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회색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잿빛 먼지를 머금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으로 가루가 스며드는 것 같아 기침이 터져 나왔다. 진우는 허물어져 가는 고층 건물 잔해 옆에 쪼그려 앉아 망가진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3시. 해가 완전히 지기까지는 아직 몇 시간 남았지만, 이곳 폐허는 밤이 되면 지옥으로 변한다.

식량은 바닥났고, 생수는 어제 아침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셨다. 목구멍이 바싹 말라 마치 사포로 문지른 듯 거칠었다. 그는 낡은 배낭을 고쳐 메고 옆구리에 찬 쇠 파이프를 단단히 잡았다. 이젠 물을 찾지 못하면 죽는다.

“젠장, 물….”

진우는 낮게 욕설을 뱉었다. 이곳 ‘구도심’은 그나마 폐기물이 덜 쌓여있고, 간간히 생존자들의 흔적이나 버려진 보급품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생존자들도 많고, 놈들의 사냥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사람의 기척을 피했다.

어제, 그는 어렴풋한 소문을 들었다. 도시 외곽, 재앙 이전의 지하철 역 깊숙한 곳에 ‘지하 수로’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래된 하수도 시설과 연결되어 아직도 물이 흐른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진우는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희미한 희망이라도 잡아야 했다.

녹슨 버스 잔해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서자,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놈들의 흔적이었다. 진우는 몸을 낮춰 숨죽인 채 주위를 살폈다. 오래된 상가 건물들의 벽면은 검붉은 곰팡이와 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내부를 훑어보니, 폐허가 된 지 한참이 지나 생존자들이 들렀다 간 흔적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위험하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건, 안에 놈들이 보초를 서고 있거나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니까.

“크르르….”

낮고 거친 울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진우는 순간적으로 몸을 벽에 바짝 붙이고 숨을 멈췄다. 등골이 오싹했다. 놈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낡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틈을 타 진우는 벽에 붙어 천천히 움직였다. 저 멀리, 거대한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가 뒤엉킨 채 땅속으로 꺼져가는 듯한 구조물이 보였다. 재앙 이전에 존재했던 지하철역 입구일 터였다. 그는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한참을 조심스럽게 기어가듯 이동하자, 드디어 지하철역 입구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었고, 그 아래로는 칠흑 같은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재앙으로 인해 파괴된 입구는 이제 거대한 동굴처럼 변해있었다.

“젠장, 이건 뭐….”

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안을 살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천장에서는 녹슨 쇠사슬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축 늘어져 있었다. 퀴퀴하고 차가운 공기가 지하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숨을 쉬는 듯한 음습한 기운이었다.

그는 낡은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건전지 잔량은 얼마 남지 않았다. 손전등을 켜자, 희미한 빛이 주위를 비췄다. 콘크리트 바닥은 갈라지고 무너져 있었고, 그 아래로 알 수 없는 깊이의 구덩이가 군데군데 보였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뎠다. 신발 밑창에 밟히는 파편들이 바스락거렸다. 지하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가팔랐고, 돌무더기들로 막혀 있었다. 그는 쇠 파이프를 이용해 돌을 치우고, 가파른 틈새를 기어 내려갔다.

점점 더 깊이 내려갈수록 주변의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손전등 불빛만이 유일한 생명선처럼 느껴졌다.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듯 진우를 짓눌렀다. 벽에서는 축축한 기운이 느껴졌고, 낯선 소리들이 메아리쳤다. 멀리서, 똑, 똑, 하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있다는 증거인가?’

진우는 한 줄기 희망을 붙잡았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지하 수로를 독점하려는 다른 생존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이 진우의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손전등을 재빨리 한쪽 벽면으로 비췄다. 벽에 녹슨 철제 문이 있었다. 재앙 이전에 사용되던 지하 통로의 문인 것 같았다. 문틈으로 희미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했다.

진우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차갑고 끈적거리는 녹이 손에 묻어났다. 힘을 주어 당기자,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순간, 진우의 코를 찌르는 악취가 밀려왔다. 썩은 냄새, 곰팡이 냄새, 그리고… 피 냄새.

문 너머는 거대한 지하 통로였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양쪽 벽면에는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바닥에는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끈적한 검은 액체가 고여 있었고, 그 액체 위로 수많은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시체들은 대부분 놈들에게 찢긴 인간의 잔해였지만, 그 사이에는 기괴한 형태의 변이체들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시체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붉은 눈동자가 진우를 향해 일제히 번뜩였다. 동시에, 진우의 발밑을 덮고 있던 검은 액체 속에서 기괴한 촉수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쇠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이곳은 단순한 지하 수로가 아니었다. 거대한 생명체가 도사리고 있는 던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던전의 한가운데로 발을 들여놓은 참이었다.

수많은 촉수들이 사방에서 진우를 향해 돌진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쇠 파이프를 휘둘렀지만, 그 숫자는 너무나 많았다. 살아남아야 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진우는 검은 액체 속에서 솟아오르는 끔찍한 존재들을 바라보며, 절망과 함께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