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잿빛 먼지가 휘날리는 바람이 뺨을 스쳤다. 재하는 한 손으로 허름한 천 조각을 둘러싼 얼굴을 더 단단히 여미고, 다른 손으로는 미나의 작은 손을 꽉 잡았다. 황량한 도시의 잔해는 마치 거대한 무덤 같았다. 부서진 빌딩의 뼈대들이 앙상하게 하늘을 찌르고, 그 아래로는 녹슨 차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고통스럽도록, 그리고 익숙하게.

“오빠, 저기……”

미나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재하의 시선이 미나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멀리, 폐허 속에서 비교적 온전하게 서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사각형의 덩치, 얼핏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였던 것 같았다. ‘미래마트’라는 글자가 간판에 겨우 흔적만 남아 있었다. 희망보다는 의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이런 곳이 아직 털리지 않고 남아있을 리가.

“조심해, 미나.”

재하는 미나를 자신의 뒤로 바싹 붙였다. 한 손으로는 허리춤에 찬 녹슨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파이프는 그에게 유일한 무기이자, 불안한 위안이었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널브러진 잔해들을 피해, 인기척 하나 없는 거리를 가로질렀다. 메마른 아스팔트 바닥은 곳곳이 깨지고 갈라져, 풀들이 끈질기게 솟아나 있었다.

미래마트의 거대한 유리문은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 흔적 위로 덩굴 식물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었다. 재하는 입구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부서진 유리 조각들 위로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없나, 혹시 함정 같은 건 없나. 매번 새로운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섰다. 생존은 늘 한 걸음 앞의 위험과 싸우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여.”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하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우리, 저기서 뭐라도 찾을 수 있을까?”

작은 기대를 담은 미나의 목소리에 재하의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이곳에서 ‘기대’라는 단어는 사치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재하는 마른침을 삼키고 어두운 건물 내부로 발을 디뎠다.

내부는 지독한 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천장이 뻥 뚫린 곳에서는 한 줄기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텅 비어버린 진열대들, 깨진 마네킹 조각들, 바닥에 뒹구는 상품의 잔해들. 한때는 번성했을 이 공간이 이제는 시간의 흉터로 얼룩져 있었다.

“저기, 오빠! 먹을 것 같아!”

미나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식품 코너였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캔들. 대부분은 부식되었거나 찌그러져 있었지만, 몇몇은 멀쩡해 보였다. 재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캔을 주워 흔들어 보았다. 내용물이 있는 듯한 묵직한 느낌. 그리고 날짜를 확인했다. 희미하게 인쇄된 숫자는 이미 오래전의 것이었지만, 이 세계에서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썩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미나, 여기에 있어. 오빠가 더 찾아볼게.”

재하는 미나에게 몇 개의 캔을 건네고, 주변을 더 수색하기 시작했다. 통조림 몇 개,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물병 몇 개, 그리고 운 좋게 발견한 작은 칼. 파이프보다는 훨씬 나았다. 희망이 조금씩 마음속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오늘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일지도 모른다고.

그때였다.
쿵.
건물 저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재하의 몸이 순간 굳었다. 쿵 소리에 이어, 철컥, 철컥 하는 금속성 마찰음이 들렸다. 누군가 있었다. 이곳에. 재하는 본능적으로 미나를 감쌌다.

“쉿.”

미나의 눈이 불안하게 커졌다. 재하는 재빨리 캔과 칼을 허리에 매달고, 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렴풋이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거칠고 위협적인 목소리. 이곳에 먼저 들어와 있었던 다른 생존자들인가? 아니면, 약탈자들인가?

멀리서 두 그림자가 나타났다. 해진 옷차림에 얼굴에는 온통 흙먼지가 뒤덮여 있었고, 한 손에는 녹슨 쇠막대기, 다른 한 손에는 깨진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번뜩였다. 그들의 시선이 재하와 미나에게 닿는 순간, 재하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이, 거기 꼬마들! 뭐 좀 건졌냐?”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약탈자들이었다. 재하는 미나의 어깨를 꽉 잡고 뒤로 물러섰다.

“우린 아무것도 없어.” 재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냥 지나가던 길이야.”

“지나가던 길이라? 그럼 그 손에 든 파이프는 장식이냐? 그리고 꼬마 아가씨 뒤에 숨긴 캔들은? 흥,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다른 남자가 비릿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두 명 대 두 명. 하지만 그들의 덩치와 무기, 그리고 눈빛은 압도적이었다. 재하는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이리 내놔라. 꼬마.”

그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재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미나를 뒤로 밀치고 파이프를 휘둘렀다. 쩌렁 하는 금속음이 폐허에 울려 퍼졌다. 남자의 쇠막대기와 재하의 파이프가 부딪혔다. 예상보다 강한 충격에 재하의 손목이 저릿했다.

“젠장, 꼬마가 제법인데?”

남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다른 한 남자가 재하의 옆구리를 노리고 유리병을 휘둘렀다. 재하는 몸을 비틀어 간신히 피했다. 유리병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오빠!”

미나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재하는 미나를 힐끗 돌아봤다. 아이는 공포에 질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 저들을 상대하다가는 미나까지 위험해질 게 분명했다. 일단 도망쳐야 했다.

“이쪽이야, 미나!”

재하는 소리치며 몸을 돌려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폐기된 의류 코너 쪽으로 향했다.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마네킹들이 시야를 가렸다. 그 뒤로 약탈자들의 욕설이 들려왔다.

“저 자식들 놓치지 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미나의 작은 손이 재하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찢어질 듯 아팠다. 재하는 진열대를 넘어뜨리고, 마네킹을 발로 차 쓰러뜨리며 추격자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어두컴컴한 구석, 옷가지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곳으로 몸을 던졌다.

“쉿.”

재하는 미나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어디로 간 거야? 이 쥐새끼들!”

“이쪽인 것 같은데……”

목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듯했다. 재하는 파이프를 꽉 쥐었다. 만약 들킨다면, 그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미나를 위해서라면.

다행히 그들은 지나쳤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재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옷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빛. 비상구였다. 망가진 문짝 사이로 희미한 바깥 풍경이 보였다.

“미나, 뛰어.”

재하는 미나를 먼저 내보내고 자신도 몸을 구겨 넣었다. 비좁은 문틈을 빠져나와 바깥의 황량한 골목으로 발을 내디뎠다. 뒤에서 약탈자들의 고함 소리가 다시 들렸다. 재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나의 손을 이끌고 달렸다.

숨이 멎을 듯한 질주 끝에, 그들은 겨우 폐허의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울어가는 햇살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재하는 허물어진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미나는 그의 품에 안겨 가늘게 떨고 있었다.

“괜찮아, 미나. 괜찮아.”

재하는 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심장이 아직도 격렬하게 뛰었다. 조금 전의 위협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손목은 욱신거렸고, 땀과 먼지가 뒤섞인 얼굴은 엉망이었다.

겨우 얻은 통조림 몇 개는 달아나는 와중에 떨어뜨린 것 같았다. 그들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빈손이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그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재하는 고개를 들어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봤다.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또다시 하룻밤의 위험과 내일의 불확실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의 시선은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도시의 잔해들을 향했다. 살아남기 위한 여정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