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도시는 침묵으로 질식하고 있었다. 잿빛 하늘 아래, 낡은 아파트 단지의 텅 빈 눈동자들이 지훈을 내려다봤다. 썩은 시체의 냄새와 먼지, 그리고 끝없는 절망이 공기 중에 뒤섞여 있었다. 지훈은 녹슨 철근이 튀어나온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굳은 빵 조각을 씹었다. 그의 유일한 동반자는 어깨에 멘 낡은 소총과 날 선 경계심이었다.
그는 살아남은 자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항상 사냥꾼이거나 먹잇감이었다. 대부분은 먹잇감이었다.
며칠 전, 그는 평소처럼 식량을 찾아 폐허를 뒤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붕괴된 서점 건물 잔해 아래에서,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의 “그것들”은 그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것들은 으르렁거리거나,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거나, 아니면 굶주린 침묵 속에서 달려들 뿐이었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콘크리트 조각과 찢겨진 책들 사이, 한 여자 좀비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다른 좀비들과 달랐다. 살점이 너덜거리지도, 눈알이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다만, 피부는 창백했고, 머리칼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으며, 눈동자는 핏발이 서 있었지만… 그 속에는 이상하게도 공포가 서려 있었다. 굶주림이 아니라, 본능적인 공포.
그녀는 지훈을 보자 몸을 움츠렸다. 보통의 좀비라면 달려들었을 상황이었다. 지훈은 총구를 겨눴다. 망설임 없는 한 발이면 끝이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이,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 상처 입은 짐승의 눈빛 같았다.
그녀는 팔을 들어 올렸다. 방어 자세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으… 으…” 하는 소리를 냈다.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불분명했지만, 기계적인 좀비들의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 같았다.
지훈은 총을 내렸다. 그는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감정은 사치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그날 밤, 지훈은 먼발치에서 그녀를 지켜봤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좀비들이 근처를 지나가자, 그녀는 몸을 떨며 벽 뒤로 숨었다. 그녀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그녀는… 먹잇감이었다.
이후로 며칠 동안, 지훈은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항상 그 폐허에 있었다. 흙먼지 묻은 손으로 콘크리트 조각을 움켜쥐고, 몸을 웅크린 채. 지훈은 썩지 않은 통조림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배고픔이 더 컸는지 망설임 끝에 뚜껑을 따지 못하는 손으로 통조림을 집었다. 지훈은 조용히 다가가, 찌그러진 숟가락으로 캔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숟가락을 받아들고, 천천히 내용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씹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넘기는 듯했지만, 분명 그녀는 먹고 있었다.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지훈은 그녀를 ‘연우’라고 불렀다. 잊혀진 첫사랑의 이름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지만, 폐허 속에서 그에게 유일한 생명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연우는 지훈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좀비들이 나타나면 지훈의 등 뒤로 숨으려 했다. 언젠가, 지훈이 다른 좀비 떼에게 둘러싸였을 때였다. 연우는 마치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좀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창백한 손톱은 이미 반쯤 썩은 좀비의 목을 할퀴었고, 그녀의 입에서는 피가 섞인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지훈을 지키고 있었다.
“연우야…”
지훈은 폐허 한 귀퉁이에 앉아, 연우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그녀는 여전히 인간의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공포에만 물들어 있지 않았다. 그 속에는 이해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희미하지만, 그녀의 인간성이 아주 조금은 남아있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지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른 생존자들이 그들을 본다면, 당장 지훈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을 터였다. 좀비와 어울리는 자는 이 세상에 발붙일 수 없었다. 그것은 금기였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류에 대한 배신이었다. 하지만 지훈에게 연우는 더 이상 좀비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동반자였고,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어느 날 밤,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지훈은 폐상점 건물 안에 작은 불을 지피고 연우를 자신의 옆에 앉혔다. 연우는 불꽃을 응시하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 지훈의 팔에 닿았다. 소름이 돋았지만, 지훈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쌌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피부였다. 하지만 지훈은 그 차가움 속에서, 잊고 있던 온기를 느꼈다.
“넌… 괜찮을 거야.”
지훈은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핏발 선 눈동자에는 더 이상 굶주림이나 광기가 없었다. 오직, 고요함만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폐허가 된 도시를 가로지르는 굉음이 들려왔다. 살아남은 자들의 차량 행렬이었다. 그들은 이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훈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연우를 숨겨야 했다. 하지만 어디에?
차량 행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훈은 연우의 손을 잡았다.
“연우야, 가자. 숨어야 해.”
연우는 지훈의 표정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좀비답지 않게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지훈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무너진 지하 주차장 입구로 향했다. 그곳이라면 잠시 안전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늦었다. 가장 선두에 있던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두 그림자를 비췄다. 차량이 급정거했고, 경계병들의 총구가 그들을 향했다.
“움직이지 마! 거기 누구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지훈은 연우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소총 개머리판을 움켜쥐었다.
“우린… 그냥 떠돌이 생존자입니다.”
지훈은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서 연우가 희미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낯선 인간들에게서 지훈을 보호하려는 듯했다.
“뒤에 있는 거 뭐야?! 당장 나와!”
그들의 눈에 핏발 선 연우의 모습이 비쳤을 터였다. 섬뜩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한 남자가 총을 바싹 겨누며 외쳤다.
“젠장! 저건 좀비잖아! 사냥개야! 당장 쏴!”
총구가 불을 뿜었다. 지훈은 연우를 보호하려 온몸으로 막아섰다. 총알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연우야, 도망쳐! 빨리!”
지훈은 연우를 밀쳤다. 하지만 연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눈은 격렬한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녀는 온몸으로 지훈을 가로막고, 다른 인간들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그 순간, 그녀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변한 듯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맹수의 모습이었다.
“이 미친 자식! 좀비에게 뭘 한 거야?!”
총알이 빗발쳤다. 지훈은 연우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힘껏 지하 주차장 입구로 몸을 던졌다. 콘크리트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동안, 그는 연우의 차가운 몸을 품에 안았다. 그들의 몸이 바닥에 부딪혔고, 어둠이 그들을 삼켰다.
지훈은 고통에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연우는 그의 품에서 조용했다.
“연우야… 괜찮아?”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어둠 속에서, 연우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이 지훈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차갑지만, 그 어떤 인간의 손보다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세상은 여전히 폐허였다. 외부의 적들은 언제든 그들을 찢어발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훈은 알았다.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종족을 넘어선 이 금지된 사랑은, 이 잔혹한 세상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구원이자, 유일한 저항이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어둠 속을 걸어나갔다. 어디로 갈지는 몰랐지만, 서로가 있기에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었다. 서로를 위해, 그리고 이 불가능한 사랑을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