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피와 굶주림의 밤**

지하 동굴의 공기는 늘 습하고 차가웠다. 기름 램프의 희미한 불빛이 거친 돌벽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고, 그 그림자만큼이나 사람들의 얼굴에도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굶주림과 피로, 그리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제국군의 공포가 지친 어깨를 짓눌렀다.

“다들 아는 사실이잖아.”

서아는 낡은 나무 탁자에 팔꿈치를 짚었다. 손가락 끝으로 닳아빠진 지도를 쓸어보니, 희미하게 보이는 헬리오스 제국 수도 ‘아르카디아’의 문양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사자의 형상을 한 태양 문양은 찬란함 대신 탐욕스러운 어둠을 토해내는 듯했다.

“헬리오스 제국은 태양의 이름 아래 만물을 태워버리는 불꽃을 뿜어내고 있어. 우리는 그 불꽃의 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탁자 주변에 모여 앉은 열 명 남짓한 이들의 시선이 서아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절망과 함께,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가 흔들리고 있었다.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고, 병사들의 감시는 더욱 삼엄해졌다. 어제만 해도 옆 마을에서 세 가구가 통째로 사라졌어. 아무 흔적도 없이. 제국이 ‘황제 폐하를 위한 공물’이라고 칭하는 것들이 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이제 모르는 바가 아니야.”

웅성거림이 동굴을 채웠다. 공물. 그것은 더 이상 곡식이나 노동력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의 번영은 평민들의 피와 살,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빨아들여 이루어지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마을에 돌기 시작한 괴이한 질병, 밤마다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속삭임,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제국의 ‘공물’과 연관되어 있음을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무슨 방법이라도 있다는 거냐, 서아?”

거친 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체념의 빛이 역력했다.

서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램프 불빛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빛났다.

“우리가 더 이상 숨을 곳도, 잃을 것도 없을 때, 비로소 제국에 맞설 진정한 힘이 생긴다고 믿어. 그리고 그 힘은… 이 땅의 오래된 저주를 깨우는 것일지도 몰라.”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동굴 구석, 낡은 털가죽을 덮고 앉아 있던 할배에게로. 할배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눈빛은 램프 불빛에 반사되어 기묘하게 빛났다. 마른 입술이 비틀리며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젊은 것이, 내가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깨달았느냐.”

할배의 목소리는 늙었지만, 그 속에는 듣는 이의 심장을 옥죄는 알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헬리오스 제국은 그저 땅과 곡식만을 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진정한 양식은 너희의 ‘생기’다. 피와 살,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서 뽑아낸 기운으로 저 거대한 도시가 유지되는 게야. 황궁 지하에는 ‘명부의 심장’이라 불리는 거대한 수정이 박혀있다고 한다. 그것이 제국의 힘의 원천이자, 우리의 생명을 빨아들이는 흡혈귀의 이빨이지.”

동굴 안은 숙연해졌다. 끔찍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국의 사치와 권력이 단순한 폭력이나 착취가 아니라, 어떤 악마적인 주술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몸서리쳤다.

“명부의 심장… 그게 제국군의 갑옷을 뚫고 지나가는 마법의 근원이고, 황제가 노쇠하지 않는 이유이며, 저들의 검에 어둠의 힘이 서려있는 까닭이로군.” 강우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는 묵묵히 서아의 곁을 지켰다. 그의 넓은 등은 언제나 든든했지만, 그 굳건함 속에도 불안이 스며들어 있음을 서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 제국의 어둠의 마법사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이 땅에 깃든 고대 정령들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 인간의 생기를 흡수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황실의 비술이지. 그 수정은 모든 생명을 빨아들이고, 그 대가로 황제에게 영원한 권능과 마법적 힘을 부여한다.” 할배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우리가 그 심장을 잠시라도 흔들 수 있다면… 제국의 마법은 약해지고, 병사들의 힘도 빠질 것이다. 어쩌면… 그들을 이 비정상적인 힘에서 해방시켜, 평범한 인간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을 테고.”

서아는 숨을 들이켰다. 할배의 말은 일말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지의 공포로 가득 찬 문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죠?”

“아르카디아 황궁의 그림자 미궁, 그곳에 명부의 심장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 그곳은 제국의 마법사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금단의 영역이지. 인간의 생기가 너무나 진하게 얽혀 있어, 영혼이 약한 자는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미쳐버릴 테니까.” 할배는 핏기 없는 손으로 탁자 위 지도를 짚었다. “하지만 미궁의 가장 깊은 곳, ‘영혼의 제단’이라 불리는 곳에 다다라 고대 정령들의 봉인을 역으로 이용한다면… 잠시나마 명부의 심장을 무력화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곳은 저주의 땅이야! 발을 들이는 순간 영혼까지 갉아먹힐 거라고!” 한 반란군이 두려움에 떨며 소리쳤다. “아무리 제국의 힘을 약화시킨다 한들, 우리가 거기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을 리가 없잖아!”

동굴 안에 다시 웅성거림이 번졌다. 할배의 말은 너무나 위험했다. 그들의 삶은 이미 지옥과 다름없었지만, 영혼마저 잃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공포였다.

서아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이대로 죽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주받은 땅에서 싸우다 죽는 게 나았다. 눈앞에 앉은 지쳐 보이는 동료들의 얼굴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이대로 포기하면, 이들의 희생은 아무 의미도 없이 끝날 터였다.

“내가 간다.” 서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동굴 안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명부의 심장을 직접 찾아내서, 이 비정상적인 제국의 심장을 멈출 거야.”

강우는 말없이 서아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과 함께, 어떤 결연함이 어려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보낼 수는 없지. 내가 널 지킬게.”

할배는 서아와 강우를 번갈아 보며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가는 길은 순탄치 않을 게다. 그림자 미궁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의지를 지닌 곳이니. 하지만… 너희에게는 아직 잃지 않은 ‘생기’가 있구나. 그것만이 너희를 지킬 수 있을 테다.”

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작은 단검을 허리에 찼다. 날은 무뎠지만, 그녀의 결의만큼은 날카로웠다.

“그럼, 간다. 새벽이 오기 전에.”

동굴 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멀리서 제국군의 나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고, 대지 위를 떠도는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그들을 기다리는 듯했다. 차가운 밤공기가 서아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속에는 미약하지만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둠을 뚫고 나아가, 헬리오스 제국의 심장을 겨눌 불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