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그림자 심판관 카이젠 (The Shadow Arbiter, Kaijen)**
**에피소드 1: 별의 서고에 갇힌 죽음**
**씬 1: 에테르나 대공령, 별의 탑 앞**
#지문
짙은 안개가 에테르나 대공령의 성벽을 감싸고 있다. 웅장하지만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
그중에서도 가장 높이 솟은 ‘별의 탑’. 상층부에는 옅은 마법 광휘가 깜빡인다.
탑 입구를 지키는 근위병들은 잔뜩 경직되어 있다. 그들의 갑옷은 서리처럼 차갑게 빛난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불안한 시선으로 성문 쪽을 주시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안개 속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다.
해진 망토에 가려진 마른 몸. 헝클어진 흑발 사이로 언뜻 보이는 낡은 단안경. 하지만 그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을 듯 형형하다.
그는 이 도시의 유일한 ‘그림자 심판관’, 카이젠이다.
**근위대장 발론** (갑옷을 찰그랑거리며, 긴장한 얼굴로)
카이젠 님, 오셨군요. 이런 참극에… 불길한 재앙입니다.
**카이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별의 탑을 올려다본다)
별의 탑. 대공비 에르나 님께서 연구하시던 곳. 말씀으로는… 밀실 살인이라 들었습니다만.
**근위대장 발론**
네. 지상의 가장 견고한 방, ‘별의 서고’에서… 대공비께서 시신으로 발견되셨습니다. 문은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었고, 내부 잠금쇠는 멀쩡했으며, 창문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방입니다.
**카이젠** (낮게 읊조린다. 그의 시선은 탑의 가장 높은 곳에 닿아있다)
완벽한 밀실이로군요.
**근위대장 발론**
그렇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외부의 침입은 불가능했습니다. 범인은… 아마도…
**카이젠** (날카로운 시선으로 발론을 제지하며)
추측은 나중에. 현장으로 안내하십시오.
#지문
발론은 침을 꿀꺽 삼키며 카이젠을 탑 안으로 안내한다.
탑 내부는 정적에 휩싸여 있다. 발걸음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린다. 복도를 따라 올라갈수록 싸늘한 냉기가 피부를 파고든다.
별의 서고 입구에 다다르자, 더욱 심한 긴장감이 흐른다.
육중한 강철 문 위로 고대 마법 문양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봉인 마법의 잔재다.
문 앞에는 시녀장 이레네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고, 다른 근위병들이 주변을 삼엄하게 통제하고 있다.
**시녀장 이레네** (두 손을 부여잡고, 흐느끼듯)
대공비님… 어찌 이런 일이… 누가 감히…
**카이젠** (이레네를 흘긋 보더니, 문의 마법 문양을 찬찬히 살핀다)
봉인 마법은 완벽했습니까? 결계에 틈은 없었나요?
**근위대장 발론**
밤새도록 마법사들이 검사했습니다. 어떠한 침입 흔적도 없었습니다. 이레네 시녀장도 대공비님께서 직접 봉인하셨다고 증언했습니다.
**시녀장 이레네**
네… 대공비님께서는 늘 연구에 몰두하시면 외부와 단절되셨어요. 어제도 해가 지기 전, 제 앞에서 직접 봉인을 걸고 들어가셨습니다. 제가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했고… 밖에서 마법이 활성화되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카이젠** (문을 두어 번 두드려본다. 묵직한 소리가 울린다)
음. 잠금쇠는 어떻습니까?
**근위대장 발론**
대공비님께서 가지고 계시던 열쇠 외에는 열 수 없는 특수 잠금쇠입니다. 시신 옆에서 열쇠가 발견되었습니다.
#지문
카이젠은 잠시 침묵하며 문을 응시한다. 그의 눈동자가 마치 미세한 먼지 입자까지 분석하듯 움직인다.
그의 시선이 봉인 마법 문양, 그리고 문 옆의 낡은 벽돌 하나에 잠시 머문다. 다른 이들은 놓쳤을 법한 아주 미세한 균열이었다.
**카이젠** (작게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안에 있던 누군가가 범인이거나… 혹은…
**근위대장 발론**
혹은… 무엇입니까, 카이젠 님?
**카이젠** (대답 없이, 차분하게)
문을 엽시다.
#지문
발론이 손짓하자, 마법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봉인 마법을 해제하기 시작한다.
문양이 빛을 잃고, 육중한 강철 문에서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근위병 두 명이 힘껏 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부가 드러난다.
별의 서고는 높은 천장까지 빼곡히 책으로 가득 찬 원형의 방이었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함께 짙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방 중앙의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에 대공비 에르나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등에는 섬세하게 세공된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검붉은 피가 책상 위 고대 지도에 얼룩져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겁고 차가웠다.
**씬 2: 별의 서고 내부**
#지문
카이젠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선다. 그의 발소리는 먼지 쌓인 마루 위에서조차 들리지 않는 듯 조용했다.
그는 시신에 바로 다가가지 않고, 방 전체를 훑어본다.
방 한쪽에는 낡은 지구본이, 다른 한쪽에는 별자리가 새겨진 천체 망원경이 놓여 있었다. 모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지만, 책상 위는 깔끔했다.
그의 시선이 천장, 바닥, 벽면을 따라 움직인다. 틈 하나 없는 견고한 벽. 꼼꼼하게 설치된 마법 감지 장치들이 보인다.
**근위대장 발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보십시오, 카이젠 님. 창문은 없고, 환기구는 너무 좁아 사람이 드나들 수 없습니다. 모든 마법 장치는 정상이었습니다.
**카이젠** (피 묻은 단검을 응시하며)
피해자는… 책을 읽다 변을 당했습니까?
**시녀장 이레네** (흐느끼며)
네… 대공비님께서는 밤새도록 고서적을 연구하시는 일이 잦았습니다. 늘 새벽에 잠드셨죠…
#지문
카이젠은 책상 위로 손을 뻗어, 피가 묻지 않은 고서적 한 권을 조심스럽게 집어 든다.
책의 표지에는 닳고 닳은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는 책을 펼쳐 몇 페이지를 빠르게 훑어본다. 그리고는 다시 내려놓는다.
그의 눈길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천장의 마력등과 그 아래 놓인 작은 장식품에 닿는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깨끗하다.
카이젠은 피 묻은 단검을 바라본다. 손잡이에 보석이 박힌 화려한 단검.
**카이젠**
이 단검은 대공비님의 소유입니까?
**시녀장 이레네**
아닙니다. 저런 화려한 장식의 무기는… 대공비님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서고에 보관된 다른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근위대장 발론**
내부인이거나… 아니면 외부인이 마법 봉인 해제술을 쓰고 잠금쇠를 열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허나… 저희 마법사들은 어떤 마법 침입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카이젠** (고개를 살짝 젓는다)
아뇨. 침입은 없었습니다. 봉인 마법은 완벽하게 작동했어요. 잠금쇠도 마찬가지였겠죠.
#지문
발론과 이레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친다.
**근위대장 발론**
그럼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범인이 이 방 안에 숨어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허나 저희가 들어왔을 때, 대공비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카이젠** (시신 옆, 바닥에 떨어진 작은 금속 조각을 발견한다)
음?
#지문
카이젠은 재빨리 허리를 굽혀 그것을 집어 든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정교하게 가공된 금속 조각이다. 반짝이는 은빛. 끝부분에는 톱니 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그의 눈동자에 섬광이 스치는 듯하다.
그는 그 조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주변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핀다. 특히 천장과 벽면을. 마력등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놓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마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낸 사람처럼.
**카이젠** (나지막이,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밀실은… 깨졌습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근위대장 발론**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이젠** (피 묻은 단검을 가리키며)
이 단검은 대공비님을 찌른 흉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요.
#지문
발론과 이레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카이젠은 손에 쥔 은빛 조각을 흔들어 보이며, 천장의 마력등을 올려다본다.
**카이젠**
대공비님의 죽음은… 아주 기묘한 트릭의 결과입니다. 이 서고는 완벽한 밀실처럼 보였지만, 단 하나의 맹점을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그 맹점을 완벽하게 이용한 겁니다.
**시녀장 이레네**
맹점이라니요…?
**카이젠**
여러분은 눈으로 봉인 마법이 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마법이 정말로 문 전체를 봉인했는지, 아니면 그저… “봉인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지문
카이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방금 발견한 금속 조각과 천장의 마력등, 그리고 문의 봉인 마법… 모든 단서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된다.
그의 눈빛은 이미 범인의 모든 수법을 꿰뚫어 본 듯 깊고 형형했다.
이야기는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