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무겁게 치솟았다. 지훈은 식은땀이 흥건한 등에 불쾌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천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뻥 뚫린 콘크리트 잔해와 뒤틀린 철근의 추악한 조합이었다. 코를 찌르는 퀴퀴한 흙먼지와 부패한 냄새,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쇠 비린내가 섞인 공기가 폐 속을 파고들었다.
“여… 여기는 어디야?”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온몸의 관절에서 삐걱거리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겨우 상체를 일으킨 그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넋을 잃었다.
그가 누워 있던 곳은 마치 거대한 폭격을 맞은 듯한 폐허 속, 한때 건물이었을 잔해의 비스듬한 틈바구니였다. 사방은 무너진 빌딩의 뼈대와 뒤틀린 금속 조각들로 가득했다. 시멘트 가루와 재가 뒤섞인 잿빛 하늘은 언제나 어슴푸레한 황혼 같았다. 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들은 앙상한 해골처럼 서 있었고, 그 사이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부서져 내린 듯한 흉터가 선명했다. 그의 기억 속 서울은,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지훈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져 보았다. 거칠고 푸석한 피부, 턱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그는 분명 어제 저녁 퇴근 후 집에서 라면을 먹고 웹툰을 보다가 잠들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수십 년을 풍찬노숙한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꿈인가…?”
뺨을 꼬집었다. 아팠다. 지독하게. 꿈이 아니었다. 혼란과 공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왜 내가 여기에? 그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이전의 일상만이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
목이 말랐다. 미친 듯이. 바짝 마른 목구멍은 사막 같았다. 물! 물을 찾아야 해. 본능적인 외침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 버려진 것은 온통 쓸모없는 파편들이었다. 녹슨 철근 조각, 깨진 유리병, 알아볼 수 없는 기계 부품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잔해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발밑은 온통 돌무더기와 날카로운 파편들로 위태로웠다. 잿빛 하늘 아래, 바람은 먼지와 부서진 것들의 잔해를 실어 날랐다. 멀리서 둔탁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쿠웅… 콰직!’ 마치 거대한 짐승이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훈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던 중, 그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물통… 은 아니었고, 녹슬고 찌그러진 양동이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들여다보았지만, 바닥에 말라붙은 흙탕물 자국만이 보일 뿐이었다. 실망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절망에 빠지려던 찰나, 그의 귀에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아주 희미했지만, 분명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무너진 빌딩의 지하로 통하는 듯한 입구였다. 주변은 온통 어둠이었지만, 물에 대한 갈증은 공포마저 잊게 했다.
조심스럽게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그를 감쌌다. 코끝에 흙과 돌 냄새 외에 희미하게 축축한 이끼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나아가자, 이내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천장의 갈라진 틈새로 스며드는 빛이었다. 그 아래, 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물줄기 아래, 작은 양철 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훈은 전속력으로 달려가 컵을 움켜쥐었다. 물은 더럽고 탁했지만, 지금 그에게는 생명수와 같았다. 그는 컵을 기울여 입으로 가져갔다. 흙냄새와 비릿한 쇠 맛이 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꿀꺽꿀꺽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물줄기는 타오르던 목마름을 진정시켰다. 두 잔, 세 잔… 한참을 마시고 나서야 그는 컵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살았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자가 그의 시야에 잡혔다. 본능적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재빨리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좁은 틈새로 내리쬐는 빛 덕분에 어둠 속의 움직임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림자는 작았다. 아이였다. 지저분한 옷을 입은 채 웅크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깡마른 팔다리, 푹 꺼진 볼.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혹시 죽은 건가? 지훈은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다가갔다.
“저기…”
지훈의 목소리에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동그란 눈은 토끼처럼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 안에 날카로운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흙먼지로 뒤덮인 얼굴이었지만, 또렷한 눈빛은 가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지훈을 노려보았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나는… 길을 잃었어. 혹시 너는 이 주변에 대해 좀 아니?”
소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저 지훈의 손에 들린 양철 컵을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컵 안에는 아직 물이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지훈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컵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아이도 목마를 것이다.
“물 마실래?”
지훈은 조심스럽게 컵을 내밀었다. 소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갈증은 더 강한 듯했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컵을 받아들었다. 두 손으로 컵을 든 채 조심스럽게 물을 마셨다. 한 모금, 두 모금. 갈증이 해소되는 듯 깊은 숨을 내쉬는 그녀를 보며 지훈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이 그녀의 경계심을 조금은 누그러뜨린 것 같았다. 그녀는 컵을 돌려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나…”
“유나? 네 이름이니?”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훈이라고 해. 여기는 대체 어디지?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한 거야?”
유나는 지훈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엉뚱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보듯 했다.
“아저씨… 밖에서 왔어요? ‘저 편’에서 온 건가?”
유나의 질문에 지훈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저 편’이라니?
“내가 살던 곳은 평범했어. 빌딩도 멀쩡했고, 사람들도 많았고… 지하철도 다녔고…”
유나는 지훈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멸망 이후의 세상이에요. 다 부서지고,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곳.”
괴물. 그 단어에 지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까 들었던 ‘쿠웅… 콰직!’ 소리가 떠올랐다.
“괴물… 어떤 괴물?”
“크고… 사납고…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들.”
유나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했다. 그녀에게는 이미 일상이 된 공포인 듯했다. 지훈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단순히 길을 잃은 게 아니었다. 통째로 다른 세상에 던져진 것이었다.
“이곳에 사람이 또 있니? 어떻게 살아남는 거야?”
“아무도 몰라요. 숨고, 도망치고, 운이 좋으면 먹을 걸 찾고… 햇빛이 강해지면 더 위험해져요.”
“햇빛? 해가 뜨는 건 낮 아니야?”
유나는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해는… 뜨거워서 모든 걸 태워버려요. 그래서 낮에는 모두 숨어 있어야 해요.”
지훈은 멸망 이후의 세계, 괴물, 그리고 태양조차 위험하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다. 그의 이전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아저씨,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돼요. 저 소리 들려요?”
유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어둠 속 저 멀리서 다시금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가까이 들리는 듯했다. ‘크르르릉… 콰직!’ 그리고 무언가 벽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도 들렸다.
“저건… 괴물 소리야?”
지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괴물인지 모르지만, 여기로 오고 있어요.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 해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지하 통로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어둠 속으로 손짓했다. 지훈은 아직 상황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유나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디로 가야 하는데?”
“모르겠어요. 그냥… 더 깊은 곳으로 가요. 아니면 밖으로 나가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밖은…”
유나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들은 움직여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 머무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지훈은 망설이지 않았다. 유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아까 챙겨온 녹슨 철근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무기로서는 조악했지만, 맨손보다는 나았다.
어둠 속을 헤치고 나아가자, 통로가 점차 좁아지고 복잡해졌다. 유나는 익숙한 듯 능숙하게 앞장섰다. 그녀는 작은 몸으로 틈새를 비집고, 무너진 돌무더기 위를 아슬아슬하게 뛰어넘었다. 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자신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였다.
갑자기 유나가 멈춰 섰다.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훈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희미한 긁는 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왔다. 그리고 축축하고 끈적이는 무언가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도.
“여기, 이쪽으로.”
유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무너진 벽의 작은 틈새를 가리켰다.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 만한 좁은 구멍이었다. 지훈은 재빨리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먼지와 거미줄이 그를 감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나도 곧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몸을 숨긴 직후, 거대한 그림자가 틈새 앞을 지나갔다. ‘흐읍…’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그림자는 거대하고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여러 동물의 신체가 기괴하게 뒤섞인 듯한 모습이었다. 짐승의 발톱 같은 것이 바닥을 긁고 지나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숨을 멈춘 채 잠시 기다리자, 그 그림자는 지나갔다. 멀리서 다시금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번에는 멀어지는 소리였다.
“휴…”
지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심장이 여전히 발광하듯 뛰고 있었다. 유나는 작은 몸으로 지훈의 옆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경계심으로 빛났지만,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맙다, 유나.”
지훈은 진심으로 말했다. 유나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영문도 모른 채 저 괴물에게 잡아먹혔을지도 몰랐다.
유나는 말없이 지훈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앙상하고 차가운 손이었다. 그는 유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이제 어디로 가지?”
유나는 다시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하게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낮이 오고 있어요. 빨리 숨을 곳을 찾아야 해요. 저 괴물들은… 낮보다 밤에 더 위험하지만, 햇빛도 위험하니까…”
그들은 겨우 괴물을 피했지만, 또 다른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위협에 맞서고 도망치는 과정의 연속인 듯했다. 지훈은 유나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유나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함께 이 끔찍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다음 걸음을 내딛었다. 햇빛이 더욱 강렬해지기 전에, 반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