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도시의 속삭임

어둠이 내린 도시의 틈새에서, 고층 아파트 13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창밖으로는 수백, 수천 개의 불빛들이 반짝이며 거대한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숨 쉬는 서울의 밤을 그리고 있었다. 지수는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따뜻한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허브차 향이 잔잔하게 코끝을 간질였지만, 어쩐지 오늘 밤은 그 향기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거실의 간접 조명만이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TV는 꺼져 있었다. 습관처럼 틀어놓던 심야 뉴스조차 오늘은 거슬렸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불면증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수는 온몸의 신경이 뾰족하게 곤두선 채였다.

“휴….”

나직한 한숨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내일 출근을 위해선 이제라도 잠을 청해야 했지만, 침대에 눕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잠자리에 들면 늘 찾아오는 그 ‘어떤 느낌’ 때문이었다.

지수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놓아둔 휴대폰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휴대폰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식탁 위에 두고 물을 마시러 갔던 것 같은데.

“내가 또 어디에 뒀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실 소파 밑을 들여다보고, 침실을 대충 훑어봤다. 침실 협탁 위에도 없었다. 순간, 식탁 위로 다시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 휴대폰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지수는 잠시 멍하니 휴대폰을 응시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피곤에 지친 뇌가 착각을 일으켰으리라 애써 자신을 납득시켰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쥐었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액정에는 몇 개의 알림이 떠 있었지만, 그녀는 그저 화면을 껐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창밖을 보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어쩌면 스트레스 때문일지도 몰랐다. 요즘 회사 일이 좀 고되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이런 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딸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마치 숟가락이 컵에 부딪히는 듯한.

“누구…?”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완벽하게 혼자였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하지만 층간 소음에 예민한 이 아파트에서 그런 작은 소음이 벽을 뚫고 넘어올 리는 만무했다. 더욱이, 그녀의 아파트는 외곽 라인이라 옆집과 닿아있는 부분이 적었다.

‘아니야, 분명 내가 잘못 들은 거야.’

또다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내려 애썼다. 혹시 창문이 열려 있어 바람에 무언가가 흔들린 건 아닐까? 하지만 모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니, 분명 소리는 주방 안에서 들려왔다.

심장이 쿵, 하고 한 번 더 떨어지는 듯했다.
지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방 입구를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식탁과 싱크대가 희미하게 보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소름 돋듯 목덜미를 스쳤다.
‘내가 미쳤나 봐. 정말 미쳤나.’
지수는 어색하게 웃었다. 고작 이런 소리 하나에 이렇게까지 반응하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시 허브차를 마시려 머그잔을 들었다. 따뜻했던 차는 이미 식어 있었고, 거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가 들어있던 머그잔의 위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분명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정중앙에 두었던 것 같은데, 테이블 끝으로 살짝 밀려나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으면서 조금 밀린 것처럼.

지수는 잔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아무리 힘을 빼고 조심스럽게 내려놓아도 잔은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테이블 끝까지 밀려나는 일은 없었다.

등골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환각일까? 아니면 누군가 침입한 것일까?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집안의 모든 불을 켰다. 거실, 주방, 침실, 욕실… 모든 공간에 환한 빛이 쏟아졌다. 밤의 어둠이 사라지자 비로소 안심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안도감은 잠시였다.
거실 한쪽 벽에 걸려 있던 그림 액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툭, 툭, 하고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마치 누군가 그림 뒤에서 장난치듯 건드리는 소리 같았다.

“뭐야….”

지수는 천천히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액자는 그녀가 손을 뻗기도 전에 흔들림을 멈추고 고요하게 벽에 걸려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그림의 수평이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분명 전에는 똑바로 걸려 있었는데.

심장이 발작하듯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지수는 두 손으로 자신의 팔을 감싸 안았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그림의 기울기, 머그잔의 위치, 그리고 주방에서 들려왔던 작은 소리.
모든 것이 연결되는 퍼즐 조각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아파트에 있었다.
그녀가 혼자라고 생각했던 이 고요한 공간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침실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수는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심장은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어둠이 걷힌 환한 침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녀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이건 분명, 시작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마치 잠에서 깨어난 좀비처럼, 침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입술이 바싹 말라붙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문턱을 넘어선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위로 떨어져 박살이 나 있는 탁상시계였다.
그리고 그 시계 바늘은 정확히, 새벽 2시 1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멈춰 선 시계처럼, 지수의 시간도 그 자리에서 멈춰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