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독립적인 단편 소설

태고의 영기가 산맥을 휘감고, 구름 아래 푸른 기와지붕들이 신선의 비늘처럼 겹겹이 펼쳐진 곳. 천하제일의 진법(陣法) 문파, ‘운림선문(雲林仙門)’의 깊숙한 곳에 비극이 닥쳤다.

해질녘, 선문 최고 지성으로 추앙받던 운명진인(運命眞人)의 서재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 서재가, 외부로부터 그 어떤 물리적 침입은 물론이거니와 영적 감지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천라지망진(天羅地網陣)으로 완벽히 봉인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비명을 지른 이는 운명진인의 수제자, 청연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손끝은 경련하듯 떨렸다. 운림선문의 장로들과 고수들이 속속 서재 앞에 모여들었다. 장로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진법의 대가인 운명진인이 스스로 봉인한 서재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니.

“서재의 진법은 완벽합니다. 단 하나의 틈도 보이지 않습니다. 영력을 이용한 공간 이동 또한 완벽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문주인 현음진인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진인의 시신은 탁자 위에 엎드려 있었다. 외상은 없었다. 단지 그의 얼굴은 평온했으나, 그를 감싼 영기(靈氣)는 마치 얼어붙은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영혼 동결(靈魂凍結). 가장 잔인하고 은밀한 살해 방식 중 하나였다.

“범인이 진법을 뚫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간 뒤 진법을 복원한 것인가? 그것은 운명진인 스스로도 어려운 일이다!”

한 장로가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천라지망진은 한 번 봉인되면, 외부에서 억지로 해제하거나 내부에서 정해진 절차로만 열 수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후 다시 봉인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현음진인이 깊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이 미스터리를 풀 이는… 아마 그분밖에 없을 것이다. 태청산(太淸山)의 고은사(高隱士)를 모셔 오라.”

***

태청산은 속세와 단절된, 신비로운 영기가 서린 곳이었다. 그곳의 오두막에 은거하는 고은사는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천재적인 통찰력을 가진 이로 알려져 있었다. 굽은 허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이었으나, 그의 눈빛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예리했다.

“흠… 운림선문의 문주께서 직접 나를 찾아올 줄이야. 평온한 노년 생활을 방해할 만한 일이 생긴 모양이군.”

고은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현음진인이 고개를 숙였다.

“염치없지만, 고은사님의 지혜가 절실합니다. 운명진인의 죽음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궁입니다.”

현음진인은 고은사에게 운명진인의 죽음과 밀실 진법에 대한 모든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고은사는 묵묵히 들으며 가끔씩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가자. 직접 보아야겠다.”

그의 말에 현음진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운림선문. 고은사는 운명진인의 서재 앞에 섰다. 수많은 진법사들이 감지했듯, 천라지망진은 완벽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서재 전체를 감싸고 있는 영기 흐름을 감지했다. 일반적인 감지로는 느낄 수 없는, 미세한 떨림과 변화를 포착하는 그의 영민한 감각이 움직였다.

“문을 열어라.”

고은사의 말에 현음진인이 직접 진법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서재 안은 정갈했다. 온갖 진법 관련 서책과 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탁자에 엎드린 운명진인의 시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고은사는 서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신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서재의 벽과 천장, 바닥을 손끝으로 훑었다. 그의 눈은 진법의 영기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 마법진의 세밀한 획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운명진인은 죽기 전 무엇을 하고 있었지?” 고은사가 물었다.

청연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최근 ‘시공간 조율기(時空間調律器)’라는 새로운 진법 장치를 연구하고 계셨습니다. 영력을 이용해 시공간의 미세한 흐름을 조율하는 장치라고 하셨습니다.”

고은사의 시선이 탁자 위, 운명진인의 시신 옆에 놓인 기묘한 장치로 향했다. 수정 구슬과 복잡한 금속 고리들이 얽혀 있는 모습이었다. 그 장치에서는 희미하게 영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고은사는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외상은 없었으나, 그의 피부는 생기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운명진인의 이마에 가볍게 손가락을 댔다.

“영혼이… 완전히 동결되었군. 순간적으로 강력한 충격이 가해진 흔적이다.” 고은사가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 시공간 조율기 장치로 시선을 돌렸다. 장치의 표면에는 미세한 금속 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 다른 이들은 알아채지 못할 아주 사소한 흔적이었다.

“이 장치는 완성되었나?”

“아닙니다. 아직 실험 단계였습니다. 작동할 때마다… 아주 미세한 시공의 틈새가 열렸다 닫혔다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제어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계셨죠.” 청연이 말했다.

고은사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서재 안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시선은 서재의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환풍구 같은 구멍에 멈췄다. 그것은 진법의 일부로, 서재 내부의 영기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환풍구는… 외부로 연결되어 있나?” 고은사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서재 외부의 특정 영기 유출 지점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법의 과부하를 막기 위함입니다.” 현음진인이 대답했다.

고은사는 환풍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주 미약한 잔류 영기가 느껴졌다. 일반적인 감지로는 단순한 영기 흐름으로 여겨질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은사는 그 안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범인은 운명진인의 서재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은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찌하여…?”

고은사는 말을 이었다. “범인은 운명진인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을, 그의 죽음의 도구로 삼았다.”

그는 시공간 조율기를 가리켰다. “이 장치는 작동할 때, 아주 짧은 순간 시공의 얇은 막이 생성된다고 했다. 완벽한 진법도 그 찰나의 순간에는 미세하게나마 그 틈이 흔들릴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 틈은 너무나 작고,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영혼 동결과 같은 강력한 영력 공격이 침투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청연이 반문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고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요소를 이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저 환풍구 말이다.”

그는 다시 환풍구로 시선을 돌렸다. “저 환풍구는 진법의 보호를 받지만, 내부의 영기를 외부로 배출하는 통로다. 또한, 외부의 영기가 미세하게나마 침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범인은 바로 그 약점을 노렸다. 운명진인이 시공간 조율기를 작동시켜 서재 안에 시공의 얇은 막이 생기는 찰나, 범인은 환풍구를 통해 외부에서 ‘압축된 영혼 동결 인장(魂凍結印章)’을 쏘아 보냈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환풍구를 통해 쏘아진 인장은 서재 안으로 곧장 침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공간 조율기가 만들어낸 얇은 막이 진법의 견고함을 아주 미세하게 약화시킨 찰나, 외부의 압력으로 쏘아진 인장이 그 약화된 틈새를 뚫고 들어온 것이다.”

“그 얇은 막은 인장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인장의 힘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운명진인은 자신의 발명품이 만들어낸 시공의 왜곡 속에서, 외부에서 쏘아진 영혼 동결 인장에 의해 영혼이 완전히 얼어붙은 것이다.”

고은사는 다시 탁자 위 시공간 조율기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 미세한 금속 가루. 이것은 인장이 얇은 막을 통과하며 마찰을 일으키거나, 얇은 막을 통과한 인장이 조율기에 스치며 남긴 흔적이다. 인장은 대상을 타격한 후 흔적 없이 소멸하는 특성이 있으니, 이 금속 가루만이 유일한 증거가 된 셈이지.”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다. 운명진인의 연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진법에 대한 천재적인 지식, 그리고 극한의 치밀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범행이었다.

“범인은 누구입니까?” 현음진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은사가 차가운 눈빛으로 서재 문밖,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서 있는 청연을 바라보았다.

“운명진인과 가장 가까이서 그의 연구를 도왔던 자. 시공간 조율기의 작동 원리와 환풍구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자. 그리고 운명진인의 죽음 이후, 가장 슬퍼하는 척했지만, 그 눈빛에 질투와 욕망이 서려 있는 자.”

청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려 했으나, 이미 모든 증거와 정황이 그녀를 가리키고 있었다. 운명진인의 가장 촉망받는 수제자이자, 그의 모든 지식을 탐냈던 제자. 그녀는 자신의 스승을 뛰어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가장 치밀하고 잔인한 밀실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고은사는 아무 말 없이 서재를 나왔다. 뒤이어 들려오는 청연의 절규와 운림선문 사람들의 탄식 소리가 태청산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또 하나의 천재가, 자신의 지식으로 다른 천재를 죽인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고은사의 뒷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해 보였다. 그는 다시 태청산의 오두막으로 돌아가, 끝없는 지혜의 바다 속으로 침잠할 터였다. 속세의 번뇌는, 다시 그의 몫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