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숨 막히는 어둠이 천광문의 거대한 산문을 짓눌렀다. 수백 년 된 고목들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사이를 뚫고 솟아오른 은은한 영기 등불만이 안개처럼 흐릿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가장 높은 봉우리,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않는 아득한 절벽 끝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의 낡은 도포는 만신창이였지만, 그의 눈빛은 칠흑 같은 심연에서 타오르는 두 개의 불꽃과도 같았다. 련. 그의 이름이었다. 한때는 천광문의 혜성 같은 재능이었고, 문주 강휘와는 형제나 다름없는 지기였다. 이제 그는 돌아왔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 올라온, 지옥에서 빚어진 존재로.

“강휘…”

련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름은 차가운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이름이 아니라, 뼈에 사무친 원한이 서린 주문이었다. 3년 전, 단전이 꿰뚫리고 영맥이 끊어진 채 절벽 아래로 던져지던 그 날의 기억은 여전히 그의 뇌리에서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환히 웃던 강휘의 얼굴이, 이내 잔인하게 일그러지던 순간. 온몸을 휘감았던 차가운 배신감은 죽음보다 더 지독한 고통이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절벽 아래 알 수 없는 동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폐허가 된 단전을 대신할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맸다. 그것은 정파의 심법과는 완전히 다른, 피와 고통으로 점철된 사악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강휘의 심장을 꿰뚫을 힘을 갈구했을 뿐이었다.

지금, 련의 심장은 차가운 강철로 뒤바뀌어 있었다. 복수 외에는 어떤 감정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천광문 내부의 한 건물에 고정되었다. 영기 흐름이 가장 활발하고, 고위 제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청수각’. 그곳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예린.

그녀는 강휘의 직계 제자이자, 한때 련 자신을 선배님이라 부르며 따랐던 순수했던 소녀였다. 이제 그녀는 어엿한 금단기(金丹期) 고수가 되어 있었고,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고상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련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강휘의 위선 아래에서 피어난 가짜 꽃처럼 보였다.

련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발소리도, 기척도 없었다. 마치 바람에 섞여드는 연기처럼, 그는 청수각 뒤편의 으슥한 숲으로 스며들었다. 예린이 다른 제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홀로 숲길로 접어드는 순간을 기다렸다.

바스락.

아주 미세한 나뭇잎 소리가 예린의 귀를 스쳤다. 그녀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신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스며 있었다. 밤늦은 시간에 인기척이라니.

대답은 없었다. 대신, 숲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지며 무거운 압력이 그녀를 짓눌렀다. 예린은 본능적으로 검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예린.”

낮고 굵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낯선 목소리였다. 예린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련… 선배님…?”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핏기 없는 얼굴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사내였다. 3년 전 절벽 아래로 추락하여 죽었다고 알려진 련 선배님. 하지만 그의 모습은 예전의 온화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는 살아있는 자의 것이 아닌, 수억 년 된 얼음 조각처럼 차갑고 깊었다.

“설마… 살아계셨던 겁니까…?” 예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경악과 혼란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녀는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니, 강휘 문주가 직접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애도했었다.

련의 입가에 비웃음 같은 미소가 스쳤다. 그것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오직 뼈아픈 고통만이 남아있는 미소였다. “살아?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그의 손이 예린의 어깨를 쥐었다. 그 순간, 예린의 온몸의 영맥이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영기가 순식간에 봉쇄되는 것을 느꼈다. 막아낼 틈조차 없었다.

“이게… 무슨…”

“강휘에게 가거라.” 련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가서 전해라. 죽었다고 믿었던 내가, 심연에서 기어 올라와 복수를 노래하고 있다고.”

예린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련을 올려다보았다. “선배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문주님께서 선배님의 죽음을 얼마나 비통해하셨는지… 모두가… 모두가…”

“비통?” 련의 눈이 순간적으로 붉게 빛났다. 그 빛은 예린의 심장을 꿰뚫는 듯한 섬뜩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자가 흘린 눈물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 하나였다. 내가 그에게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안도의 눈물.”

예린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는 것을 느꼈다. 련 선배님과 문주님은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였다. 어릴 적부터 함께 수련하며 우정을 다져왔고,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던 지기였다. 그런 련 선배님이 문주님께 복수를 하겠다고? 믿을 수 없었다.

“선배님… 오해이십니다. 문주님께서는… 진정으로 선배님을 아끼셨습니다. 제게 늘 선배님의 재능과 인품을 칭찬하셨고…”

“인품? 재능?” 련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모든 것이 그자의 탐욕을 자극했을 뿐이다. 내가 지닌 ‘천혼심법(天魂心法)’을, 그는 언제나 탐냈다. 끝내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자, 내 것을 빼앗고 나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지.”

련의 목소리에 담긴 지독한 증오가 예린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천혼심법. 련 선배님만이 익힐 수 있었던 희대의 심법. 강휘 문주가 한때 그 심법에 대해 궁금해했던 적이 있음을 예린은 어렴풋이 기억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런 비극의 원인이었단 말인가?

“거짓말입니다… 문주님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예린은 절규하듯 외쳤다. 그녀는 자신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강휘 문주는 그녀에게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의 인자함과 위엄은 천광문의 모든 제자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거짓말?” 련의 손이 예린의 뺨을 스쳤다. 얼음장 같은 손길이었다. “내 단전이 꿰뚫리고 영맥이 끊어지던 그 순간, 내 눈앞에 서 있던 자가 누구였는지 아느냐? 절벽 아래로 나를 밀어 떨어뜨리던 그 미소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아느냐?”

련의 눈빛은 마치 지옥의 심판관처럼 예린의 영혼을 꿰뚫는 듯했다. 예린은 그의 눈 속에서 3년 전 그날의 처절한 고통과 배신감을 그대로 보았다. 그 깊은 증오와 고통은 거짓일 리 없었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강휘는 너희가 아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는 가면을 쓴 늑대이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친구의 등에도 칼을 꽂는 비열한 위선자다. 그의 영광은 나의 죽음 위에서 쌓아 올려진 것이다.” 련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바닥에서 검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 기운은 숲 속의 모든 생명을 빨아들이는 듯한 섬뜩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예린은 몸서리쳤다. 그것은 천광문의 정파 심법과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이고도 사악한 기운이었다. 련 선배님이 이런 힘을…

“내가 너를 죽일 수도 있다.” 련의 목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강휘는 나의 손으로 죽어야 한다. 네가 나의 존재를 알리는 첫 번째 전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예린의 단전이 봉쇄된 것을 풀지 않은 채, 그녀의 가슴팍에 검붉은 기운을 불어넣었다. 예린은 몸 안에서 타오르는 듯한 고통과 함께, 알 수 없는 표식이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복수징(復讐徵)’이다.” 련이 설명했다. “너는 앞으로 사흘 밤낮으로 이 기운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강휘가 있는 곳으로 이끌릴 것이다. 그에게 내가 돌아왔음을 전해라. 그리고 너의 몸에 새겨진 이 표식은, 그가 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할 증거가 될 것이다.”

예린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몸속에서 끊임없이 고통이 파고들었고, 정신은 련의 말과 강휘에 대한 믿음 사이에서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강휘에게 전해라. 내가 돌아왔다고. 그리고 그의 영광은 이제 끝이 났다고.” 련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자가 내게서 빼앗아간 모든 것을, 나는 피눈물로 돌려받을 것이다. 곱절로, 아니 백 곱절로.”

그 말을 끝으로 련의 모습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예린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몸은 고통에 떨고 있었지만, 더 큰 고통은 그녀의 심장을 찢어놓는 배신감과 혼란이었다. 자신이 평생 믿고 따랐던 스승이, 자신이 존경했던 문주가… 그런 잔혹한 일을 벌였다고? 련 선배님의 눈에서 본 그 절망과 증오가 거짓일 리 없었다.

천광문은 그녀의 눈앞에서 거대한 위선의 탑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탑은 지금, 련 선배님의 복수라는 거대한 해일에 휩쓸리기 직전이었다. 예린의 가슴에 새겨진 검붉은 표식은 고통스럽게 빛나며, 앞으로 다가올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