武大戰)’을 개최하기 위해서.

“거기로 가면 안 됩니다! 그곳은… 그곳은 이미 눈을 떴소!” 노인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으로 황혼객잔 방향을 가리켰다. “심연이… 심연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오!”

진무영은 노인의 광기 어린 외침을 무덤덤하게 들었다.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었다. 심연의 기운에 오염된 자들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저마다의 공포에 휩싸여 괴로워했다.

“저에게 갈 길이 있습니다.” 진무영은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

“안 돼! 당신마저… 그 눈에 사로잡힐 수는 없어! 그 놈들은 인간이 아니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노인은 갑자기 돌변하여 진무영에게 달려들었다. 마른 팔은 짐승처럼 휘둘러졌고, 날카로운 손톱은 진무영의 얼굴을 향했다.

진무영은 가볍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노인의 눈은 이미 온전치 못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어둠 속의 그림자를 쫓는 짐승의 눈빛이었다.

진무영은 노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정신 차리세요, 어르신.”

노인은 짐승 같은 신음을 내며 진무영의 팔을 물어뜯으려 했다. 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은 검은색이었다. 심연의 기운에 깊이 침식된 자들의 공통된 증상이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고,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진무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에 짧은 내공이 모였다. 살기(殺氣) 없는 기운이었지만, 노인의 머리에 닿자 순간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노인은 쿵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축 늘어진 팔다리. 광기에 가득했던 얼굴에는 일순간 평화로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편히 쉬세요.”

진무영은 노인의 눈을 감겨주고 몸을 돌렸다. 강호의 병든 모습이었다. 그는 수많은 이들을 이렇게 직접 제 손으로 편안하게 해주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저며드는 고통을 느꼈다.

황혼객잔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뻗어 기괴한 형상을 이루었고, 핏빛으로 물든 잎새들은 바람에 스산한 소리를 냈다. 산 능선을 따라 흐르는 기운은 분명 평범한 대지의 기운이 아니었다. 혼탁하고, 끈적이며, 듣기 싫은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진무영은 묵묵히 걸었다. 그의 검이 언젠가 이 세상을 깨끗이 벨 수 있을까?
아니, 심연은 베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으로 대적할 수 없는,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공포였다.

왜 무림맹은 이 대회를 열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분명했다.
“천하비무대전에서 우승한 자에게는 심연의 근원을 찾아 그것을 봉인할 임무가 주어진다.”
헛소리였다. 봉인이라니. 인간이 감히 봉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무영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또 다른 이유를 직감했다. 무림맹주와 각 문파의 수뇌부가 이토록 필사적인 것은, 단순한 영웅 선발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승자에게 주어질 진정한 ‘임무’가 무엇인지를. 그것은 어쩌면 강호의 가장 강력한 존재를 바치는 제물 의식일지도 몰랐다.

한참을 걸었을까. 저 멀리, 거대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협곡 사이로 황혼객잔의 지붕이 보였다.
붉은 노을이 객잔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 빛은 따스함 대신 기이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피를 머금은 불꽃처럼.

객잔 근처에 다다르자, 진무영은 멈춰 섰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공기 중에 섞인 미세한 탁기(濁氣)가 폐부를 찔렀다. 이 객잔은… 심연의 기운이 더욱 농밀하게 배어 있었다. 마치 심연 자체가 이 객잔의 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객잔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무림인들이 모여 있었다.
정파의 도복을 입은 자들, 사파의 짙은 옷차림, 마교의 검은 갑옷.
평소라면 칼끝을 겨눌 원수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침묵 속에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강자 특유의 오만함 대신 깊은 불안과 체념이 서려 있었다.

진무영은 그들 사이를 헤치고 객잔의 입구로 향했다.
객잔 문은 육중한 흑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위에는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었지만, 어딘가 일그러지고 뒤틀린 형상이었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웅성거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숨 막히는 정적과,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주 희미한, 뼈를 긁는 듯한 소음이었다.

진무영은 객잔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둠에 잠겨 있던 객잔 내부에는 거대한 홀이 펼쳐져 있었다. 홀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연무대가 자리했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무림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연무대 정면, 가장 높은 자리에 마련된 단상에는 무림맹주와 각 문파의 수뇌부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빛에는 깊은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진무영의 시선은 단상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석상 하나가 서 있었다. 고대의 신상처럼 보였지만, 그 형상은 어떠한 생명체도 닮지 않았다.
날개 없는 비행체의 파편처럼, 혹은 태초의 혼돈이 응축된 덩어리처럼.
그 석상에서는 미약하지만 끊임없이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객잔 안의 모든 무림인들이 그 기운에 침식당하고 있었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심연의 그림자.
아니, 그림자가 아니었다. 심연 그 자체였다.
대회가 열린다는 이 객잔 자체가, 심연의 문이었던 것이다.

정적이 흘렀다.
무림맹주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는 무겁게 울렸다.
“천하의 모든 무림인들이여, 경청하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내공이 실려 객잔 전체를 진동시켰다.

“우리는 지금, 강호의 존망을 결정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심연의 그림자는 이미 우리의 발밑까지 드리워졌고, 더 이상 피할 곳은 없다.”
맹주의 시선이 객잔에 모인 모든 무림인들을 훑었다. 그의 눈빛에는 절박함이 역력했다.

“이에 우리는 천하비무대전을 개최한다. 이 대회는 강호제일인을 가리는 단순한 무예 대결이 아니다. 이 대회는… 심연에 대항할 마지막 희망을 찾기 위한 것이다.”

진무영은 맹주의 말을 들으며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마지막 희망이라. 정말 그럴까?

맹주의 시선이 연무대 뒤편의 거대한 석상을 향했다.
그리고 그는 끔찍한 진실을 고했다.

“천하비무대전의 진정한 목적은… 이 심연의 핵과 공명할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승자는… 심연의 힘을 받아들여, 이 강호를… 구원해야 한다.”

정적. 깊은 정적.
무림인들의 얼굴에 경악과 공포가 스쳤다.
심연의 힘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자멸이었다.
맹주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알았다.

진무영은 석상을 다시 바라보았다.
심연의 핵.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기괴한 존재.
그것과 공명하는 자.
그것은 곧 심연의 부름에 응답하는 자를 의미했다.
구원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심연의 심장이 될 것인가.

진무영의 낡은 검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이 대결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강호의 마지막 영광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심연의 심연인가.
대회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