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나 마법 대학의 본관은 언제 봐도 압도적이었다. 수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거대한 화강암 건물은 마치 살아있는 괴수처럼 웅장했고, 첨탑들은 밤하늘을 찢을 듯이 솟아 있었다. 명문 중의 명문, 마법사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그곳에 입학한 지 벌써 세 달째였다. 하지만 신입생 한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모든 것이 경이롭고, 동시에 어딘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유진은 밤늦게까지 고대 마법학 강의실에 남아 있었다. 고서들을 뒤적이며 학기말 과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오래된 종이 냄새, 잉크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풍기는 먼지 냄새가 섞인 이 공간은 낮보다 밤에 더 강렬한 생기를 띠는 듯했다. 촛불 마법으로 밝힌 책상 위, 그녀가 펼쳐 놓은 것은 ‘고대 룬 문자 해석의 오류’라는 제목의 빛바랜 두루마리였다.
“젠장,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건.”
중얼거림과 함께 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용은 난해하기 짝이 없었고, 특정 구절에 이르러서는 룬 문자 자체가 이질적으로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피로 때문이리라.
그때, 멀리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쿵, 쿵, 쿵. 불규칙적이고 둔탁한 울림이었다. 심장이 덩달아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유진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강의실은 텅 비어 있었고, 촛불 마법의 희미한 빛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또 있나?’
학원에는 본관 지하에 대규모 지하 서고가 있었다. 그곳은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서 길을 잃기 십상이었고, 심지어 일부 구역은 폐쇄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마법적 불안정성’ 때문이라고 했지만, 선배들 사이에서는 으스스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함부로 발 들이면 미쳐버린다더라”, “지하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더라”, “사라진 교수님들의 마지막 흔적이 발견된 곳이라더라” 등등.
그 소문들이 뇌리를 스치자,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유진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고대 마법학 강의실은 본관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역 중 하나였고, 지하 서고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걷자, 돌벽에서 스며 나오는 한기가 점차 강해졌다. 촛불 마법으로는 어림없는 어둠이 복도 저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쿵, 쿵. 소리는 이제 바로 아래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본관 지하 서고로 향하는 입구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작은 샛길로 향했다. 그 길은 항상 거대한 금속 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출입 금지’라는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틈새로 불길한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틈새를 통해 끔찍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바다 냄새 같기도 하고, 썩은 피 냄새 같기도 한, 역겨운 악취였다.
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여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여기 들어가면 안 돼. 위험해.’ 이성이 경고했지만, 발은 이미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끝에 손을 뻗어 금속 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굉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고, 문틈이 벌어지며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생생한 검은색이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쿵, 쿵 거리던 소리는 더욱 커졌고, 이제는 희미한 흐느낌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인간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낮고, 이질적인, 차마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발광석을 꺼내 마법으로 빛을 밝혔다. 희미한 푸른빛이 계단을 비추었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벽은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발광석의 빛이 닿는 곳 너머에서 기괴한 형태로 뒤틀린 그림자들이 흐느적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들은 벽에 새겨진 낯선 문양들과 겹쳐져,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흔들렸다.
마침내 계단이 끝났다. 발 아래는 차가운 돌바닥이 아니라, 질척하고 끈적이는 무언가였다. 빛을 아래로 비추자, 유진은 입을 틀어막았다. 거대한 동굴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했고, 사방은 기괴한 형태로 깎인 바위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동굴 중앙에 자리 잡은 그것이었다.
거대한 돌 제단.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검은색 비늘로 뒤덮인, 인간의 형태를 아득히 벗어난 무언가. 그것은 거대한 심장처럼 쿵, 쿵, 쿵 하고 뛰고 있었고, 그 박동에 맞춰 제단 주변에 피처럼 붉은 액체가 넘실거렸다. 비린내가 온몸을 감쌌다. 아니, 그건 비린내가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내뿜는 비명 같은 냄새였다.
그리고 그 심장 위, 축 늘어진 채 매달려 있는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낡은 학원 제복 조각, 그리고 길게 늘어진 은발… 사라졌다고 알려진 선배, 엘리야의 모습이었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얼굴은 해골처럼 앙상했다. 그의 몸에서 가느다란 검은 촉수들이 뻗어 나와 제단의 그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유진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소름 끼치는 진실이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르카나 마법 대학 지하에 숨겨진 것은 단순히 오래된 마법의 잔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고대의, 그리고 너무나도 끔찍한 금기였다.
그때, 제단 위의 그것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느리게, 아주 느리게, 거대한 눈꺼풀이 열렸다. 인간의 눈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연보다 깊은 검은색, 우주만큼 광활한 별빛을 담은 눈. 그 눈동자가 유진을 향했다.
그 시선은 단순한 응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끝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고, 동시에 그녀의 정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듯한 압도적인 힘이었다. 유진의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소리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 형언할 수 없는 이미지,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광기의 속삭임.
그녀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굳어버렸다. 발광석이 손에서 떨어져 질척이는 바닥에 떨어졌고, 푸른빛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잠식당했다.
아르카나 마법 대학 지하의 심연에서, 한유진은 자신이 마주한 것이 단순한 금기가 아니라, 이 세계의 질서를 위협하는, 차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그 심연에 삼켜지기 직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