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낯선 움직임**
지훈은 낡은 구두를 끌며 현관문을 열었다. 새벽 세 시를 가리키는 시계는 그의 하루가 얼마나 기이하게 비틀려 있는지 웅변하는 듯했다. 텅 빈 복도와 고요한 아파트. 늦은 시간 퇴근하는 그의 발소리만이 쓸쓸하게 울렸다. 잠기지 않은 문을 열자 싸늘한 공기가 지훈을 맞았다. 난방은 늘 켜두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503호 아파트는 언제나 한겨울처럼 서늘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등을 기댔다. 피곤해서 그런가.
대충 벗어놓은 양말을 걷어차며 주방으로 향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식탁에 놓인 오래된 소설책을 무심코 바라봤다. 어제 읽다 만 페이지가 그대로였다. 그의 시선이 책에 고정된 순간, 책상 위 연필 한 자루가 스르륵 굴러 떨어졌다. 톡, 하고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아, 깜짝이야.”
지훈은 피곤에 절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피곤해서 헛것이 보였나 싶어 고개를 저었다. 낡은 건물이라 이런저런 일이 많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창문도 닫혀 있었는데 미묘하게 흔들리는 커튼 자락도 그저 바람이 새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라면이 익자마자 허겁지겁 국물까지 비웠다. 뱃속이 따뜻해지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오래된 전등갓에 잔뜩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는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드라마를 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아무 소리라도 들려야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채널을 돌리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리모컨이 손에 없었다. 분명 침대에 누우면서 머리맡에 놓았는데. 지훈은 침대 주변을 더듬었다. 이불 속, 베개 밑.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또 어디로 갔지?”
그는 짜증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훑었다. 리모컨은 침대에서 세 발자국 떨어진 서랍장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단정하게, 마치 누군가 가지런히 올려둔 것처럼.
“내가 서랍장 위에 올려놨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적은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다시 침대에 앉아 채널을 돌렸다. 투덜거림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늙으면 기억력도 사라지나.”
그때였다. 거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잠시 후, ‘스스슥’ 하고 무언가가 바닥을 끄는 소리도 이어졌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거실을 살폈다.
거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이 희미하게 가구들의 윤곽을 그렸다. 그는 핸드폰 불빛을 비췄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테이블 옆에 놓여 있던 안락의자가 넘어져 있었다. 등받이가 바닥에 닿아있었고, 방금 전 그 소리가 이 의자에서 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누, 누구 있어?”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요만이 답했다. 오싹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다시 핸드폰 불빛을 의자 주변에 비췄다. 넘어진 의자 옆 바닥에, 낡은 액자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액자를 주워 들자, 유리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액자 속 사진은 10년 전 어머니가 찍어준 그의 졸업사진이었다.
“젠장…”
그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바람이 불어 넘어졌다고 하기엔 너무도 명백한 움직임이었다. 누가 장난을 치는 걸까? 하지만 이 아파트에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넘어진 의자를 바로 세우려는 순간이었다.
*철컥.*
갑자기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얼어붙었다. 현관은 그가 서 있는 거실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땀을 흘리며 돌아섰다. 어둠 속에 잠긴 현관문은 마치 거대한 입처럼 그를 노려보는 듯했다.
“문이… 문이 잠겼어?”
그는 달려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잠겨 있었다. 분명 잠그지 않고 들어왔는데. 그는 이중 잠금장치까지 확인했다. 안에서 걸어 잠근 상태였다. 마치 누군가 그를 가두려는 것처럼.
그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는 숨을 가쁘게 쉬며 거실 중앙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순간, 거실의 모든 불빛이 갑자기 *꺼졌다*. 전등갓에 매달린 낡은 형광등은 마치 생명이 다한 것처럼 ‘픽’ 하고 소리를 내며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도시의 불빛조차 닿지 않는 완벽한 어둠.
그리고, 차가운 공기가 그의 발치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그를 감싸는 듯했다. 그의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젠장, 뭐야…!”
그는 두려움에 질려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목구멍이 틀어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차갑고 미약한 접촉이 느껴졌다. 마치 얼음 조각이 스치는 듯한, 그러나 형체가 없는 어떤 것이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정전기와는 다른, 깊고 냉정한 촉감.
*쉬이이…*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혹은 웅장한 전파가 뒤섞여 만들어진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음절들이 공기를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소리는 그의 주변을 맴돌며 점차 커지는 듯했다. 그의 정신을 파고드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때, 암흑 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거실 벽 한가운데에, 푸른빛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일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언뜻 보기에 별자리 같기도 했고, 복잡한 회로도 같기도 했다. 너무나 빠르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훈은 그것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우주 어딘가의 미지의 존재가 남긴 표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전등은 다시 ‘삑’ 소리를 내며 환하게 켜졌다.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넘어져 있던 의자는 제자리에 바로 서 있었다. 액자도 테이블 위에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지훈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벽을 바라봤다. 방금 전 섬광과 함께 나타났던 푸른 문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이곳이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아파트가, 어쩌면 지구 자체가 거대한 미지의 존재에게 포착된 사냥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그 사냥터에 갇힌 먹잇감 중 하나였다. 그의 핏발 선 눈동자에 공포와 함께 미약한 절망이 서렸다.
*이게 대체… 뭐야.*
지훈의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겨우 그 질문이 터져 나왔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듯한 차가운 시선만이, 그의 온몸을 꿰뚫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