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챕터 1: 잿빛 폐허의 속삭임

칙칙한 모래바람이 폐허가 된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강철과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삐져나온 붉은 녹물이 핏물처럼 흘러내렸고, 간간이 무너져 내리는 건물 파편 소리가 정적을 찢어발겼다. 강현은 낡은 방독면 너머로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좁히며 바닥을 살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식량 수급에 실패한 탓에, 등 뒤에 짊어진 배낭은 뼈대만 남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젠장, 또 아무것도 없어.”

건조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방독면 안에서 낮게 울렸다. 가상현실 속 시뮬레이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적인 허기와 갈증이 그의 위장을 쥐어짰다. 이곳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새벽의 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 세계는 종말 그 자체였다. 시스템 메시지는 언제나 차갑고 무심했다.

**[생존자의 남은 식량: 0.5일 치]**
**[생존자의 남은 수분: 0.3일 치]**
**[신체 상태: 허약. 스태미나 회복 속도 30% 감소.]**

이따위 메시지는 이제 지긋지긋했다. 강현은 낡은 상점의 깨진 유리창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곰팡이가 피어오른 벽지, 부서진 진열대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사람들이 북적였을 공간은 이제 죽은 듯 고요했다. 그는 손전등을 켜고 구석구석을 비췄다. 작은 통조림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오늘 밤은 살아남을 수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조각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강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시야 한쪽의 미니맵에 붉은 점이 깜빡였다. 하나가 아니다. 여러 마리.

“하필 지금이냐….”

이를 악물며 허리춤의 녹슨 단검을 움켜쥐었다. 손잡이에 감아놓은 낡은 천 조각이 땀에 축축했다. 고요한 정적을 깨고, 깊은 곳에서부터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폐허의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짐승의 눈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변종 들개’ 무리였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집에 썩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핏빛으로 물든 송곳니가 기괴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녀석들은 폐허가 된 세상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한 마리가 바닥을 박차고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변종 들개 Lv. 12]**

강현은 몸을 낮춰 녀석의 돌진을 피했다. 썩어가는 체취가 코를 찔렀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뒤따라온 다른 들개들이 으르렁거렸다. 단검을 든 손에 힘을 주며 강현은 재빨리 반격했다. 칼날이 녀석의 옆구리를 스쳤지만, 녀석의 끈질긴 생명력은 상처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크윽!”

들개 한 마리가 그의 다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강현은 간발의 차이로 발을 빼내며 뒤로 물러났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회피 성공!]**
**[스태미나가 소모됩니다.]**

겨우 세 마리였다. 하지만 허약해진 몸 상태로는 버거운 상대였다. 강현은 주변을 살폈다. 부서진 진열대, 쓰러진 선반. 저것들을 이용해야 했다. 그는 진열대 뒤로 몸을 숨겼다. 들개들이 진열대를 향해 달려들자, 강현은 순식간에 몸을 날려 한 마리의 목을 단검으로 베었다.

**[변종 들개 처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피가 뿜어져 나오며 녀석이 고통스럽게 신음하다 쓰러졌다. 하지만 피 냄새는 남은 들개들을 더욱 미치게 만들 뿐이었다. 녀석들은 미친 듯이 진열대를 물어뜯고 발톱으로 긁어댔다. 강현은 간신히 버티며 다음 기회를 노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긁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선반 위로 올라가 도약! 강현은 마지막 남은 들개 두 마리 중 한 마리의 등에 올라탔다. 녀석은 몸을 흔들며 그를 떨어뜨리려 발악했다. 강현은 단검을 녀석의 머리에 꽂아 넣었다.

**[치명타!]**
**[변종 들개 처치!]**

이제 한 마리 남았다. 녀석은 동료들의 시체에서 풍기는 피 냄새에 취한 듯, 제정신이 아닌 눈으로 강현을 노려봤다. 으르렁거리던 녀석은 그대로 돌진해왔다. 강현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단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스킬 발동: 긴급 회피]**
**[스킬 발동: 정밀 타격]**

몸이 옆으로 획 돌아가며 들개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동시에 단검이 녀석의 턱밑을 파고들었다. ‘퀘에엑!’ 비명과 함께 들개가 쓰러졌다. 강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신이 땀으로 축축했다. 손에서 단검이 떨어져 ‘딸랑’ 소리를 냈다.

**[변종 들개 무리 섬멸!]**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약탈자의 습격]**
**[보상: 녹슨 통조림 캔 (고기) x1, 정수된 물병 x1]**

“젠장, 이런 걸로 보상이라니.”

강현은 허탈하게 웃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 보상이 겨우 통조림 하나와 물병 하나라니. 하지만 이 폐허에서 이 정도면 횡재나 다름없었다. 그는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전투로 인해 부서진 진열대 안쪽을 살폈다. 혹시 모른다. 시스템 보상 외에 숨겨진 것이 있을지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진열대 가장 안쪽,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낡은 서랍이었다. 손때 묻은 나무 서랍을 잡아당기자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서랍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했지만, 강현은 본능적으로 가장 안쪽을 더듬었다. 그리고 손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걸렸다.

꺼내보니, 손바닥만 한 금속 상자였다. 겉은 녹슬고 닳아 있었지만, 왠지 모를 무게감이 느껴졌다.

**[낡은 휴대용 발전기 부품]**
**[등급: 희귀]**
**[설명: 한때 잊혔던 기술로 만들어진 휴대용 발전기의 핵심 부품. 이 부품이 있다면 낡은 발전기를 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발전기 부품?”

강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희귀 등급 아이템! 이것만 있다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장치를 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폐허에서 전력은 곧 생존이었다. 정수된 물병을 주워 배낭에 넣고, 녹슨 통조림 캔과 함께 발전기 부품을 조심스럽게 챙겼다.

배낭은 여전히 가벼웠지만, 희귀 등급 아이템 하나가 주는 만족감은 그 어떤 무거운 짐보다 컸다. 강현은 상점 밖으로 나왔다. 잿빛 하늘 아래, 폐허는 여전히 고요하고 위협적이었다.

그는 멀리 떨어진 한 건물을 바라봤다. 낡은 공장 굴뚝이 뿌옇게 보이는 스모그 너머로 희미하게 솟아 있었다. 저곳에 가면, 이 부품을 수리할 수 있는 작업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더 위험한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지도.

강현은 다시 방독면을 고쳐 썼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폐허의 모래가 신발에 밟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의 뇌리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 목표를 향해,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잿빛 폐허의 속삭임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