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저녁 일곱 시. 도시의 빌딩 숲은 아직 푸르스름한 어둠에 잠기기 전이었다. 현우는 한참을 비워둔 컵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게임 길드원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던 헤드셋은 벗어놓은 지 오래였고, 침묵만이 적막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텅 빈 20평짜리 원룸 오피스텔. 현우는 그 고요함이 익숙하면서도 가끔은 섬뜩하게 느껴졌다.

“으음, 배부르다.”

트림을 작게 하고 의자를 뒤로 밀었다. 이제 슬슬 접속할 시간이다. 어차피 늦게 접속해도 친구들은 한참이나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길드 레이드 막바지. 현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었다. 그의 눈앞에 놓인 고급형 VR 기기가 검은색 광택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딸깍.

명확한 소리가 현우의 귓가에 꽂혔다. 현우는 손을 뻗다 말고 멈칫했다. 소리의 근원지는 부엌 쪽이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우의 오피스텔은 빌트인 구조라 부엌과 거실, 침실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었다. 때문에 부엌에서 나는 작은 소리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무심코 부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컵 하나가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옆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싱크대 위에서.

현우는 눈을 비볐다. 피곤한가. 요 며칠 밤샘 레이드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긴 했다. 환각이라도 보는 걸까.

“젠장, 피곤하네.”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다시 손을 뻗어 VR 기기를 잡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훨씬 더 명확한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컵이 떨어지는 소리.

이번에는 부엌이 아니었다. 그의 바로 옆, 책상 위였다. 그는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방금까지 VR 기기 옆에 조용히 놓여 있던, 물이 담겨있던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투명한 조각들 사이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현우는 숨을 헙 들이켰다. 분명히, 분명히 손대지 않았다. 심지어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던 순간이었으니, 팔로 건드린 것도 아니었다.

“이게… 뭐야?”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가 한 짓인가? 아니, 애초에 이 방엔 그 혼자뿐이었다. 문도 잠겨 있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아니었고, 바람이 불어 창문이 흔들릴 틈도 없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깨진 유리컵과 물웅덩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착각인가? 내가 건드렸나?”

애써 자신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의 손은 VR 기기에도 닿지 않았었다. 움직이려던 참에 멈췄었으니, 건드릴 틈조차 없었다.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그는 얼른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유리 조각들을 치웠다. 대충 바닥을 닦고 나니, 여전히 찝찝했지만 일단락된 기분이었다.

“피곤해서 그랬나 봐. 그래, 너무 피곤했어.”

자기 암시를 걸 듯 중얼거렸다. 어서 게임에 접속해서 이 불쾌한 기분을 털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집어 들었다. 이제 정말로 접속해야지.

그때였다.

‘딸깍.’

방문이 열리는 소리.

현우는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치는 걸 느꼈다. 눈은 방문 쪽으로 향해 있었다. 분명히 잠그고 나왔던 문이다. 그는 분명히 잠갔다. 오피스텔 문은 원래 잘 잠겨서 오히려 열고 들어가는 게 일이었다.

천천히, 정말로 느리게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어둠 속, 문틈 사이로 복도의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누군가 문고리를 돌린 게 아니었다. 마치 문이 스스로 열린 것처럼, 스르륵.

찬 바람이 훅 끼쳤다. 분명히 창문은 닫혀 있었다.

“누구… 누구세요?”

현우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안쪽에서 묵직한 공기가 밀려오는 듯한 기분 나쁜 침묵만이 그를 덮쳤다.

현우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땀방울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의자를 돌려 방문을 응시했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그저 어둠만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렸다.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젠장! 뭐야!”

결국 튀어나온 소리는 비명 대신 욕설이었다. 그는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이 활짝 열리자, 복도의 어둠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현우는 공포에 질려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이게… 무슨… 폴터가이스트… 현상인가?”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불쾌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폴터가이스트. 독일어로 ‘시끄러운 유령’이라는 뜻이었다.

‘설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집 안을 둘러봤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정적이 흐르는 집 안.

다시 문을 닫고 잠갔다. 철컥, 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 박혔다. 이번에는 손으로 문고리를 힘껏 흔들어봤다. 잠겨 있었다.

안심하려는 찰나, 그의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스쳤다.

끼이이이익…

이번에는 주방 싱크대 위, 컵을 놓아두는 선반이었다. 선반의 문이 서서히, 아주 느리게 열리고 있었다.

현우는 돌처럼 굳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그 열리는 문을 응시했다. 마치 공기 중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문을 잡아당기는 듯했다.

안에는 비어 있었다. 컵은 바닥에 떨어져 깨졌으니.

그때, 선반 안쪽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툭.’

그것은 플라스틱 숟가락이었다. 싱크대 바닥에 떨어져 작은 소리를 냈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플라스틱 숟가락. 하지만 현우에게는 그것이 마치 저주받은 물건처럼 느껴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누군가 그를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이었다.

“거기… 누구야?”

현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쓰레기통 옆에 놓여 있던 작은 화분 하나가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거실 바닥을 미끄러지듯, 현우에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서걱… 서걱…’

바닥에 깔린 러그 위를 끄는 듯한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안 돼… 오지 마!”

현우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그는 휴대폰을 든 손을 덜덜 떨며 뒤로 물러섰다. 이제는 더 이상 착각이나 피곤함으로 치부할 수 없는 명백한 현상이었다.

폴터가이스트. 시끄러운 유령. 그 유령이 지금, 그의 집에서 그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쳐야 하나? 어디로?

그때,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이 진동했다.

[지혜: 야, 이현우! 어디야? 빨리 접속 안 해?! 길드원들 다 너 기다린다고!]

메시지를 확인한 현우의 눈이 흔들렸다. 게임? 지금?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눈앞에서 여전히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화분과, 텅 비어 있지만 마치 누군가 서 있는 듯한 현관문 쪽을 번갈아 바라봤다.

현실의 공포는, VR 게임의 어떤 몬스터보다도 압도적이었다.

“지혜야… 나… 나 지금… ”

그는 답장을 쓰려 했지만, 그의 손은 덜덜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 집에 유령이 나타났다고? 미쳤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놓여 있던 VR 기기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현우는 숨을 멈췄다.

검은색 기기가 그의 눈높이에서 공중에 정지해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그리고 천천히, 그의 머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강제로 그에게 씌워주려는 듯이.

“안 돼! 저리 가!”

현우는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VR 기기는 멈추지 않고 그의 얼굴로 향했다. 그는 뒷걸음질 치다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쿵!

그가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VR 기기는 그의 얼굴 바로 위에서 멈칫하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쨍그랑!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훨씬 육중한 파열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VR 기기는 산산조각 나 있었다. 핵심 부품들이 드러나고, 렌즈는 박살 나버렸다.

현우는 망연자실한 채 바닥에 부서진 자신의 VR 기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방 안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화분도, 선반 문도, 현관문도 모두 움직임을 멈춘 듯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섬뜩한 침묵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현우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VR 기기가 부서진 마당에, 게임에 접속할 방법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탈출구는 사라졌다.

그는 지금, 이 기괴한 아파트에 홀로 갇혀 있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시선이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지혜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애썼다.

[이현우: 지혜야… 나… 지금…]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얼어붙은 채, 그는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침대 위 이불이 서서히 들썩이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