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나는, 김민준이라는 이름으로 살 때도 그랬지만, 죽어서도 여전히 그랬다. 끈질기게, 집요하게, 그리고 치명적으로.

마지막 사건은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마 추격전이었다. 빗물에 미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범인의 다음 수를 읽는 데 몰두해 있었다. 빌어먹을,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다. 고작 몇 년간의 경찰 생활 동안 나는 이미 ‘미친개’ 혹은 ‘천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전자는 나의 집요함 때문에, 후자는 나의 비상함 때문에.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살인마의 총구 앞에서 후자의 빛을 발하려다 전자의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포근한 깃털 침대 위였다. 부드러운 천장이 눈에 들어왔고, 코끝을 간질이는 희미한 풀 향기가 낯설었다. 몸은 훨씬 작고 가벼웠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보니, 어색한 감각이 밀려왔다.

“도련님, 깨어나셨어요?”

갈색 머리의 젊은 여인이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녀의 옷차림은 내가 알던 어떤 시대의 것과도 달랐다. 레이스가 잔뜩 달린 하늘색 드레스, 가슴께에는 자수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도련님?”

어딘가 힘없는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충격과 혼란 속에 헤매야 했다. 나는 김민준이 아니었다. 나는 ‘카일 에르만’이라는 이름의 열두 살 소년이었다. 에르만 변경 백작가의 삼남. 병약하고, 내성적이며,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시피 한 아이. 간밤에 열병을 앓고 쓰러졌는데, 그 순간 김민준의 영혼이 카일의 몸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게… 전생? 이세계 전생?”

거울 속의 나는 창백하고 갸름한 얼굴에 회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었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섬광을 보았다.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기묘한 안정감.

카일의 몸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열두 살의 육체는 연약했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스물여덟 살의 김민준이었다. 이전 생의 지식과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오히려 어린 몸이 가져다주는 민첩함과 섬세한 감각은 새로운 차원의 탐지 능력을 부여하는 듯했다. 에르만 백작가는 거대한 영지를 다스리는 유서 깊은 가문이었지만, 형제들과의 관계는 소원했고 부모님의 관심은 장남인 알렉스 경에게 쏠려 있었다. 덕분에 나는 누구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이 세계를 탐색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내면의 변화를 겪을 수 있었다.

몇 달이 흘렀을까. 나는 백작가의 서고를 뒤지며 이 세계의 역사와 지리, 사회 구조를 머릿속에 각인했다. 마법의 개념도 있었지만, 마법사는 극히 드물었고 주로 치유나 건축 등 생활 밀착형 마법에 한정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문명 수준은 중세 유럽과 비슷했지만, 일부 연금술적 기술은 꽤 발전한 듯했다. 무엇보다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이 세계에도 여전히 ‘범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곧, 그 범죄는 나의 문을 두드렸다.

“젠장, 젠장할!”

성 안을 울리는 거친 목소리에 카일은 읽던 책을 덮었다. 언제나 차분했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백작은 평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복도 저편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녀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속삭였고, 기사들은 무거운 갑옷을 부딪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카일은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쳐 소리의 근원지를 향했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백작가 영지의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관, 에드윈 경의 집무실이었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백작의 큰아들, 알렉스 경이 머리를 부여잡고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집무실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서류 더미가 바닥에 나뒹굴고, 잉크병이 깨져 검은 얼룩이 선연했다. 그리고 그 모든 혼돈의 중심에는, 책상에 엎드린 채 미동도 없는 에드윈 재무관의 시신이 있었다. 등에 박힌 칼자루가 선명했다.

카일은 조용히 문턱에 서서 상황을 파악했다.
“…밀실이군.”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노년의 집사, 마르코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백작에게 보고했다.
“백작 나리, 에드윈 경의 시신입니다. 기사들이 방금 발견했습니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빗장이 걸려 있었으며, 모든 틈새는 안에서 테이프로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테이프? 이 세계에도 테이프가 있나?”

카일은 작게 생각했다. ‘테이프’라는 단어는 좀 이상했지만, 그 의미는 명확했다. 외부와의 모든 연결이 차단된 방.

백작의 얼굴은 분노와 혼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밀실? 밀실 살인이라니! 에드윈은 어제 저녁까지 분명히 살아 있었어! 대체 누가,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경비대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밤새도록 감시병들이 복도를 오갔습니다. 어떤 수상한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외부인은 물론, 성 내부의 그 누구도 이 방에 들어설 수 없었습니다.”

주변의 시선은 모두 백작에게 쏠려 있었지만, 카일의 눈은 오직 방 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비록 시신은 보지 못했지만, 방의 구조와 사람들의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완벽한 밀실. 범인의 흔적은 물론, 들어오고 나갈 경로조차 없는 상황.
누군가 방 안에서 에드윈 재무관을 살해하고,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김민준, 전직 천재 형사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퍼즐이었다.
카일의 회색 눈동자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푸른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었다.