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아르고 호의 함교에는 짙푸른 우주의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캡틴 한지혁은 홀로 조타석에 앉아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구를 떠난 지 3년, 그는 이제 별들의 침묵에 익숙해진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 침묵은 불길하게 깨졌다.

“캡틴, 감지기 이상 신호입니다.”

과학 담당 이수진 중위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뚫고 들어왔다. 젊지만 탁월한 두뇌를 가진 그녀는 아르고 호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였다.

“이상 신호? 무슨 종류지?” 한지혁이 조용히 물었다.

“미지의 에너지 반응입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패턴이에요. 위치는… 우리 항로에서 약간 벗어난 성간 먼지대입니다. 소규모지만 매우 강렬해요.”

한지혁은 잠시 생각했다. 예정된 탐사 경로를 이탈하는 것은 늘 위험을 동반했다. 하지만 미지의 에너지 반응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 이래 수없이 많은 외계 문명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쩌면 이번이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항로를 변경한다. 이수진 중위, 해당 좌표로 이동. 기관장 박준영 대위는 엔진 출력을 최대로 준비하고, 김민준 보안 팀장은 전 대원 전투 태세를 유지하도록.”

“예, 캡틴.”

아르고 호는 거대한 몸체를 틀어 미지의 신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며칠 밤낮을 쉼 없이 나아간 끝에, 그들은 희미한 빛이 감도는 성운 속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마주했다.

“저게… 뭔가요?”

조타석 옆 스크린을 보던 김민준 보안 팀장의 목소리에 경외심과 함께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거대한 암흑 성운의 중심에, 고요히 떠 있는 것은 거대한 비석이었다. 검은색 오벨리스크 형태의 그것은 마치 우주의 심연에서 솟아난 듯, 어떤 중력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제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표면은 흡사 흑요석처럼 매끄러웠으나, 자세히 보면 미세한 녹색 빛의 문양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생체 신호는 전혀 없습니다, 캡틴. 하지만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수진이 경직된 목소리로 보고했다. “어떤 금속으로 이루어진 건지, 아니면 아예 물질의 형태를 초월한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저 거대한 비석이 그 신호의 근원이라는 건가.” 한지혁이 중얼거렸다. “이수진 중위, 소규모 탐사정을 준비해. 샘플 채취가 가능한지 확인한다. 김민준 팀장, 보안 인력은 만전을 기해.”

아르고 호의 소형 탐사정 ‘하운드’가 거대한 우주선의 도킹 베이를 빠져나와 오벨리스크를 향해 날아갔다. 세 명의 과학자와 두 명의 보안 대원이 탑승한 하운드는 조심스럽게 오벨리스크 주위를 맴돌았다.

“표면에 어떤 물질도 부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캡틴. 완벽하게 깨끗해요.” 탐사정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긴장으로 가득했다.

“접근해서 표면을 스캔해봐.” 이수진이 지시했다.

탐사정이 오벨리스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을 때, 스캔 장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벨리스크의 녹색 문양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더니, 마치 심장이 고동치듯 주기적으로 섬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젠장! 뭔가 튀어나왔습니다!” 탐사정 조종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스크린에 잡힌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오벨리스크의 표면에서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탐사정을 향해 뻗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회피! 즉시 회피!” 한지혁이 소리쳤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검은 촉수는 하운드의 외벽에 달라붙었고, 순간 하운드의 통신이 끊겼다. 스크린에는 탐사정 내부의 비명 소리만 짧게 잡힌 후, 지직거리는 노이즈로 가득 찼다.

“젠장…!” 김민준이 주먹으로 함교 탁자를 내리쳤다.

“캡틴, 표면 장악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 액체… 일부가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이수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거대한 아르고 호는 간신히 촉수의 위협에서 벗어났지만, 오벨리스크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액체의 일부가 우주선 외부의 센서에 묻어버렸다.

“해당 센서 모듈 격리! 즉시 소독 및 제거 작업을 실시해!” 한지혁이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

그날 밤, 아르고 호는 미지의 위협에 노출되었다. 첫 희생자는 하운드의 승무원 중 한 명이었던 지민이었다. 탐사정 복귀 후 검은 액체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민은 심한 두통과 함께 발열 증세를 보였다. 이수진은 그를 격리하고 여러 검사를 진행했지만, 어떠한 병원균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건… 바이러스가 아니에요, 캡틴. 뭔가… 다른 차원의 변화 같아요. 지민의 세포 변이가 너무 빨라요.” 이수진은 격리실 문 너머의 지민을 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민은 침대에 누워 끊임없이 신음하고 있었다. 피부는 창백하게 변색되었고, 혈관이 섬뜩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공허하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신 감정 결과는?” 한지혁이 물었다.

“공격적인 성향이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요.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그 순간, 지민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슬로 묶어둔 손목과 발목이 찢어질 듯 철컹거렸다. 그는 마치 오랜 시간 굶주린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지민! 진정해!” 이수진이 외쳤지만, 그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격리실의 방탄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민이 온몸의 힘을 다해 유리를 부수려는 듯 계속해서 몸을 던졌다.

“젠장, 저 힘은 뭐지?” 김민준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빨리 진압팀을 불러!”

진압팀이 도착하기도 전에, 유리가 결국 산산조각 났다. 지민은 격리실을 뛰쳐나와 복도로 달려나갔다. 그는 마주치는 모든 것을 부수고, 모든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첫 번째 희생자는 통신실로 향하던 여성 대원이었다. 지민은 마치 사냥감을 덮치듯 달려들어 그녀의 목을 물어뜯었다.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더니, 붉게 충혈된 눈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녀의 입가에는 피가 흥건했고, 그녀의 눈은 이미 지민과 똑같은 굶주림으로 가득했다.

“이건… 악몽이야.” 박준영 기관장이 상황실의 스크린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르고 호는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오벨리스크의 검은 액체는 어떤 경로로든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듯했다. 직접 접촉뿐만 아니라, 감염된 자에게 물린 희생자 또한 빠르게 괴물로 변했다. 그들은 마치 이성을 잃은 좀비들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을 덮쳤다. 그들의 신체 능력은 인간을 훨씬 뛰어넘었다. 찢어진 피부 아래로 불거진 근육은 강철처럼 단단했고, 상처는 놀라운 속도로 아물었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전 함선 비상 방어 체제! 모든 격벽을 폐쇄하고, 승무원은 가장 가까운 안전 구역으로 대피하라!” 한지혁이 침착하려 애쓰며 외쳤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대원들이 감염된 후였다. 함교로 향하는 복도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이성을 잃은 괴물들의 울부짖음이 우주선을 가득 채웠다. 아르고 호의 통신은 완전히 먹통이 되었고, 전력 시스템 또한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한지혁, 이수진, 박준영, 김민준, 그리고 몇 명의 남은 보안 대원들은 간신히 함교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버티고 있었다.

“캡틴, 상황이 너무 나쁩니다. 함선의 제어 시스템은 거의 마비 상태고, 대부분의 구역이 감염자들에게 장악당했습니다.” 박준영이 보고했다. 그의 얼굴은 땀과 피로로 범벅되어 있었다.

“저것들이… 오벨리스크에서 나온 그 액체 때문인 건가?” 김민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이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엔 그래요.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니에요. 저건… 생명체가 아닌, 어떤 변형을 유도하는 외계의 도구 같아요. 우리의 유전자 구조를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저 오벨리스크 자체가 생체 병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쾅! 쾅! 쾅!

함교의 두꺼운 문이 거세게 울렸다. 밖에서는 감염자들이 문을 부수려는 듯 맹렬하게 몸을 던지고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캡틴.” 김민준이 총을 꽉 쥐었다. “이 배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요. 우리도 끝이 보입니다.”

한지혁은 스크린에 비치는 우주선 내부 상황도를 응시했다. 붉은색 점으로 가득 찬 지도는 그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재앙이 지구로 퍼진다면… 인류는 끝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아르고 호를 포기해야 한다.”

모두의 시선이 한지혁에게로 향했다.

“이 바이러스가… 아니, 이 생체 변형체가 지구로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해. 유일한 방법은… 아르고 호를 자폭시키는 것뿐이다.”

정적이 흘렀다. 박준영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자폭이라니요, 캡틴! 탈출정은요?”

“탈출정은 이미 감염자들이 장악했다. 만약 일부라도 탈출정에 숨어들어 지구로 향한다면… 인류는 끝이다.” 한지혁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우리는… 여기서 이 재앙을 멈춰야 한다.”

“자폭 시퀀스를 활성화하려면 메인 엔진룸까지 가야 합니다, 캡틴. 지금 그곳은…” 박준영이 말을 잇지 못했다. 메인 엔진룸은 함교에서 가장 먼 곳 중 하나였고, 수많은 감염자 무리가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가야 한다.” 한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마지막 보루다. 이수진 중위, 자폭 시퀀스에 필요한 데이터 백업은 했나?”

“예, 캡틴. 하지만… 그걸 실행하려면 최소한 두 명이 필요합니다.”

“좋아. 나, 이수진 중위, 박준영 대위, 김민준 팀장. 그리고 남은 보안 대원들. 우리가 길을 뚫는다.” 한지혁이 총을 뽑아 들었다. 그의 눈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캡틴! 저놈들이 문을 부수기 시작합니다!” 김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강철문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감염자들의 손아귀가 틈새로 비집고 들어왔다.

“간다!” 한지혁이 외쳤다. “인류를 위해!”

그들은 바리케이드를 풀고 문을 박차고 나섰다. 복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감염자들이 으르렁거리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고, 칼날이 번뜩였다. 아르고 호의 마지막 영웅들은 인류의 운명을 짊어지고 절망적인 싸움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 명, 또 한 명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그들은 필사적으로 나아갔다. 메인 엔진룸까지의 거리는 우주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

피와 시체로 뒤덮인 복도를 간신히 뚫고 메인 엔진룸에 도착했을 때, 그들 중 살아남은 자는 한지혁과 이수진, 그리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박준영뿐이었다. 김민준은 함교를 나서자마자 감염자 무리에 의해 끌려갔다.

“캡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박준영이 벽에 기대어 쓰러지며 말했다. 그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박 대위!” 이수진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게 할당된… 자폭 시퀀스 코드는… 제 손목에… 인식 장치를… 대야 합니다…”

박준영은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한지혁을 바라보았다. “캡틴… 지구를… 지켜주십시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박준영의 숨이 멎었다.

한지혁은 이를 악물고 박준영의 손목에서 인식 장치를 분리해 메인 패널에 갖다 댔다. 시스템이 박준영의 권한을 인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수진 중위, 자네 차례다.” 한지혁이 말했다.

이수진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목을 패널에 인식시켰다. 자폭 시퀀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스크린에 붉은색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3분… 2분 59초…”

그때, 엔진룸의 철문이 찢어지는 굉음이 울렸다. 감염자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붉은 눈은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들처럼 이글거렸다.

“캡틴!” 이수진이 외쳤다.

“마지막까지 버틴다!” 한지혁은 권총을 다시 쥐었다. 그는 감염자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 두 발… 총알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몰려들었다.

1분 30초.

감염자 하나가 한지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괴물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지만, 이미 그의 손은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꺾이고 있었다. 다른 괴물이 이수진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숫자의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다.

45초.

한지혁은 이미 수많은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몸은 갈가리 찢기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붉은 카운트다운 숫자를 향했다. 그의 입가에는 피가 흘렀지만, 그의 눈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30초.

이수진은 마지막 힘을 다해 자폭 패널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은 이미 공포와 고통으로 흐릿해졌지만, 마지막까지 사명을 잊지 않았다.

15초.

아르고 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엔진룸의 붉은 불빛이 더욱 격렬하게 깜빡였다.

5초.

괴물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4초.

3초.

2초.

1초.

우주의 심연 속에서, 거대한 빛이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잠시 후, 모든 것을 삼키며 사라졌다. 아르고 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지의 오벨리스크와, 그 안에서 비롯된 재앙, 그리고 인류를 위해 산화한 영웅들의 마지막 외침까지. 모두가 우주의 침묵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광활하고 차가운 암흑뿐이었다. 어쩌면, 저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 아르고 호가 미지의 오벨리스크를 향해 항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인류의 호기심은, 때로 가장 잔혹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