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의 심장은 언제나 쿵, 쿵, 쿵, 규칙적인 박동으로 뛰었다. 거대한 증기기관들이 내뿜는 흰 연기가 하늘을 수놓고, 금빛 황동과 흑철로 지어진 마천루들은 아침 햇살에 기묘한 빛을 반사했다. 하늘로는 거대한 비행선들이 묵직한 프로펠러 소리를 울리며 떠다녔고, 지상에서는 태엽 장치로 움직이는 자동차들이 삐걱거리는 금속음과 함께 길을 따라 질주했다. 이 모든 소음과 움직임이 도시의 살아있는 숨결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 거대한 심장부, 낡고도 웅장한 아파트의 12층에 현우가 살고 있었다. 그의 집은 도시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벽마다 박혀 있는 두툼한 황동 파이프들은 증기로 난방되는 이 도시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었고, 거실 한쪽 벽에는 고풍스러운 압력 게이지가 항상 붉은 바늘을 흔들며 내부의 압력을 표시하고 있었다. 딱히 필요 없었지만, 이 빌딩의 모든 집에 있는 것이었다. 현우는 익숙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어제와 같았고, 그의 일상도 매한가지였다.
따뜻한 물을 끓이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현우의 주방은 큼지막한 황동 손잡이가 달린 나무 찬장과 반짝이는 구리 주전자, 그리고 압력식으로 작동하는 커피 추출기로 채워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낡은 시계 부품처럼 어딘가에서 조용히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구리 주전자에 물을 채워 인덕션 위에 올렸다. 인덕션은 전기식이었지만, 그 아래로는 얇은 증기 파이프가 지나가 주방 전체에 훈훈한 온기를 더했다.
주전자가 서서히 끓어오르며 작은 증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현우는 멍하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쉭, 쉭, 쉭. 규칙적이던 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감지된 건 바로 그때였다. 마치 주전자가 아니라, 주전자 아래의 파이프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현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전자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낡은 증기 파이프는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새는 곳은 없었다. 착각이었을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커피를 내렸다. 진한 커피 향이 증기의 훈기와 섞여 아파트 안에 퍼졌다. 잔을 들고 거실로 나온 현우는 습관처럼 창밖을 내다봤다. 거대한 기어와 톱니바퀴 장식으로 뒤덮인 중앙 시계탑은 언제나처럼 정확한 시각을 가리키며 묵직한 태엽 소리를 멀리까지 울렸다.
문득, 현우는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휙, 하고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가벼운 바람. 그는 몸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가 아끼는 태엽 장치 오르골이 놓인 선반 위, 작은 태엽 인형이 고개를 미세하게 움직인 것 같았다. 분명히 멈춰 있었는데.
“내가 피곤한가 보군.” 현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요 며칠 밤샘 작업을 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는 다시 커피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때였다. 쨍그랑!
주방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방으로 달려가 보니,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컵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인덕션 아래의 증기 파이프 옆에 흩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현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바람이 불었을 리도 없고,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아니었다. 컵은 싱크대 가장 안쪽에 놓여 있었고, 그 위치에서 저절로 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했다. 더욱이, 떨어진 모양새가 마치 누군가 손으로 밀어 떨어뜨린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거실 벽에 걸린 압력 게이지의 바늘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붉은 바늘은 최대치를 향해 격렬하게 흔들렸고, 동시에 벽 속 파이프에서 ‘쉬이익-!’ 하는 거친 증기 분출음이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숨을 헐떡이는 소리 같았다.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벽 속에서 울리는 증기음은 점차 커져, 아파트 전체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낡은 황동 파이프들이 ‘끼이이잉’ 하는 비명을 질렀고, 선반 위의 작은 태엽 인형은 이제 누가 봐도 분명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 작은 태엽 인형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거대한 증기 소음 속에서도 섬뜩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누… 누구야?”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방금 깨진 컵 조각들이 흩어져 있던 바로 그 자리, 인덕션 아래의 파이프에서 하얀 증기가 미세하게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증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형체를 갖추려는 듯 일렁였고, 이내 희미하게나마 사람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현우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현실이 아니었다. 비현실적이고, 기괴했다. 증기로 이루어진 형상은 마치 현우를 바라보는 듯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 형상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이 아파트 전체를 감싸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파트 전체의 모든 전등이 일제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세상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고, 오직 창밖 도시의 불빛과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증기 형상의 빛만이 남았다. 동시에, 현우가 켠 적 없는 거실의 낡은 가스등이 ‘쉬익’ 소리를 내며 스스로 불을 밝혔다.
푸른빛을 내는 가스등 아래, 증기로 이루어진 존재는 현우를 향해 느릿하게 손을 뻗는 듯했다.
현우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은 메트로폴리스의 거대한 증기기관보다 더 격렬하게 쿵쾅거렸다.
이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지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낡은 태엽들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 밤은, 길어질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