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금기의 심연
메마른 바람이 으르렁거리는 폐허 위로, 붉게 녹슨 태양이 힘없이 삐걱거렸다. 한때 마법사들의 찬란한 지식이 쌓여 있던 ‘천공의 마법학원’은 이제 거대한 죽은 짐승의 뼈대처럼 앙상하게 솟아 있었다. 건물마다 포격의 흔적과 검게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고, 부서진 창문은 밤의 그림자를 게걸스럽게 삼키는 텅 빈 눈동자 같았다.
“진우 씨, 이쪽은 거의 다 뒤진 것 같네요. 쓸만한 건 먼지뿐이고.”
사납게 부는 바람에 후드티의 끈을 바싹 조여 맨 유진이 투덜거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녹슨 철근이 불필요하게 쾅, 하고 바닥을 내리쳤다. 진우는 등 뒤의 배낭 무게를 조절하며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알아. 하지만 우리는 뭐라도 찾아야 해. 저번에 찾은 식량은 이틀이면 바닥이야.”
그의 목소리는 갈라진 대지처럼 건조했다. 무수히 많은 전투와 도피를 겪으며 굳어진 표정에는 피로와 함께 지독한 생존본능이 서려 있었다. 그들이 탐색하는 곳은 학원의 대강당이었다. 한때 수백 명의 학생이 모여 마법 이론을 논했을 공간은 이제 무너진 천장 파편과 바스러진 가구 조각들로 가득했다.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진은 뾰족한 파편들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벽에 걸려 있던 찢어진 태피스트리를 발견했다. 퇴색한 그림 속에는 날개를 펼친 채 하늘을 유영하는 거대한 용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와, 여기도 이런 건 여전하네. 대단한 척은 혼자 다 했던 주제에, 결국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유진의 비아냥거림에 진우는 묵묵히 부서진 연단 쪽으로 걸어갔다. 연단 아래, 두꺼운 돌덩이들이 뭉쳐진 곳에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보였다. 다른 돌들은 불규칙하게 깨져 있었지만, 이곳의 돌들은 마치 거대한 퍼즐 조각처럼 정교하게 맞춰져 있었다.
“유진, 이쪽으로 와봐.”
진우의 낮은 부름에 유진이 다가왔다. 그녀는 진우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뭐예요? 그냥 돌덩이 같은데… 딱 봐도 무거워 보이고.”
“아니.” 진우는 손전등을 켜 돌 틈새를 비췄다. “자세히 봐. 이 틈새, 다른 곳보다 훨씬 좁아. 그리고 이 돌, 다른 곳의 건축 양식이랑 달라. 뭔가… 숨겨져 있었던 것 같아.”
유진은 주저하며 그 돌덩이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촉감과 함께, 그녀의 손끝에서 미약한 마력의 잔류가 느껴졌다.
“진짜네요. 아주 희미하긴 하지만…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었던 흔적이에요.”
“망가진 학원에서 멀쩡한 마법이 남아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이 봉인 자체는 건재했던 모양이야. 대체 뭘 숨기려고 이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 둔 거지?”
진우는 주변에 널린 철근 하나를 집어 들고 돌 틈새에 끼워 넣었다. 온몸의 무게를 실어 지렛대 삼아 밀자, 굉음과 함께 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지가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고, 그 뒤로 칠흑 같은 어둠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이었다.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어두운 통로.
“지하 통로네요. 여기 밑에도 이런 게 있었을 줄이야.” 유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음산한데요.”
“그러게.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설 수는 없지.”
진우는 주저 없이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유진은 한숨을 쉬면서도 그를 따랐다. 계단을 따라 내려갈수록 공기는 차갑고 습해졌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 대신, 희미하게 비릿하고 쇠 냄새 같은 것이 섞여 들어왔다. 손전등 빛이 닿는 곳은 회색빛 콘크리트 벽과 바닥뿐이었다. 벽면에는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마치 경고문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봉인하려는 주문 같기도 했다.
“이봐요, 진우 씨. 이 글자들 좀 봐요. 마법 문자인 것 같긴 한데… 처음 보는 양식이에요. 일반적인 보호 주문과는 달라요.”
유진이 손전등을 들이대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마법 학원에서 파견된 생존자 그룹의 일원이었고, 고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진우보다 훨씬 깊었다.
“이건… 봉인 마법이긴 한데, 단순히 대상을 가두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듯한, 끔찍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대상이 세상에서 잊히고,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진우는 유진의 설명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엇을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지우려 했을까.
계단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텅 빈 어둠 속에서 메아리쳤다. 지하로 깊이 파고들수록, 위에서 들리던 바람 소리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침묵은 압도적이었고, 그 침묵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그들의 숨통을 조여 오는 듯했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마침내 계단은 넓은 복도로 이어졌다. 복도 양옆으로는 강철로 된 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떤 문은 활짝 열려 텅 비어 있었고, 어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마다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유진은 그 문양들을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이 문양들은… 마법학교에서 금기로 지정된, 영혼의 속박과 변형을 상징하는 문양이에요.”
진우는 유진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핏기 없는 얼굴에는 공포와 함께 섬뜩한 확신이 스쳐 지나갔다.
“여긴 단순한 지하 대피소가 아니에요. 이건… 연구시설이에요. 그것도 금지된 마법을 연구하던 곳.”
그때였다. 복도 끝, 유난히 거대하고 굳게 닫힌 강철문 너머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 축축한 것이 바닥을 끄는 듯한 소리. 진우는 즉시 총을 뽑아 들고 자세를 낮췄다. 유진 또한 마법이 담긴 단검을 움켜쥐었다.
“이런 곳에 괴물이 있을 리가… 학원이 망한 후에도 살아남았다고?” 유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진우는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멈췄다. 그리고 곧, 거대한 강철문 너머에서 흐느끼는 듯한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짐승의 울음 같기도 했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문에 다가갔다. 문의 틈새,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지하 깊은 곳에 전력이 남아있을 리 없는데. 그는 숨을 고르고, 힘껏 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굉음과 함께 강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안쪽은 거대한 원형 공간이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유리관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진우와 유진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유리관 안에는 거대한 육체 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다. 그것은 분명 한때는 인간의 형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생명체로도 정의할 수 없는 끔찍한 형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수십 개의 팔다리가 뒤엉켜 있었고, 셀 수 없는 눈동자가 이리저리 박혀 있었다. 온몸에는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며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생명체가 강제로 하나로 합쳐져 버린 듯한, 이질적이고 불쾌한 모습이었다. 그 덩어리에서 희미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리관 주변에는 고대 마법 문자로 가득 찬 제어 패널과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패널의 한가운데, 낡고 빛바랜 글귀가 쓰여 있었다.
**[궁극의 생명체 프로젝트 – 인류의 마지막 희망]**
그 순간, 진우의 머릿속에 과거 학원에서 내려오던 오래된 소문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법 학원 지하 깊은 곳에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금지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 학원 상층부는 그 연구를 맹렬히 비난하고 금지했지만, 일부 엘리트 마법사들은 비밀리에 그 연구를 강행했다는…
그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빙자한 가장 끔찍한 금기.
거대한 육체 덩어리는 여전히 푸른빛을 내뿜으며 유리관 안에서 느리게 맥동했다. 그 끔찍한 모습은 이 모든 아포칼립스보다 더욱 원초적인 공포를 선사했다.
진우의 눈에 비친 것은 단순히 ‘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끈 진정한 ‘무언가’에 대한, 뼈저리게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깨달음과 함께, 유리관 깊숙한 곳, 수없이 많은 눈동자 중 하나가 진우를 향해 섬뜩하게 깜빡이는 것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금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복도 너머, 거대한 강철문이 쿵, 하고 저절로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의 등 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