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밤은 깊고, 공기는 축축했다. 눅진한 습기가 목덜미를 휘감는 느낌은 마치 끈적한 거미줄 같았다. 강민혁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분명 화려한 생일 파티였다. 웃음소리가 꽃잎처럼 흩어지고, 달콤한 케이크 향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낯설고, 어딘가 잘못된 조각처럼 느껴졌다.

“민혁아, 왜 이렇게 늦었어? 다들 기다렸잖아.”

초대받은 자리였다. 아니, 그가 늘 참석했던 ‘친구들’의 모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차가운 시선이 등 뒤를 훑는 기분이었다. 애써 무시하고 익숙한 얼굴들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들의 미소는 어딘가 어색했고, 눈빛은 피곤한 기색을 담고 있었다.

“미안, 일이 좀 늦어져서.”

그는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빈자리를 찾는데, 곁을 지나던 김태호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어쩐지 그들의 눈은 그를 통과하는 유리창처럼 투명했다.

“민혁아, 저기 빈자리가 있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보였다. 윤서준. 그의 오랜 친구. 혹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 악마. 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와인잔을 흔들고 있었다. 그 미소는 언제나처럼 온화했지만, 민혁의 등골에는 서늘한 얼음 조각을 쑤셔 넣는 듯했다.

서준의 맞은편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테이블에 앉은 다른 친구들은 저마다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민혁은 애써 그 대화에 끼어들려 노력했다.

“아, 얼마 전에 내가 말했잖아. 그 기획안 말이야. 드디어…”

그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옆에 앉아있던 박지은이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다. 마치 그가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 그게 말이야, 민혁아.”

지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아져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곤란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그 기획안, 우리가 이미 다 같이 이야기했는데. 네가 말했던 방향이랑은 좀 많이 다르던데…”

무슨 소리야? 민혁은 눈을 깜빡였다. 분명 어제까지도 그 기획안에 대해 지은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전적으로 그의 아이디어에 동의한다고 했었다.

“내가 뭘…?”

“음, 그러니까 그게, 다들 회의에서 말했잖아. 민혁이가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번엔 멀리 앉아있던 김현우가 끼어들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비난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민혁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자기중심적? 언제? 무슨 회의? 그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난 그런 회의에 참여한 적도 없고, 내 기획안은…”

“민혁아, 술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아니면 혹시 요즘 스트레스가 심한가?”

서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대화를 잘랐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 눈빛은 한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민혁은 순간적으로 서준의 눈빛에서 섬뜩한 희열을 읽은 것 같았다.

“내가 스트레스라니! 난 정말 괜찮다고!”

민혁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사람들의 의심을 부추기는 듯했다. 몇몇은 쯧쯧 혀를 찼고, 몇몇은 그를 외면했다. 그의 말을 굳게 믿어주던 태호마저도 고개를 젓고 있었다.

“민혁아, 잠시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쐴까?”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민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조용히 그를 이끌었다. 마치 보호자가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밖으로 나온 민혁은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하지만 폐 속까지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서준아, 내가 이상해? 사람들이 왜 저래?”

민혁은 애원하듯 서준을 올려다봤다. 서준은 아무 말 없이 민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다정한 손길마저도 민혁의 피부에 닿자마자 얼어붙는 듯했다.

“민혁아, 솔직히 요즘 네가 좀 변하긴 했어.”

서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민혁의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우리가 네 옆에서 아무리 애써도, 네가 자꾸 우리를 오해하는 것 같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것 같아서 다들 힘들어해.”

무슨 소리야? 민혁은 입술을 씹었다. 그는 오히려 그들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자신을 밀어내고, 배신하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언제 너희를 오해했어? 오히려 너희가 나를…”

“민혁아, 흥분하지 마.” 서준이 부드럽게 그의 팔을 잡았다. “아무도 널 미워하지 않아. 그저 네가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랄 뿐이야.”

그의 말은 꿀처럼 달콤했지만, 민혁의 가슴에는 날카로운 송곳이 박히는 듯했다. 그들이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지금 그들이 그를 대하는 방식은 완벽한 증오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그들이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답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그를 ‘병든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으로.

민혁은 서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속에서, 민혁은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몇 년 전, 그의 모든 것을 걸었던 프로젝트를 서준에게 빼앗기던 날. 서준은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었다. 그의 모든 것을 짓밟아 놓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오히려 그를 위로하는 척하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민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네가… 네가 그랬지.”

민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떴다. 그 표정은 순수한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뭘 말이야, 민혁아? 갑자기 왜 그래?”

“이 모든 게 네 짓이잖아! 네가…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고 있잖아!”

민혁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의 말에 파티장 안에서 몇몇 얼굴이 빼꼼히 밖을 내다봤다. 그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걱정, 동정,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경멸. 민혁은 그들의 눈 속에서 읽었다. ‘저 사람, 또 시작이네.’

서준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한숨은 길고 깊었다. 마치 지친 부모가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을 대하듯이.

“민혁아, 제발… 이러지 마. 네가 이러면 다들 더 힘들어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거절할 수 없는 단호함이 있었다. 민혁은 서준의 뒤에 서서 그를 지켜보는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들의 눈빛은 서준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준의 편이었다.

나는 혼자였다. 철저하게 혼자. 이 모든 상황이 꿈인 것 같았다. 그들의 시선, 서준의 태연한 얼굴, 그리고 자신이 점차 미쳐가는 듯한 느낌까지.

“서준아… 나는… 나는 정말 괜찮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민혁은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민혁아. 네가 괜찮다면 된 거야.”

그 말과 함께 서준은 민혁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민혁은 혼자 남겨졌다. 차가운 밤공기만이 그의 뺨을 스쳤다.

민혁의 흐트러진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서준은 곧 평소의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몇몇은 걱정스럽게 민혁의 상태를 물었다. 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음, 아직은 좀 힘들어 보이네.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의 말에 모두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민혁의 편에 서는 이는 없었다. 서준은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붉은 액체가 잔 속에서 유려하게 흔들렸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어둠이 깊게 잠겨 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민혁아.*

그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민혁은 그 날, 내 모든 것을 짓밟고 비웃었던 너의 그 오만한 얼굴을 절대 잊지 않았으니까. 너는 이제 너의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야. 내가 겪었던 지옥을, 너도 똑같이 경험하게 될 거야. 서서히, 아주 천천히, 모든 것을 의심하며 미쳐가는 네 모습을, 나는 매일 밤 침대 맡에서 상상했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 상상은 현실이 될 것이다.

서준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씁쓸한 액체가, 마치 승리의 샴페인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