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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도시의 심장] 제113화: 균열의 속삭임**

한밤의 도시, 콘크리트 미로 속에서 잠들지 않는 불빛들이 무수히 반짝였다. 그 빛들 중 하나, 고층 아파트 13층의 작은 창문 뒤에서 민준은 노트북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 퇴근 후에도 코드와 씨름하는 워커홀릭이었다. 자정의 고요함은 익숙했지만, 오늘 밤은 왠지 모르게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젠장, 이 에러는 또 뭐야.’

한숨을 쉬며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방금까지 테이블 한가운데 두었던 잔이 이상하게도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모서리에 가 있었다. 민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잔을 가져와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에 감돌았다. 피로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거실에서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준의 눈썹이 움찔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창문은 닫혀 있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조용한 밤이었다. 그는 의자를 돌려 거실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 잠긴 거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뭐지?”

작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피곤해서 헛들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잔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테이블 끝으로 향하는 유리잔. 민준은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잔은 그의 시선 앞에서 멈추지 않고, 기어코 바닥으로 떨어져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민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거실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누구… 누구 없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 아파트에는 민준 혼자 살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얼음장 같은 손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는 듯한 감각. 소름이 돋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휙 하고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복도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스트레스성 환각일까?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는 걸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애썼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시 서재 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흐읍, 흐읍’ 하는, 숨을 들이쉬는 듯한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숨을 참고 서재 안에 숨어 있는 것처럼.

민준은 주저했다.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확인해야 할까? 그의 본능은 도망치라고 외쳤지만,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억척스러움이 그를 서재로 이끌었다.

문을 열자, 서재 안은 한층 더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그의 노트북 화면은 꺼져 있었다. 아까 분명 켜놓았었는데. 그리고 책상 위, 그가 아끼는 펜꽂이가 쓰러져 있었다. 펜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중 하나가 테이블 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그 펜이 그의 눈앞에서 천천히,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펜을 잡고 흔드는 것처럼. 그리고는 ‘딸깍’ 하는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민준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공포가 그의 목을 틀어막았다.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그의 눈은 펜이 튀어 오른 허공에 고정되었다. 그곳에,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에,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마치 멀리 떨어진 별빛처럼, 혹은 심해의 빛처럼.

그 푸른빛은 아주 작았지만, 그 빛이 깜빡일 때마다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빛이 가장 강해지는 순간, 민준은 귓가에 속삭임 같은 것을 들었다.

*…열려라… 열어라…*

말인지 소음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불분명하고 으스스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절박하면서도 섬뜩한 의지가.

민준은 뒷걸음질 쳤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동시에 심장 깊은 곳부터 얼어붙는 듯했다. 이건 현실이 아니었다. 꿈이었다. 악몽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푸른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선명해지는 듯했다.

푸른 빛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공간의 틈이 벌어지는 것처럼. 그 틈새에서 차가운 공기가 뿜어져 나왔고, 정체 모를 먼지 같은 것이 흩날렸다. 그리고 그 틈 안쪽에서, 형언할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형태는 없었지만,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무언가였다.

*…문… 문을 열어라…*

속삭임이 이번에는 그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렸다. 마치 그의 뇌 안으로 파고든 것처럼. 민준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창문으로 향했다.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창문.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 순간, 창문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쩍, 쩍’ 하고 섬뜩한 소리를 내며 거미줄처럼 균열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그 균열 사이로 희미한 푸른빛이 다시금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 서재에서 보았던 그 빛과 똑같았다. 아니, 더 강렬하고 더 차가웠다. 마치 창문 밖의 세상이, 지금 이곳으로 침범해 들어오려는 것처럼.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거실의 깨진 유리 파편들이 다시금 튀어 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천장의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그의 아파트가, 이 평범했던 공간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산산조각 나기 직전이었다.

*…곧… 열릴 것이다…*

마지막 속삭임이 그의 영혼을 관통했다. 동시에 창문의 균열이 가장자리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처럼 ‘활짝’ 열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빛과 어둠이 뒤섞인 혼돈의 틈새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의 심연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민준은 그 광경을 마주한 채, 얼어붙은 몸으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 틈새 너머에서, 무언가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