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혁은 뼈대만 남은 도시의 잔해 속을 유령처럼 움직였다. 한때 번화했던 상업 지구는 이제 먼지와 썩은 냄새,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금속성의 비릿한 악취로 가득했다. 3년. 세상이 끝장난 지 3년, 그가 그림자가 된 지 3년. 그리고 민준이 그의 운명에 쐐기를 박았다고 생각했던 그날로부터 정확히 3년이었다.
왼손에는 녹슨 철근을 꽉 쥐고 있었다. 거친 끝은 살벌하게 갈려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굳은살 박힌 오른손에는 낡은 식당 메뉴판 뒷면에 대충 그려진 지도가 들려 있었다. 민준의 새로운 ‘왕국’은 옛 시청 복합 건물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이었다. 쥐새끼 왕에게 걸맞은 왕좌로군.
무너진 백화점 건물에서 걸쭉한 신음소리가 울렸다. 지혁은 얼어붙어 금이 간 콘크리트 기둥에 몸을 바짝 붙였다. 그림자와 한 몸이 된 듯했다. 찢어진 양복을 너덜너덜한 깃발처럼 휘날리는 ‘걷는 시체’ 하나가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한때 인간이었을 공허한 눈은 이제 끝없는 굶주림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혁은 시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후, 다시 움직였다. 숨은 얕고 통제되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민준이 알던 물렁하고 순진한 바보가 아니었다.
*민준. 네가 그랬잖아. 우리 같이 살아남자고. 끝까지 함께라고.* 과거의 유령 같은 메아리가 얼음 같은 분노의 새로운 파도를 불러왔다. 그 기억은 곪아 터진 상처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날, 그들은 폐쇄된 지하 주차장에 갇혀 있었다. 바깥은 지옥이었고, 안은 그들의 마지막 은신처였다. 적어도 민준이 그 문을 잠그기 전까지는.
“지혁아! 잠깐만 막아줘! 내가 이걸 고칠게!” 민준의 목소리는 절박했지만, 지혁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금속이 긁히는 소리는 너무나 분명했다. 쾅! 철문이 잠기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지혁이 뒤돌아봤을 때, 민준은 이미 강화 유리 너머에서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그들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살기 위한 아우성을 질러대며.
“미안하다, 지혁아. 하지만 우리 모두 살 수는 없어.” 민준의 눈빛은 차가웠다. “네 희생 덕분에, 내가 살 수 있게 됐어. 고맙다, 친구.”
그리고 민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혁은 혼자였다. 철문 건너편에서 쿵, 쿵, 쿵, 쿵. 육중한 좀비 떼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비규환처럼 들렸다. 그 순간, 지혁은 죽음보다 더 깊은 절망과 배신감을 느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서… 복수해야 했다.
지혁은 시청 복합 건물에 도착했다. 뒤집힌 버스, 고철, 면도날 철사 같은 임시 바리케이드로 요새화되어 있었다. 감시탑의 깜빡이는 불빛은 순찰대가 활동 중임을 나타냈다. 민준은 제법 잘 해먹고 있었군. 물론 그랬겠지.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데 능숙했으니까.
그는 취약한 지점을 찾아냈다. 덤불에 부분적으로 가려져 철사 밀도가 덜한 울타리 구간이었다. 속삭이듯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안에는 작고 자급자족적인 공동체가 있었다. 몇몇 생존자들이 불 주위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핼쑥했지만, 눈에는 희망의 불꽃이 일렁였다. 아마도 민준이 만들어낸 희망이겠지.
그는 주 로비, 지금은 조악한 회의실로 개조된 곳에서 민준을 발견했다. 민준은 재활용한 의자 더미에 앉아 십여 명의 사람들에게 연설하고 있었다. 지혁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얼굴은 살이 붙었고, 옷은 더 깨끗했다. 그의 ‘성공’을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함께 이 지옥을 이겨낼 거야! 나는 너희들을 지킬 것이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어!” 민준의 목소리는 허세 가득한 자신감으로 울려 퍼졌다.
지혁은 차가운 미소가 입술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지킬 것이라고? 누구를? 너 자신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버릴 놈이?*
그는 철근을 뽑아 들었다. 익숙한 무게감이 안정을 주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녹슨 파이프를 든 젊은 경비병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하품하느라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혁은 철근을 경비병의 관자놀이에 내리쳤다. 둔탁한 쿵 소리, 비명은 없었다. 시체는 소리 없이 쓰러졌다.
지혁은 로비의 육중한 이중문을 밀어 열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불빛이 그의 핼쑥하고 흉터투성이 얼굴을 흔들리며 비췄다.
민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애써 지었던 미소가 얼어붙었다. “지… 지혁? 네가 어떻게…?”
“살아남았지.” 지혁의 목소리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칼날처럼 침묵을 갈랐다. “네가 버린 덕분에.”
민준의 추종자 몇 명이 불안하게 서툰 무기를 움켜쥐고 일어섰다.
“무슨 소리야, 민준? 아는 사람이야?” 한 여자가 물었다.
민준은 재빨리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의 옛 카리스마가 스치듯 돌아왔다. “아니야! 저 녀석은 미친 놈이야! 위험해! 다들 조심해!”
지혁은 천천히 민준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무시했다. 그의 눈은 오직 목표물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미쳤다고? 날 버리고 간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지혁은 민준에게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날, 네가 문을 잠갔을 때, 난 죽는 줄 알았어. 하지만 난 살아남았고, 이제 네가 죽을 차례야.”
민준은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 그의 가짜 허세는 절박한 공포로 바뀌어 있었다. “기… 기다려, 지혁아! 오해야! 난 널 구하려고 했던 거야! 내가 도망쳐서, 더 많은 사람을…!”
“헛소리 집어치워!” 지혁이 으르렁거렸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네 눈빛을 내가 잊을 줄 알았어? 네가 문 너머에서 날 보던 그 차가운 눈빛을! 네가 살기 위해, 날 버렸잖아!”
민준의 추종자들은 이제 완전히 경계 태세였다. 몇몇은 무기를 들었지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혁은 그들의 지도자 과거에서 온 망령 같았고, 그의 말에는 오싹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닥쳐! 저 자식 말 믿지 마! 그는 정신 나간 살인마야!” 민준이 지혁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를 처치해!”
한 남자, 더 용감하거나 더 충성스러운 자가 녹슨 마체테를 들고 지혁에게 달려들었다. 지혁은 생존으로 단련된 잔혹한 효율성으로 그를 맞이했다. 철근이 휘둘러져 남자의 머리에 부딪히며 소름 끼치는 으드득 소리를 냈다. 그는 돌처럼 쓰러졌다.
다른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지혁의 차갑고 치명적인 정교함을 목격한 것이다.
지혁은 민준에게 한 발 더 다가섰다. 그의 철근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네가 날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때, 난 더 이상 잃을 게 없었어. 그리고 그게… 나를 만들었지.” 그는 철근을 들어 올렸고, 날카로운 끝이 민준의 목을 겨눴다. “이제 끝내러 왔다, 민준아.”
민준은 목이 메인 비명을 질렀다. 의자에 걸려 넘어지며 더 물러나려 애썼다.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더듬었다. 작고 낡은 권총이었다. 하지만 지혁이 더 빨랐다. 원시적인 힘이 솟구치면서, 지혁은 거리를 좁혔고, 그의 철근이 맹렬하게 내리꽂혔다.
철근은 소름 끼치는 퍽 소리와 함께 닿았다. 민준의 머리가 아닌 팔에 박혔다. 뼈가 부서지며 권총이 바닥을 굴러갔다. 민준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감 넘치던 지도자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먼, 찢어질 듯 애처로운 소리였다.
“네가 사람들을 이용하는 건 여전하구나.” 지혁이 침을 뱉듯 말했다. 권총을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니야.”
민준은 바닥에서 몸부림치며 부러진 팔을 움켜쥐었다. 눈물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혁아, 제발…!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그의 울음소리는 애처로웠고, 이제 침묵에 잠긴 홀에 메아리쳤다. 민준의 추종자들은 공포와 잔혹한 정의의 일격에 마비된 채 지켜보고 있었다.
지혁은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였던 남자를 내려다봤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배신했던 남자. 이제는 지혁이 걷는 시체들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걸했던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남자.
지혁의 눈에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오직 차갑고 단단한 만족감만이 번뜩였다.
“늦었어, 민준아.”
그는 철근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내리쳤다. 빠르고, 단호한 움직임이었다.
축축한 둔탁한 소리.
침묵.
흔들리는 불빛이 길고 춤추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혁은 쓰러진 민준의 형태 위에 서 있었다. 그의 가슴은 격렬하게 들썩였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민준의 깨끗한 재킷에 철근을 닦아낸 후, 멍하니 서 있는 생존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충격, 그리고 이상하게도 서서히 떠오르는 이해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너희를 지킬 수 없었어.” 지혁의 목소리는 쉬었지만, 흔들림 없었다.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복수는 완료되었다. 쓰라림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희미한 통증처럼, 증오의 불길은 마침내, 폭력적으로, 꺼졌다.
그는 침묵하는 생존자들을 지나, 쓰러진 경비병의 시체를 지나, 다시 황량한 도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밤은 아직 젊었다. 걷는 시체들은 여전히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혁은 더 이상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었다. 그는 빚을 청산한 생존자였다. 그는 스모그로 자욱한 하늘의 창백한 구슬, 달을 올려다봤다. 세상은 여전히 폐허였지만, 그의 폐허 조각 하나는 구원받았다. 그는 자신의 괴물을 마주했고, 반대편으로 나왔다.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무게에서 해방되었다.
그는 그림자 속으로 다시 녹아들었다. 부서진 세상의 외로운 늑대, 복수의 맛은 그의 혀끝에서 달콤하면서도 쓰렸다.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배신한 자가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