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어둠이 낡은 지하실을 삼키고 있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눅진한 습기가 코끝을 찔렀다. 지독한 고요 속에서, 오직 쇠사슬이 긁히는 듯한 소리만이 가늘게 울렸다. 촛불 몇 개가 간신히 뿜어내는 희미한 불빛은 그림자를 기괴하게 늘어뜨리며, 바닥에 그려진 붉고 검은 문양들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한가운데, 녹슨 쇠 의자에 묶인 남자가 흐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태현이었다.
“일어나, 태현아.”
정적을 찢고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해서, 오히려 뼛속까지 시렸다. 서윤이었다. 서윤은 태현의 앞에 멈춰 섰다. 불빛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림자에 가려진 눈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태현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서윤… 서윤아… 제발… 제발 나 좀 풀어줘… 내가… 내가 미안해… 다 잘못했어… 제발…”
서윤은 대답 없이 낡은 나무 상자 위에 놓인 유리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병 안에는 검붉은 액체가 출렁이고 있었다. 역겹고 끈적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태현은 그 냄새에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쇠사슬이 그의 움직임을 붙잡았다.
“미안? 네가 내게 했던 짓이, 고작 ‘미안’이라는 단어로 덮일 수 있다고 생각해?” 서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지만, 그 웃음은 얼어붙은 칼날처럼 차가웠다. “너는 나를 지옥에 밀어 넣고, 그 위에서 춤을 췄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발버둥 칠 때, 넌 새로운 삶을 얻어 환희에 겨워했어. 기억나?”
태현의 몸이 경련했다. “아니… 아니야… 그건…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살아야 했잖아… 걔네가… 걔네가 나에게 시킨 거야…!”
“‘걔네’?” 서윤은 비웃었다. “그래서, 그 ‘걔네’에게 나를 제물로 바쳤다는 소리냐? 내 모든 것을 찢어발겨 바치고, 네 소원을 빌었어? 네가 얻은 그 모든 풍요가, 내 피와 살 위에서 자라났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잖아.”
서윤은 유리병의 마개를 비틀어 열었다. 안에서 피어나는 역한 기운에 태현은 토악질을 했다. 하지만 이미 속은 비어있는지, 헛구역질만 반복될 뿐이었다.
“네가 내게 했던 그 짓을, 똑같이 돌려줄게. 아니, 더 강렬하게. 더 오랫동안.” 서윤은 병을 태현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액체의 끈적한 표면에는 불빛이 비쳐 이상한 문양이 어른거렸다. “이건 네가 그 ‘걔네’에게 바쳤던 것과 같은 종류의 대가야. 이제 네가 치를 차례지.”
“안 돼! 서윤아! 제발! 살려줘!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뭘 원해? 돈? 명예? 다 줄게! 제발!” 태현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서윤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서윤은 그의 말을 비웃듯 흘려들었다. “돈? 명예? 그딴 걸 원했으면 애초에 이런 곳에 있지 않았을 거야. 내가 원하는 건… 네가 잃었던 내 모든 것을 똑같이 경험하는 것. 너의 정신이 갈가리 찢겨지고, 네 영혼이 바닥에서 기어 다니는 것을 보는 것.”
서윤은 태현의 턱을 거칠게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태현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서윤의 차가운 시선과 마주쳤다. 서윤은 병을 기울였다. 검붉은 액체가 태현의 입술에 닿았다. 태현은 몸부림쳤지만,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끈적한 액체가 그의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커헉! 끄흐으읍!”
태현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을 비틀며 발작하는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했다. 눈동자는 실핏줄로 가득 차 붉게 물들었고, 핏발 선 눈이 천장을 향해 뒤집혔다. 그의 몸이 경련하며 쇠 의자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서윤은 그 모습을 무감각하게 지켜봤다. 액체가 그의 몸속으로 완전히 흡수되자, 태현의 발작은 더욱 격렬해졌다. 그의 피부 위로 핏줄이 울퉁불퉁하게 솟아올랐고, 마치 그 아래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느껴지니? 네 몸속을 휘젓고 다니는 그 기생하는 것들이?” 서윤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네가 내게 심었던 절망의 씨앗들이, 이제 네 안에서 싹을 틔울 거야. 뼈를 갉아먹고, 신경을 갉아먹고, 영혼을 좀먹는 고통. 그게 네가 앞으로 경험할 유일한 감정일 테지.”
태현의 입에서 피거품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몸이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을 반복했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피부가 갈라지는 끔찍한 소리가 희미한 촛불 아래에서 더욱 선명하게 울렸다. 그의 눈은 이제 완전히 초점을 잃고 허공을 응시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가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 듯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이제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이, 하나씩, 아주 천천히, 네 손에서 벗겨져 나갈 거야. 네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 네게서 멀어지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거야.” 서윤은 촛불 하나를 집어 들고, 지하실의 한 구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넌 영원히 나를 기억하게 될 거야. 내가 겪었던 그 지옥을.”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촛불의 불빛은 더욱 흔들렸다. 지하실의 그림자들이 더욱 길게 늘어졌고, 태현의 몸에서 기어 나오는 듯한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점점 커졌다.
서윤은 문득 멈춰 섰다. 벽에는 낡은 종이 하나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십 년 전, 자신과 태현,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모두 웃고 있었다. 천진하고 순수했던 그들의 미소는 지금의 서윤에게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는 사진을 향해 촛불을 가져갔다. 붉은 불꽃이 사진의 가장자리를 삼키기 시작했다. 종이가 타들어가며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웃고 있는 태현의 얼굴이 불길에 휩싸여 검게 변했다.
“이젠 네 차례야, 민혁아.”
서윤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촛불은 활활 타오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하실에는 태현의 몸에서 기어 나오는 섬뜩한 소리와 썩어가는 냄새, 그리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심연의 어둠만이 남았다.
그날 밤, 도시에 불길한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복수의 칼날이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